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의 선물 (5)

<루나시티> 연작소설

by 송건자

지호는 호버 버스를 타지 않았다. 지금 몰골로 버스를 탈 수 없었다. 지호는 무작정 걸었다.


미지를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숨 쉬는 모든 순간, 미지가 보고 싶었고 미지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언제까지나 추억에 잠겨 미지를 끌어안는 것만으로 지호는 만족했다.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들먹이며 대의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눈 감을 때까지 미지를 기억하고 싶었다. 바라는 건 그것 하나뿐인데 지호는 마음이 불편했다.


[구역 내 대기 조정 시간입니다. 5분 후, 10분간 비가 내릴 예정이니 외부에 계신 분들은 가까운 건물로 대피해주시길 바랍니다.]


강우 안내 방송에 사람들이 근처 건물로 뛰어갔다. 도로를 달리던 호버 카들도 제자리에 멈추고 경고 홀로그램을 둘렀다. 지호는 그냥 걸었다.


“저기요! 위험해요! 비 내린다고! 못 들었어?”


택시 기사가 창문을 열고 지호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지만 지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물방울이 바닥에 검은 자국을 내었다. 지호는 목을 젖혀 하늘을 바라보았다. 희뿌연 벽이 떨어지고 있었다. 지호는 겁이 났지만 이미 받아들일 각오를 다졌다. 미지를 만날 수 있다면.


폭포비를 각오한 순간, 지호의 몸이 붕 떴다. 정신을 차렸을 때, 지호는 택시 뒷좌석에 몸이 구겨져 있었고 택시 기사가 보였다. 솨아아— 내리는 폭포빗소리에 그는 몸을 움츠렸다. 그는 허둥지둥 제 몸을 더듬더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멍청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지호에게 소리질렀다.


“죽으려고 환장했어? 맨몸으로 비 맞으면 죽는 거 몰라?”


지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뭐여. 귀가 안 들려? 어이. 어이!”


택시 기사는 지호 귀에 대고 손가락을 튕겼다.


“루나시티가 처음이여? 뭔 소린가 하는 얼굴이구먼. 이봐, 젊은이. 루나시티에선 강우 안내 잘 들어야 합니다. 저거 맞으면 그냥 끽. 골로 가.”


택시 기사는 손날로 목을 그었다. 지호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어후, 하느님. 부처님. 알라님.”


택시 기사는 운전석 머리 받침에 머리를 박으며 깊은 숨을 내뱉었다.


정확히 10분 뒤, 폭포비가 그첬다. 택시 기사는 뒷좌석에서 내려 기지개를 켰다. 지호는 택시 기사를 따라나와 지갑에 있는 지폐를 전부 꺼냈다. 뒷문은 닫지 못해 비에 흠뻑 젖었고, 어찌 되었든 목숨을 구했으니 그 보답이었다.


“됐어. 무슨 돈이야. 집어넣어.”


부족하다면 전자 결제를 하겠다고 말했다.


“예끼. 이 사람. 날 뭘로 보고. 사람 구하는데 이유가 있어? 뭐? 그럼 집까지 태워줘? 으잉, 루나시티 처음 아니었어?”


택시 기사가 운전석으로 옮겨타고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했다. 호버 택시가 부드럽게 앞으로 미끄러졌다. 지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도로는 막히지 않았고, 사람들은 어딘가를 향해 발을 뻗었다.


택시 기사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스스로도 자신이 한 일이 얼떨떨했으리라. 택시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지호는 운임료 이상의 돈을 결제했다.


“아이, 안 그래도 된다니까. 아이 참. 고마워.”

지호는 문을 열고 반쯤 몸을 내놓았다.


“젊은이.”


택시 기사의 부름에 지호는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다음부턴 그러지 말어. 남은 사람들 생각해야지. 사는 게 힘들고 고달프지만 사는 데에는 또 이유가 있어. 괜한 참견이라고 생각지 말어. 조심히 들어가. 귀, 귀 잘 열어두고.”


지호는 멀어지는 호버 택시에 꾸벅 인사하고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갔다.


지호는 남은 휴가 내내 집에서 지냈다. 미지가 사놓은 매운 라면 볶음을 먹었다. 속이 쓰리고 눈물이 났지만 한 봉지만 남기고 다 먹었다.


지호는 화선 피해자 모임에 정기 후원을 시작했다. 지호는 전면으로 나서는 건 아직 마음이 동하지 않았지만 후원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미지와 함께 맛있는 식당에 가고, 놀이 공원에 가고, 영원히 만나지 못할 아이의 육아 비용이라 치면 아깝지 않았다.


지호는 장기 휴가를 마치고 회사에 복귀했다. 부장은 얼굴이 훨씬 좋아졌다고 말했다. 같은 부서는 물론 얼굴도 모르는 회사 사람들이 전보다 훨씬 보기 좋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지호는 매운 걸 조금 더 잘 먹게 되었다는 것 말고는 바뀐 게 없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주위의 관심을 굳이 밀어낼 이유가 없었다. 자신에게 보이는 관심이 다른 이름의 ‘화성의 선물’ 피해자에게 향한다면 더할 나위 없다.


지호는 화선 피해자 모임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미디어 뉴스에서는 단신으로도 소식을 접하기 어려웠다. 그나마 정기 후원자에게 보고 형식으로 날아오는 메일로 귀동냥을 했다. 기분 좋은 소식은 없었다. 후원금이 줄었고 봉사자가 줄었다. 정기 모임은 더 작은 공간으로 옮겨졌고, 모임 횟수는 두 달에 한 번으로 줄었다. 참석자도 하나둘 떠났다. 누구를 탓할 문제는 아니다. 현재는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었고, 과거는 삶의 우선 순위에서 한 칸 한 칸 밀려났을 뿐이다. 루나시티를 찾은 지구 대표와 희영이 활짝 웃고 있는 홀로그램 사진을 보았을 땐 루나시티와 지구연합이 합심해서 위기를 타개할 거라 기대했지만 끝내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어디가 더 잘못했고, 누구의 아픔이 더 크다고 비교할 시간이 없는데도 아물기 시작한 상처를 째며 각자의 아픔을 피로(披露)했다.


일년 뒤, 루나시티 화선 피해자 모임은 재검토의 벽을 넘지 못했다. 지구연합 화선 피해자 모임은 일년이라는 유예 기간을 한 번 더 얻었다. 루나시티 화선 피해자 모임 해산 소식은 단신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지호는 정기 메일 때문에 뉴스보다 해산 소식을 미리 알았다.


마지막 보고 및 당부의 말.


메일에는 LR 코드만 덩그러니 있었다. 링크에 접속하자 홀로그램 프로젝터가 빛을 뿜었다.


[안녕하세요. 루나시티 화성의 선물 정기모임 모임장, 희영 입니다. 마지막 보고이기에 직접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정기 후원자님들과 자원 봉사자님들, 지금까지 고마웠습니다.]


홀로그램 희영은 지호와 눈을 마주치고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하얀 숨이 정화기에 묻었다.


[비록 루나시티 화성의 선물 피해자 모임은 해산하지만, 여전히 관심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지구연합 화성의 선물 피해자 모임은 해산하지 않았으니 모쪼록 지금처럼 응원을 이어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의 공식적인 행보는 여기서 멈추지만 이대로 끝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좋은 기회로 또 만나기를 고대하겠습니다. 모두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 마음 깊이 바랍니다.]


희영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지호는 한 번 더 홀로그램 메시지를 재생했다. 지호는 올곧게 앞을 바라보는 희영을 바라보았다. 초롱초롱 반짝이는 희영의 눈을 보며, 지호는 이대로 희영의 무릎이 꺾이지 않을 것을 알았다. 희영은 지구로 내려가 진상을 밝히기 위해 끝나지 않은, 어쩌면 끝없는 싸움을 이어갈 것이다. 또 다른 미지와 희영, 그리고 지호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지호는 지구연합 화선 피해자 모임 일정을 검색했다. 지구연합 측 정기 모임은 매달 셋째 주 토요일이었다. 지호는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휴가를 써야겠다고. 지구로 내려가 희영을, 희영처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야겠다고 다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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