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11)

<루나시티> 연작소설

by 송건자

*


화물선이 올 때까지 하연과 리히터는 관계 협의를 이어갔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공정한 선택을 고르려고 애썼다. 하콘라디 대통령이나 라리슨 장관이 그린 방향과 맞지 않는다 하여도 상관없었다. 루나시티와 지구연합을 대표해 테이블에 앉은 사람은 하연과 리히터였고, 두 사람에게 중요한 건 지구와 달, 인류 모두가 잘 사는 것이었다.


미리내 정거장으로 그토록 기다리던 화물선이 다가왔다. 대합실 앞 유리창 너머 화물선 FETL-142편이 서브 레그(sub leg)를 뻗어 정거장에 연결하는 모습이 보였다. 애나는 화물선의 입항을 유도하며 여유 자리가 있는지 물었다. 응답은 없었지만 하연과 리히터는 미리내 정거장을 떠날 준비를 했다.


“애나, 고마워. 덕분에 협의도 잘 끝냈어.”


“애나가 보살핀 덕분에 살아 남았어.”


하연과 리히터는 애나에게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를 표했다. 애나는 얼굴에 하트를 띄웠다. 특별한 손님에게만 보여주는 애나의 작별 인사였다.


하연은 지위와 출신을 내려놓고 리히터와 나눈 대화에서 땅거북과 달토끼의 관계가 서로를 배신하고 앞서야만 하는 경쟁이 아니라는 걸 배웠다. 우리는 다름을 인정하고 같은 인류로서 아직 오지 오지 않은 미래를 함께 바라봐야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처음부터 마음을 텄다면 테이블 위에서 입만 떠드는 관계 협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셈 없이 마주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겠지만.


하연과 리히터는 세람 잉옌의 헬멧을 단단히 씌우고 고무벨트로 손과 발을 묶었다. 한 팔씩 팔짱을 나눠끼고 세람을 일으켜 세웠다. 세람의 지향 전파를 껐지만 딱딱 이를 부딪치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한 가지 걱정이라면 애나의 통신에 대해 화물선이 답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중형급 화물선이니 세 사람이 탈 수 있을 만한 자리는 있겠지만 혹시나 하는 걱정이었다. 자리가 없다면 하연과 리히터는 화물칸에 탈 각오도 되어 있었다. 도착지가 루나시티든 지구든 미리내 정거장을 떠나는 것이 중요했다.


하연은 걱정을 숨에 담아 길게 내쉬었다. 리히터는 걱정하지 말라는듯 슬쩍 웃었다.


“화물선이 루나시티로 가서 다행이에요. 안 그랬으면 저 혼자 잉옌 씨를 부축했을 거 아니에요.”


“지구 가고 싶으시다면서요.”


“그건 그때죠.”


“멀미는 괜찮아요? 멀미약 있어요?”


리히터는 제자리에서 콩콩 뛰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빈약하게 들렸다.


“한두 알 남은 것 같아요.”


“루나시티에서 사죠. 못 구하면 내중력 장치라도 구해드릴게요. 가볍고 튼튼한 거 많아요.”


“고마워요. 서기관님.”


하연은 슬쩍 웃어보였다.


“우리, 틀리지 않았겠죠?”


리히터가 물었다. 하연은 주머니 속에 넣은 디바이스와 그 속에 담긴 리히터의 서명을 떠올렸다. 지구연합은 루나시티에게 자원 독점권과 실험 통제권을 주었다. 그 대신 루나시티는 전염병 치료를 위한 실험에 적극 지원을 하기로 협의했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어요. 우리는 옳은 선택을 했어요.”


“맞아요. 분명 지구에 사는 사람들도 루나시티에 사는 사람들도 모두 저희와 같은 마음일 거예요.”


하연은 진심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관계 협의 종료, 맞죠?”


“아홉 번째 테이블은 없어요.”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고 활짝 웃었다.


선착장이 열리고 떼를 지은 우주 작업자들이 보였다. 그들은 세람 잉옌처럼 샛노란색 헬멧에 곤색 우주복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아주 천천히 연결 통로를 통과했다.


하연과 리히터는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지만 세람 잉옌을 붙잡고 있는 터라 빨리 움직일 수 없었다.


“선생님들, 안녕하세요. 통신을 받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저희를 루나시티에 데려다 줄 수 있을까요? 사례는 반드시 하겠습니다.”


하연이 목소리를 높였다. 대답이 없었다.


“저는 지구연합 우주방위부 소속 로버트 B. 리히터 차관입니다. 이쪽은 루나시티 외교부 소속 2등 서기관 손하연이고요. 선생님들, 작업으로 힘드시겠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리히터가 바톤을 이어받았다. 여전히 답이 없었다.


열 명 남짓 떼를 이룬 작업자들이 철제 상자 더미를 지나 하연과 리히터에게 느릿느릿 다가왔다. 그들은 세람 잉옌을 받아줄 것처럼 팔을 앞으로 뻗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한 분만 도와주셔도 될 것 같은데.”


작업자들은 하연에게 서슴없이 다가왔다. 그리고 코앞에서 그들을 마주했을 때, 하연은 짙은 선팅 뒤로 사정없이 위아래도 맞부딪치는 이를 보았다. 딱딱. 딱딱.


“감염자들이에요. 도망쳐요!”


하연은 세람 잉옌 겨드랑이에 낀 팔을 빼려고 했지만 당황한 나머지 간단한 행동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먼저 팔을 뺀 리히터가 하연을 잡아 당겼다. 리히터는 발로 세람 잉옌을 작업자들에게 밀었다. 세람 잉옌은 훌륭한 장애물이 되었다.


하연과 리히터는 무작정 작업자들과 거리를 벌렸지만 그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제한되어 있었다.


리히터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패닉 때문인지 멀미약 효과가 벌써 떨어진 건지 알 수 없었다.


“애나, 애나!”


리히터는 애나를 애타게 부르며 심사대를 보았다. 애나는 새까만 얼굴을 떨구고 있었다. 절전 모드도 대기 모드도 아닌 것 같았다. 초록색 점을 찾을 수 없었다.


하연과 리히터는 대합실 구석으로 움직였다. 그곳이 감염자들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우리, 어떻게 하죠?”


리히터는 본인도 이미 답이 보이는 질문을 입에 담았다. 하연은 어깨를 으쓱했다. 누구도 답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열 개만 보였던 샛노란 헬멧은 어느새 수가 늘었다. 아직도 화물선에서 내리지 않은 작업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느리지만 묵직한 발걸음을 내딛으며 미리내 정거장으로 밀려들었다.


점점 불어나는 샛노란 헬멧의 해일을 마주한 하연과 리히터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만약 화물선에 감염자가 탄 걸 알았다면 공항에서 막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우주까지 올라왔다는 건 눈앞에 마주한 수보다 훨씬 많은 감염자가 지구 곳곳에 영역을 넓히고 있다는 것처럼 보였다. 아픈 사람 한두 명쯤 감싸주었을까? 우주 작업자 중에서는 사정이 빠듯한 사람들이 많다. 그래도 전염병은 다르잖아. 감싸는 게 답이 아니야! 두 사람은 그들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삐죽 솟았지만 빼든 손가락을 거두었다. 감염자도 각자 나름의 사정이 있고 누군가에겐 사랑받는 사람이다. 또한 ‘병’이기에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릴 수 없다.


리히터는 격리소에 있을 아들을 떠올렸다. 만약 아들이 감염자가 됐다면, 아내를 할퀴고 누나를 물어뜯고 동생을 짓이기는 아들의 목을 조를 수 있을까. 리히터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내려보았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세상 유이(唯二)하게 리히터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세람 잉옌을 지구 혹은 루나시티로 보내는 일이었다. 그를 조사하면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 세람 잉옌이 첫 감염자가 아니어도 치료제 개발에 도움이 될 게 분명하다.


하연은 상의 포켓 속 디바이스를 쥐었다. 겨우 지구와 달이 화해할 수 있는데. 저들을 구할 방법이. 모두를 구할 방법이 여기 있는데. 전부 없었던 일로 만들 순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디바이스를 루나시티에 보내야 한다.


하연과 리히터는 감염자들을 피해 대합실로 하역장으로 휴게실로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두 사람은 오로지 다음 여객선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 그때까지 최대한 감염자들과 술래잡기를 하는 방법뿐이었다. 하지만 여객선이 올 때까지 시간이 한참 남아있었고, 하연과 리히터는 점점 굶주렸다.


*


하콘라디 대통령은 재생을 멈췄다. 미리내 정거장의 영상 기록은 이미 여러 번 돌려 봐서 이 뒤는 전부 알고 있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검사지를 살피고는 통신 디바이스를 건드렸다. 뚜루루루. 건조한 발신음을 따라 홀로그램 프로젝터에서 떠오른 세 점이 진동했다.


루나시티에서 출발한 구조대가 미리내 정거장에 먼저 도착한 건 하콘라디 대통령 입장에서는 다행이었다. 정거장에는 전원이 꺼진 구식 인공지능과 초콜릿 바 두 개, 발포커피 스틱 하나를 제외하면 감염자들뿐이었다. 중력 장치가 꺼진 탓에 감염자들은 허우적거리며 허공을 떠다녔고, 딱딱 이를 부딪치는 소리만이 구조대를 반겨주었다.


제8차 지구-달 관계 협의장에서 긴급 탈출한 손하연 루나시티 외교부 2등 서기관과 로버트 B. 리히터 지구연합 우주방위부 제2차관을 미리내 정거장에서 발견했지만, 애석하게도 두 사람이 목숨을 잃은 후였다. 감염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입은 피해는 없었지만 헬멧 일부가 깨져 있는 걸로 보아 질식사가 직접 사인으로 판명 내려졌다. 구조대는 허우적거리는 감염자들을 적절하게 ‘처리’했고, 손발을 묶은 감염자는 모종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 판단하여 루나시티로 데리고 왔다.


리히터의 시신은 지구로 돌려보냈다. 관계 협의가 루나시티에서 이뤄진 만큼 우주방위부 차관의 죽음에 대해 루나시티가 책임을 져야 했다. 라리슨 장관은 루나시티의 보안에 의문을 제기했고, 리히터 차관의 죽음을 의도적으로 방치하지 않았냐며 공개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하콘라디 대통령은 구조대가 늦은 것에 대해 사과를 했지만, 두 협의 대표의 죽음을 의도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자원 독점권과 실험 통제권 양도와 치료제 개발에 대한 상호 협동은 없던 일이 되었다. 이러한 결과가 지구연합에게 더 좋은지 루나시티에게 더 좋은지 유불리를 따질 수 없었다. 지구와 루나시티에 너무 많은 감염자들이 생겼고, 엎어진 관계 협의 결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하콘라디 대통령은 두 협의 대표의 사망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미리내 정거장을 샅샅이 수색했다. 하연의 디바이스와 미리내 정거장의 영상 및 음성 기록을 수거했다. 하콘라디 대통령은 그 기록에서 손발이 묶인 감염자의 존재 이유를 알았고, 루나시티는 즉각 세람 잉옌을 실험체 X라 명하고 철저한 검사를 했다. 실험체 X가 첫 감염자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연과 리히터의 바람대로 전염병의 바이러스 원형을 가지고 있었다. 하콘라디 대통령은 즉각 치료제를 만들 것을 명령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치료제는 수십 차례 변형된 바이러스에도 높은 효과를 보였고, 전염병을 정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두드러졌다.


하콘라디 대통령은 아주 오랜만에 큰소리를 내어 깔깔깔 웃었다. 자신에게 굴욕을 주었던 라리슨 장관의 코를 짓누를 기회가 생겼다. 지구-달 관계 협의를 테이블 위로 올릴 기회를 잡았다.


“지구연합에 치료제 검증 결과를 보내. 머리가 있다면 이제 누가 위에 있는지 알겠지.”


하콘라디 대통령은 외교부 장관과의 전화를 끊은 뒤 일시정지한 동영상을 껐다. 그리고 두 협의자의 마지막이 담긴 영상과 제8차 지구-달 관계 협의서를 영구 삭제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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