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1)

<루나시티> 연작소설

by 송건자

이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기로에 설 때마다 어깃장을 놓는 운명은 없다. 두 번이면 족하다.


센트럴 스테이션 5번 게이트 벤치에 앉아 있었다. 달 밖으로 나가는 외행선(外行船)은 오랜만이었다. 그것도 탑승객으로 71년 만이니 정말 오래 되었다.


“엄마, 우리 갈 수 있지?”


엄마는 토끼 같은 눈망울로 올려보는 아이를 끌어안았다. 아이는 자그마한 머리통을 엄마의 옆구리에 파묻었고 엄마는 아이의 등을 토닥였다.


첫 경험이 그렇다. 미지에 대한 긴장과 걱정. 새로운 것에 대한 설렘. 직접 겪어야 얻을 수 있는 성취감과 놀라움. 예상과 다를 때도 있다. 우주선이 지연되고 예약 시스템이 꼬이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하는, 사소한 일로 신경을 곤두세울 때도 있다. 간신히 도달한 결과에 적잖이 실망도 할 것이다. 바라고 또 바라지 않은 것을 겪으며 아이는 어른이 된다.


우주 여행이 처음이라도 아이는 금방 적응할 것이다. 우주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은 경이로울 만큼 금세 우주에 적응한다. 가르치지 않아도 치어가 광활한 바다로 나아가듯 말이다. 나와 서하는 무척 고생이 많았다. 중력과 무중력. 단어로는 가늠할 수 없는 경험들. 달로 이주를 결정하고, 부산 우주항 대합실에서 출항을 기다리며 마음을 졸였다. 까마득한 기억이다. 더 이상 우주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일평생 까만 바다에서 자맥질을 해왔으니 땅에 발을 붙이고 걷는 것보다 편안하다.


지금 이 순간, 걱정이 하나 있다면, 출항 시간이 지연되는 것이었다. 디바이스를 건드렸다. 벌써 2시간 째였다. 월내(月內) 우주선도 왕왕 연착하니 이정도는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달과 화성의 공전 궤도가 적절하게 맞물린 덕분에 달에서 화성까지 120일이면 닿을 뿐더러, 레비의 결혼식은 140일 뒤다. 하루 정도 늦게 출발해도 일주일 정도는 여유가 있다. 그래도 10일 넘게 우주에서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 건 아쉽다.


출발을 서두른 건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도 있지만 레비를 돕기 위해서였다. 내가 지구를 떠났을 때만큼 격식을 차리지 않는다지만 그것이 소홀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결혼 당사자들은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더욱이 손님을 직접 맞이하는 결혼식은 예전 결혼식과 다를 바가 없다. 거리가 멀어서 결혼식은 실황 중계로 퉁칠 줄 알았는데 레비는 나를 초대했다. 할머니, 나 결혼해. 레비가 청첩장을 내밀었을 때, 무조건 가겠다고 대답했다. 앞선 두 번의 경험에서 나는 형편없이 실패했다. 이번만은 절대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승무원 두 명이 게이트에서 나왔다. 그들은 베이지색 유니폼을 입었고, 홀로그램 스카프를 목에 둘렀다. 홀로그램 스카프는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은화처럼 하늘거렸다. 한 올도 빠짐없이 머리를 올려 묶었고, 과하지 않은 화장은 깔끔해 보였다. 옷깃엔 각각 노란색 배지와 하얀색 배지를 달았다. 노란색 배지 밑엔 ‘야마다’, 하얀색 배지 밑엔 ‘존슨’이라 새겨진 금속 명찰이 조명에 반짝였다.


벤치에서 시간을 죽이던 사람들은 두 승무원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에 주목했다. 출발 시간은 4시간 23분, 도착 예정일은 이틀 반이 미뤄졌다. 기내 안전을 위해 출발을 지연한다는 대략적인 안내방송 밖에 듣지 못한 터라—이것도 3시간이 넘어서 겨우 얻은 정보였다— 다들 예민했다. 사람들 얼굴에 짜증이 가득했지만, 승무원들의 등장에 조금 기대했다. 이제라도 출발한다면. 다들 이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랬다. 레비와 함께 할 시간이 줄어든 게 아쉽지만 결혼식에 제때 참석할 수 있으면 그걸로 족했다.


승무원들이 벤치 앞으로 걸어나왔다. 존슨이 야마다보다 한 발 앞에 서있었는데, 존슨은 담담해 보였고, 야마다는 의연한 척했지만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존슨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한 마리의 백조처럼 대합실을 둘러보았다. 그는 손님들의 주목을 충분히 빨아들이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화성편 FLTM-208편을 기다리는 승객 여러분께 죄송한 말씀 드립니다.”


두 승무원은 동시에 허리를 굽혔다. 불길함이 사람들의 발목을 적셨다.


“FLTM-208편 스페이스 점프 787 운행을 지속하기에 큰 결점을 발견했습니다. 정비사와 정비 AI의 공통 판단에 따라 이대로 출항을 속행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결항을 결정했습니다. 너무 늦게 안내를 드리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


두 승무원은 다시 허리를 굽혔다.


“엄마, 우리 형아 못 보는 거야?”


아이가 엄마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아니, 볼 수 있어. 괜찮아. 괜찮아.”


엄마는 부풀어 오른 아이의 볼을 부드럽게 매만지곤 아이를 끌어안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기대는 고스란히 분노로 탈바꿈했다. 사람들은 씩씩거리며 승무원들을 둘러쌌다. 존슨의 아래뺨이 부풀었다. 이미 이런 상황을 각오한 모양이었다. 야마다는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목이 새빨갰고 코끝이 땀으로 번들거렸다. 슥 건드리면 화장이 지워질 것 같았다.


“4시간 반이 지났어. 4시간 반이! 더 빨리 알려줬어야 취소를 하든 말든 할 거 아냐!”


“당신들 때문에 10억 계약이 날아갈 판이야. 어떻게 책임질 거야! 당신들 말고 더 높은 인간 나오라 그래! 당장!”


“해결책은요? 결항 안내가 끝이에요?”


“사과만 하면 땡이야? 당신, 이름 뭐야. 내가 컴플레인 걸 거야.”


“그러면, 다음 직항은 언제에요? 나 꼭 화성 가야 하는데……”


사람들은 저마다 제 할 말만 쏟아냈다.


야마다는 마구잡이로 날아오는 질문을 전부 받아치기 위해 허둥지둥댔다. 존슨은 야마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디바이스를 건드렸다. 화면 위로 홀로그램 글자가 떠올랐다.


“다음 직항은 5일 뒤입니다. 3일 뒤에 있을 직항편 우주선도 동일한 결함이 발견되어 출항 불가를 고지했습니다. 5일 뒤에 있는 직항편은 정상 운행을 위해 다른 우주선을 수배한 상태입니다. 이 항공편은 차질 없이 운행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5일이나? 도착이 며칠이나 미뤄지는지 알고 하는 얘깁니까? 그걸 보상이라고… 나 바쁜 사람이에요!”


“저희가 마련한 해결책과 보상안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준비한 보상안은 세 가지 입니다. 첫 번째, FLTM-208편에 대한 전액 환불입니다. 저희 우주항공사의 준비 미흡으로 발생한 사고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두 번째, 5일 뒤 예정된 화성 직항편, FLTM-204편의 예약입니다. 먼저 양해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출항 중지를 결정하면서 즉각 티켓 판매를 중지했지만, 여기 계신 분들이 모두 탈 수 있는 자리를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제2안을 선착순으로 진행하게 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세 번째, 지구 경유편 예약입니다. 이미 다른 우주 항공사에게 협조를 구했습니다. 화성편도 자동으로 확보가 되도록 협조를 구했습니다. 당장 70분 뒤에 있을 FLTE-679편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제3안도 선착순으로 진행하게 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존슨과 야마다는 어느 때보다 깊이 허리를 굽혔다. 사람들은 궁시렁대며 불만을 토로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없는 직항편이 생기지 않는다.


“오랫동안 기다려주신 승객 여러분께 선택을 강요하여 죄송합니다. 저희 스페이스 윙 항공사가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빠른 진행을 위해 결정하신 분들은, 저와 여기 야마다 승무원에게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한, 세 방법 모두 마음에 들지 않은 승객께서는 다른 분들을 먼저 도와드리는 점, 양해 부탁드리며 앉아서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상황 판단이 빨랐다. 승무원들을 탓해도 현실이 변하지 않는다. 승무원을 둘러싼 사람들은 그대로 승무원들에게 달라붙었다.


“두 줄로 서주세요. 여러분들이 협조해주셔야 안전하고 신속하게 끝낼 수 있습니다.”


존슨은 목소리를 높였다. 야마다는 존슨에게 한 걸음 비켜서서 하얀 장갑을 낀 손을 들었다.


선택지가 무려 세 개나 주어졌지만 정작 내가 고를 수 있는 건 하나였다. 결혼식에는 무조건 참석해야 하니 전액 환불은 선택할 수 없다. 다음 직항편도 고를 수 없다. 대략적인 셈법으로도 5일 후에 출발하면 예정일보다 60일이나 늦어진다. 결혼식이 지나서 도착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선택은 자연스레 세 번째로 흘렀다. 지구를 경유해야 하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선택권은 없다. 아주 잠깐 고민하는 사이, FLTE-679편은 사람이 다 차버렸다. 2시간 뒤에 있을 FLTE-670편이 가장 빨랐다.


<계속>

keyword
작가의 이전글화성의 선물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