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의 선물 (4)

<루나시티> 연작소설

by 송건자

지호는 호버 버스에 올랐다. 퇴근 시간도 아닌데 버스엔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근심걱정 없어 보였다. 딱히 그들이 웃거나 즐거워하지 않았는데 그냥 그렇게 보였다. 서로 손을 잡고 있는 것만 봐도 지호에겐 행복해 보였다.


나는 혼자인데. 집에 가도 미지는 없는데. 더는 이 세상에 미지는 없는데.


지호는 미지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미지를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사실에 가슴이 무너졌다.


진상을 밝힌다고 죽은 사람이 돌아와? 지호는 피가 맺히도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너희는 쓸데없는 에너지를 쏟고 있다고 그만 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들이 남긴 죽음값으로 그들의 안녕을 빌어주면 된다. 그런데 왜 저들은 죽은 사람들을 편히 쉬지 못하게 귀찮게 구는 걸까.


지호는 내림벨을 눌렀다. 지호는 버스에서 내려 회의장을 향해 뛰었다. 저들은 자신을 속이고 있을 뿐이다. 현실에서 도피할 뿐이다. 보상금도 받았고, 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감옥에 다녀왔다. 진상을 밝힌다고 죽은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다. 모른다면 내가 알려줄게. 똑바로 보게 해줄게. 사람들은 험상궂은 얼굴로 뛰어가는 지호를 피했고, 지호는 한달음에 회의장에 도착했다.


모임은 끝나있었다. 흐린 조명이 단상을 비추고 있었고, 단상 앞 의자에 어깨가 축 처진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여자는 인기척에 등을 돌렸다.


“오랜만이에요. 미지 씨, 맞죠?”


희영은 마치 지호가 돌아올 걸 알았다는 듯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지호는 턱을 살짝 당겼다.


“그동안 잘 지냈어요? 못 보던 사이에 얼굴이 많이 상했네요.”


지호는 다시 턱을 살짝 당겼다.


“그때나 지금이나 과묵한 건 여전하네요. 왠지 돌아올 것 같았는데 믿고 기다리길 잘했네요.”


“다른 사람들은요?”


희영은 무릎에 올려둔 크로스백에서 디바이스를 꺼냈다.


“대여 시간이 다 되어서요. 이제 7분 남았네요. 곧 담당자가 확인하러 올 거예요. 화선 모임도 예전만 못해요. 아까 들었죠?”


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할 말 있으면 지금 해요. 우리가 커피 마실 사이는 아니잖아요?”


희영의 정화기에 하얀 숨이 마침표를 찍었다. 아직도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모양이었다. 장거리 출장도 다녀왔으니 힘들 것이다. 지호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혀끝에 비릿한 쇠맛이 느껴졌다.


“그만 둬요.”


“뭘요?”


“전부 다요. 죽은 사람들 자꾸 건드리지 말아요. 편히 쉴 수 있게 두라구요. 돈도 받았잖아요. 네 명 잃었다면서요. 두둑이 챙겼을 거 아니에요.”


희영의 정화기에 커다란 하얀 점이 생겼다.


“제발 죽은 사람들 들쑤시지 말아요. 제발 미지를 편하게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요.”


희영의 정화기에 하얀 점이 사라졌다.


“할 말 없죠? 이미 당신도 알고 있는 거예요. 그만둘 수 있는 좋은 기회잖아요. 다른 사람들 부채질 그만하고요.”


“나도 우리 아이들, 우리 남편, 우리 엄마. 편히 보내주고 싶어요. 미지 씨 말대로요.”


“그럼 그렇게 해요.”


“편히 보내는 게 어떻게 하는 건데요?”


지호는 숨을 삼키며 살짝 벌린 입을 다물었다.


“돈 받았으니까 입 닥치고 있어야 하나요? 연루된 사람들, 받으나 마나한 죗값에 만족해야 하나요?”


“그러면요. 어떻게 할 건데요. 이미 재판 끝났어요. 같은 죄론 재판대에 올리지 못해요. 어찌저찌 다시 세워도 권력자들이에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빠져나갈 거라고요. 알잖아요. 수십 수백 번도 지겹게 봤잖아요.”


지호의 목소리가 회의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희영은 숨을 들이 마시더니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화선 사태가 또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어요?”


지호는 희영을 멍청하게 바라보았다.


“미지 씨. 이젠 외우주도 쉽게 오가는 세상이에요. 목성. 토성. 천왕성. 그보다 더 먼 우주도 갈 수 있어요. 수십, 수백 년이 걸리더라도요. 만약 사람들이 그곳에서 선물을 가져와서 마음대로 풀어버리면 어쩌죠? 또 많은 사람들이 죽고 가슴에 피멍이 생기면 그때는요? 선례를 따르겠죠. 장래를 보장받은 몇 명만 책임을 지겠죠. 그걸 바라나요? 그러길 바라요? 나는 싫어요.”


희영은 손바닥으로 가슴을 팍팍 내리쳤다.


“내가 미디어에 노출될 때마다 우리 가족들이 소환돼요. 공개한 적 없는 사진이 나돌아다녀요. 넷에서는 죽어서도 쪽쪽 빨려서 이제는 뼈도 안 남은 시체들이래요. 나는 돈에 환장한 년이래요. 지 엄마, 지 남편, 지 애들 팔아먹는 미친 년이래요. 그런 치욕을 받아가면서 내가 왜 매달리겠어요. 이런 일이 더는 일어나면 안 되잖아요. 우리 가족이 겪은 비극이 일어나면 안 되잖아요. 분명 비슷한 일이 생기면 유야무야 넘어갈 거예요. 나는 그게 가장 무서워요. 미지 씨는 그래도 괜찮아요?”


지호는 차라리 희영이 울분을 토하길 바랐다. 그러면 자기도 악다구니를 쓸 수 있으니까. 하지만 희영은 어느 때보다 침착하고 차가웠다.


“그림자를 껴안고 웅크리고 있는 걸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어요. 저절로 해결되지 않아요. 가만히 있으면 이걸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좋을 대로 써먹을 뿐이에요.”


희영은 지호와 거리를 좁혔다. 다가오지 마. 지호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요. 그저 힘들고 슬픈 사람으로 남기 싫어요. 우리 엄마, 우리 남편, 우리 아이들에게 떳떳한 딸, 아내, 엄마가 되고 싶어요. 나라도 움직여야 바뀌어요. 바람이 멈춘 배는 노를 저어야 나아가요.”


두 사람은 팔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지호는 희영을 보았다. 희영은 견디고 있었다. 울고 있었고 화를 내고 있었다. 애원하고 있었다. 얼굴 주름 사이로 지호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아픔 그리고 노력이 흉터처럼 깊게 새겨져 있었다.


“그냥 미지가 편히 쉬도록 가만두면 안 돼요?”


“그래도 돼요. 사람마다 아픔을 대하는 방법은 달라요. 정답은 없어요. 나는 우리 가족이 당한 일을 누군가 겪지 않길 바랄 뿐이에요. 미지 씨.”


희영은 미지의 이름을 따뜻하게 불러주었다. 지호는 벅차오르는 눈물을 꾹 눌렀다.


“미지 씨 하고 싶은 대로 해요. 누구도 탓하지 않아요. 탓할 수 없어요. 나도. 먼저 하늘로 떠난 그분도요. 그저 미지 씨가 행복하길 바랄 거예요.”


지호는 그렁그렁 눈물이 차오르는 눈으로 희영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등을 돌렸다.


“마음가는 대로 해요. 누구도 탓하지 않아요.”


지호는 도망치듯 회의장을 떠났다.


<계속>

keyword
작가의 이전글화성의 선물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