<루나시티> 연작소설
딱딱. 딱딱. 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인부의 눈은 파충류처럼 순막이 껴있었고, 입술이 바짝 말라 있었다. 볼살은 푹 꺼져 살가죽밖에 남지 않았다. 지구와 루나시티를 좀먹고 있는 전염병의 대표 증상이었다. 하연과 리히터는 한 발 뒤로 물러나며 헬멧을 뒤집어 썼다.
“이제 어떻게 하죠.”
리히터의 목소리가 헬멧 안에 맴돌았다.
“애나, 이 사람이 누군지 확인해줄래?”
애나가 감염자 얼굴에 초록빛 그물을 던졌다.
“세람 잉옌. 32살. A형. 트러스트 사 소속. 지난 달 행방불명된 인부 중 하나에요.”
“행방불명? 작업자가 사라졌는데 아무도 찾으러 안 왔어?”
리히터가 심사대를 돌아보았다.
“아뇨. 트러스트 사에서 사라진 작업자를 찾으려고 인원을 투입했어요. 휴게실에서 발견했다고 하셨죠. 분명 둘러봤을텐데. 이상하네요.”
애나는 똑 떨어질 것 같은 머리통을 갸웃거렸다.
“애나, 이 사람 이동 이력도 확인해 줘.”
하연이 명령했다. 기업은 우주 작업자의 신원 확인을 어떤 작업보다 철저히 했다. 인원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우주 여행 비용이 낮아지면서 이동이 빈번하고 자유로워지는 탓에 동선이 확인이 점점 어려워져 기업들은 골머리를 앓았다. 전염병이 퍼진 이후로는 지구연합이고 루나시티고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확인 절차가 더욱 까다로워졌다.
“예정대로라면 지난달에 상하이로 향하는 화물선 FLTE-144편에 타기로 했었네요.”
“왜 못 탔지?”
사고라도 당했나. 리히터는 말을 삼키며 매끈한 헬멧 고글을 위 아래로 쓰다듬었다.
“그보다 전은? 어디서 출발했는지, 어느 출신인지도 알 수 있어?”
“보나마자죠.”
리히터가 애나 대신 나섰다.
“루나시티 출신이겠죠. 이거 봐요. 내중력 장치(보조 중력 조절 장치)를 달고 있잖아요.”
리히터는 세람의 목을 가리켰다. 목과 작업복 사이에 내중력 장치가 빡빡하게 끼워져 있었다.
“그 논리라면 반대 아니에요? 내중력 장치는 지구인이 발명했잖아요. 스노그라는 우주 비행사가 무중력을 못 견뎌서요.”
“누가 요즘 내중력 장치를 답니까? 좋은 약이 얼마나 많은데. 장기간 우주 생활이 필요한 사람이니까 내중력 장치를 썼겠죠. 루나시티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모두 무중력에 자유로운 건 아니잖아요.”
“루나리안은 어릴 때 무중력 적응 훈련해요.”
리히터는 진실을 덮으려는듯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우주복 안에 손을 넣어 알약통을 흔들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가볍게 났다. 아직 여유분이 있었다.
“중요한 건 이 사람 출신이 아니에요. 이 사람이 어디에서 어디로 갔는지가 더 중요하죠.”
“보나마나 루나시티에서 출발해서 지구로 갔겠죠. 더욱이 2차 3차 간접 감염이면 동선 파악은 소용없어요.”
“제발 초치는 소리 좀 그만해요. 동선이 밝혀지는 게 무서워요? 이 사람의 시작점이 지구일까봐 겁이 나는 거에요? 설령 루나시티에서 출발했어도 저는 상관없어요.”
“그러면 루나시티가 전염병의 원인이라고 인정해도 되겠네요.”
“이야기가 왜 거기로 튀어요? 설마 이 사람 동선으로 전염병의 책임을 정하자. 얼토당토 않는 얘기는 아니죠?”
“그러면 안 될 이유가 있어요? 한 사람만 보면 다 알 수 있습니다. 루나시티에서 지구로 오는 사람이 더 많잖아요. 우주 작업자들은 특히.”
“지구에서 루나시티로 여행 오는 사람 수가 훨씬 많습니다.”
“아주 잠깐이죠. 우길 걸 우기세요. 자신 있다고 하셨죠? 애나, 이 사람 동선 알려줘.”
“애나, 기다려. 로버트 B. 리히터 차관님. 저희 게임해요? 동전 던지기로 끝낼 문제가 아니에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에요.”
“내가 모르겠습니까?”
“아시는 분이 그러세요? 아니면 루나시티의 미래따윈 상관없다는 말씀이신가요?”
리히터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않았다. 하지만 침묵은 긍정의 의미다.
“루나시티를 설립한 이유가 뭐예요. 인류 모두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아니었어요? 이제 와서 루나시티를 버리는 건 단물을 다 빨아먹었기 때문인가요? 루나시티에 온 사람들이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대의를 품고 오진 않았겠죠. 하지만 지구에서의 힘든 삶을 어떻게 해서든 비틀어서 이겨내보려고, 살아보려고 온 거 아니겠어요? 그런 사람들을 인류의 적으로 돌리려 하다니요.”
리히터는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한쪽 입꼬리를 삐죽 올렸다.
“제 말이 웃겨요? 정말 무례하세요. 루나시티에 사는 사람들 입장도 생각해보세요. 같은 인간으로서.”
“같은 인간이요? 기계 없이 약 없이 우주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과 중력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같다고요? 서기관님, 우리 인정해요. 우리와 당신들은 이미 달라요. 지구에는요. 우주에 올라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오로지 우주 멀미 때문에요.”
리히터는 가슴팍을 퍽퍽 두드렸다. 충격이 가해질 때마다 알약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들은 선택받은 사람들이에요. 선택받은 사람들이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양보하는 게 그리 큰 문제입니까? 같은 인간이라면서요.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요. 욕 좀 먹으면 어때요. 원망 좀 들으면 어때요. 동포를 살리는 일이 그리 싫습니까? 우주에서는 살기 위해 서로 돕는 게 기본 도리라면서요.”
리히터는 어느 때보다 열변을 토했다. 라리슨의 지시도 전략도 아니었다. 그 누구의 이야기도 아니었다. 리히터의 이야기였다. 우주를 꿈꿨던 청년은 본디 타고난 한계에 부딪쳐 지구로 추락했다. 대기권에 불타 사라지는 우주 쓰레기처럼 청년의 바람은 불타버렸다. 지구에서 본 달은 언제나 밝게 빛나며 오라고 손짓 했지만 갈 수 없었다. 우주는 머리를 아프게 했고, 그 사실을 떠올린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나왔다. 청년은 고개를 숙였다.
하연은 리히터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그동안 리히터는 누군가를 대신해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비로소 리히터가 테이블에 나와있었다. 리히터가 쏟아낸 이야기는 로버트 B. 리히터라는 개인의, 어쩌면 우주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지구인들이 달을 올려다보며 품었던 진심이었다.
하연도 지구인과 속마음을 툭 터놓고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그들을 헤아리지 않고 땅거북이라 낮춰 부르고 꼬아보았다. 달은 지구의 일부분일 뿐 지구인들은 달에 사는 사람들 위에 군림한다고 지레짐작했다. 어른들은 누누이 그리 얘기했고, 아이들은 그 이야기를 그대로 믿었다. 두 눈으로 보기 전에 색안경을 끼고 있었다. 토끼눈처럼 새빨간.
“리히터 님, 저희는 선택 받지 않았고 더 나은 사람도 아니에요.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리히터는 입술을 살짝 벌렸다가 그대로 닫았다.
하연과 리히터는 한동안 서로를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찮으시다면 말을 해도 될까요?”
애나가 침묵을 두드렸다. 하연과 리히터는 저마다 다른 각도로 얼굴을 끄덕였다.
“세람 잉옌의 항해 이력을 확인했어요.”
리히터는 두 손을 헬멧 고글에 대고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