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3)

<루나시티> 연작소설

by 송건자

“FLTE-670편 탑승을 시작하겠습니다.”


승무원이 게이트를 열었다. 사람들이 하나씩 짐을 챙겨 일어났다.


“엄마, 빨리 타자!”


아이는 벤치에서 폴짝 뛰어내려 엄마 손을 끌어 당겼다. 엄마는 캐리어 손잡이를 잡고 못 이기는 척 아이에게 이끌렸다.


내 자리는 창가 좌석이었다. 내 옆자리로 엄마와 아이가 이미 앉아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가볍게 목 인사를 했다. 엄마는 동동거리는 아이의 무릎에 손을 얹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이가 시끄럽지 않도록 주의시킬게요.”


엄마는 아이에게 안전벨트를 채우면서 내게 속삭였다.


“괜찮아요.”


나는 사람 좋은 웃음을 보였다.


“엄마, 나 바깥 보고 싶은데…….”


아이는 엄마 얼굴을 올려다보고는 나를 슬쩍 보았다.


“화장실 안 갈 자신 있어?”


아이는 조그마한 입술을 모으고 머리를 좌로 기울이더니 고개를 저었다.


“창가 자리는 우리 자리가 아니니까 떼쓰면 안 돼.”


아이는 토끼 같은 눈으로 나를 슬쩍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우주선, 곧 출발합니다. 테이블에 올려둔 물건은 모두 가방에 넣어주시고, 가방은 좌석 밑 선반에 넣어주시길 바랍니다.”


몸이 오른쪽으로 쏠렸다. 창밖을 보니 우주선이 궤도 레일로 이동하고 있었다. 덜컹, 하는 소리와 진동이 크게 몸을 흔들었다.


“우리 우주선, 30초 뒤 출발합니다. 안전 벨트를 메고 승무원 지시에 따라주세요.”


좌석 디스플레이에 30이 떠올랐고, 0이 되자 격한 진동이 온몸을 뒤흔들었다.


나는 아이를 슬쩍 보았다. 자기 몸무게에 육박하는 중력을 맞서는 건 처음일 것이다. 우리 기주도 첫 우주선 여행에서 가슴이 아프다고 울었다, 고 서하가 알려주었다. 아이는 읍, 읍, 숨을 짧게 끊어 쉬며 엄마 손을 꼭 붙잡았다. 내가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나는 똑바로 앉아 온몸을 짓누르는 중력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달에서 지구까지 16시간이 걸린다. 현재 시점의 공전 궤도라면 지구에서 화성까지 130일이 걸리니 결혼식에는 늦지 않을 것이다. 한숨 자고 나면 지구에 도착해있을 것이다.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오랜 대기에 몸은 피로에 절여졌는데도 이상하게 정신은 말똥말똥 깨어있었다. 나는 감이 잘 오지 않는 화성과의 거리를 가늠했다. 달에서 지구까지 가는 거리는 지구에서 화성까지 가는 거리는 700배나 차이난다. 공전 궤도에 따라 행성 간 거리가 달라지는데, 지금은 대략 640배 정도 차이난다. 이 정도면 비교적 적은 차이지만, 지구로 날아가는 이 순간에도 나와 레비는 시시각각 멀어지고 있었다. 도착 예정일 보다 많이 늦어지겠지만, 결혼식에 늦지 않을 것이다. 지구에서는 연착이 없기를 바랐다.


우주선이 정상 궤도에 오르자 아이는 엄마의 손을 만지작 거리며 첫 우주 여행의 흥분을 쏟아냈다. 그러기를 잠시 아이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훈련을 받았어도 순식간에 늘어난 중력을 견디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까만 우주 속 창백한 푸른 점이 크기를 더했다. 죽을 때까지 지구를 밟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루나시티가 붕괴해도 마스 돔(Mars Dome)이란 선택지가 생긴 이상, 지구에 일 초도 발을 밟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나는 달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스스로 루나리안이라고 여겼다. 애프터 루나 세대 중에서 1세대가 달을 개척한 공로를 인정하면서 진정한 루나리안이 아니라고 말하는 부류가 있다. 그렇다고 지구인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달의 이주가 시작되었을 당시, 적지 않은 지구인들은 이민선에 오른 동포를 배신자라고 불렀다. 교과서에 나올 법한 순한 표현이지 실상은 더했다. 우주 방사선에 암이나 걸려 뒈져라. 평생 괴물이나 낳아라. 지구에 얼씬도 하지 말아라. 배신자 달토끼를 유압 프레스로 눌러 죽여라. 어쩌다 소매가 스치면 대놓고 소독제를 뿌렸다. 우리는 살고 싶어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났을 뿐인데 그들은 우리를 욕하고 손가락질 했다.


처음에는 그들의 그림자만 봐도 무서웠고, 묻지 않아도 변명을 늘어놓고 싶었다. 먹고 살기 위해 달로 갔을 뿐이에요. 나도 죽겠다구요. 하지만 그들에게 이미 나는 배신자였고, 죽여 마땅한 달토끼였다. 우주에 올라오지 못한 부러움 때문일까? 미지에 대한 공포일까? 그 이유를 물을 수 없었고, 시간이 지나선 묻고 싶지 않았다. 다가갈 수 없을 뿐더러 상대가 여자인 걸 알면 더 불쾌한 이야기를 입에 담았다. 본인 성별이랑 상관없이. 고개를 저었다. 이미 지나간 이야기다.


“아이가 시끄러웠죠?”


엄마가 불쑥 사탕 하나를 내밀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엄마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고는 서둘러 입꼬리를 당겼다.


“어휴, 아니에요. 잘 참던데요? 기특해요.”


엄마에게 가려진 아이를 건너 보았다. 아이는 등받이에 머리를 박고 입을 벌리고 있었다. 엄마는 아이의 입을 닫고 목을 가누었다. 아이는 싫증난 소리를 내고는 다시 꿈나라에 빠졌다. 엄마는 아이의 이마를 쓰다듬고 입을 맞췄다.


“정말 사랑스러워요.”


사탕을 집었다. 엄마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포장지엔 떡방아를 든 루나래빗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루나래빗은 루나시티를 대표하는 캐릭터다. 드물게 여객항에서 일이 끝났을 때, 기주를 위해 루나래빗 사탕을 샀었다. 기주가 좋아했었나.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포장지를 벗기자 보름달을 닮은 동그란 밀크색 사탕이 드러났다. 나는 그것을 입에 넣었다.


“엄청 달진 않네요.”


“처음 드셔보세요?”


고개를 끄덕였다. 기주에게 사준 적은 있어도 먹어본 적은 없었다.


“적당히 달아서 유일하게 허락하는 간식이에요.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자극적인 건 덜 주려고요.”


엄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떤 일로 화성에 가세요?”


갑작스런 질문에 대답을 망설였다. 눈앞에 있는 여자가 내게 해코지를 할 이유는 없고,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는데 본능적으로 주저했다. 헬멧없이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오랜만이라설까?


우물쭈물하는 사이, 엄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아들 결혼식 때문에 화성에 가요.”


“결혼식을 멀리서 하시네요.”


“말만 결혼식이지. 가족 모임이에요. 아들 얼굴도 보고 겸사겸사 어떻게 사는지도 보려구요.”


머릿속에 두 가지 물음표가 떠올랐다. 옆에 앉은 아이는 여섯 살로 보이는데 나이 차이가 많은 아들이 있다니 놀라웠다. 여자는 그다지 나이가 들어보이지 않았다. 그보다 화성에 결혼식?


“사실 저도 결혼식 때문에 화성에 가요.”


엄마의 눈이 커졌다. 두 사람의 머리에 같은 생각이 떠올랐을 것이다.


“혹시 신부 이름이……?”


엄마는 한껏 기대한 얼굴로 내 입술을 바라보았다.


“레비 하워드에요.”


반짝이던 엄마의 눈에 아쉬움이 스쳤다.


“세상이 좁다 좁다 해도 그정돈 아닌가 봐요. 이제는 화성까지 갈 수 있으니 당연할까요?”


엄마는 입을 가리고 수줍게 웃었다.


“그나저나 결혼할 만한 아들이 있을 거라곤 생각 못했어요.”


“저요?”


고개를 끄덕였다.


“칭찬이죠?”


“그럼요.”


“고마워요. 저희 애가 일찍 결혼한 편이에요. 23살밖에 안 된 애가 이 세상을 다 주고서도 못 바꿀 사람이라고 어찌나 자신만만하던지.”


“파트너는 보신 적 있으세요?”


엄마는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떠세요?”


“잘 골랐더라구요. 누굴 닮아서 사람 보는 눈이 좋은지.”


“마음에 드신다고 하니 다행이에요.”


“제가 반대한다고 물러설 애도 아니에요. 화성도 가지 말라고. 가더라도 너무 이르다고 했었는데. 아, 참. 레비 양, 양 맞죠? 딸이신가요?”


“증손주예요.”


엄마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내 얼굴을 사정없이 더듬었다. 나는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돌렸다.


“어머, 죄송해요. 저 정도면 관리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서 명함 내밀면 안 되겠네요.”


“어휴, 아닙니다.”


나는 공연히 손사래를 쳤다.


“지구는 가보신 적 있으세요?”


또다시 대답을 망설였고, 레비가 참견했다. 할머니, 요즘 세상에 인종차별이라니. 우리 파브리엘은 안 그래요. 차별주의자였으면 저랑 결혼 했겠어요? 나는 얼빠진 웃음을 내뱉었다. 그런 시대가 아니란 것도,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도 변했다는 것도 알지만 내가 겪은 일은 여전히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다.


“저는 지구 처음이에요.”


엄마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중력 변화가 무서워서 여행갈 생각도 못했어요.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놀이기구도 못 타요. 그 싸—한 느낌 아시죠? 못 견뎌요. 벌써부터 우리 꼬맹이가 히노데 테마파크 가자고 할 날이 겁나요.”


“우주선 이륙할 때 괜찮으셨으면, 놀이기구도 괜찮으실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한 번 경험해봐야 하는데. 자꾸 겁이 나네요.”


엄마는 오리부리처럼 입술을 내밀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세상에 꼭 해야 하는 건 없어요. 저도 오랜만에 지구에 가요. 정말 오랜만에.”


“루나시티 살면 우주 여행 쉽게 할 수 있지 않냐 하는데 월내 여행은 몰라도 우주 여행은 다르잖아요.”


“비싸기도 하구요.”


별안간 엄마가 몸서리쳤다.


“갑자기 떨리네요. 지구 중력, 괜찮겠죠?”


“별거 아니에요.”


“엄마가 이렇게 긴장한 걸 애가 알까요?”


“애들은 엄마는 뭐든 잘할 거라고 믿죠.”


“그래서 제가 모르는 건 무조건 막나봐요. 아이의 호기심을 잘라버리면 안 되는데, 마음처럼 잘 안 돼요. 화성도 저 혼자 가려고 했어요. 기간도 길고, 중력 변화를 아이가 견딜 수 있을까. 걱정도 됐고요. 저는 중력 훈련을 오래 받았거든요.”


“저도 중력 훈련을 받았어요.”


“얼마 짜리 받으셨어요?”


“4주 코스 받았어요. 수료증이 빨리 나오는 걸로요.”


“정말 4주만으로 적응이 되시던가요?”


고개를 끄덕였다. 적응이 되든 안 되든 상관없었다. 무조건 빨리 나오는 게 답이었다.


“막 어지럽거나 그러지 않으셨어요?”


“먹고 사는 게 먼저라서 그런지 몰라도 잘 견뎠어요.”


“부러워요. 창피하지만 저는 10주 코스를 받고 4주를 더 받았어요. 이, 이게 안 되더라구요.”


엄마는 몸을 꽈배기처럼 빙빙 꼬았다가 두 팔을 쭉 벌렸다. 제대로 된 기본 밸런스 동작은 소금쟁이처럼 다리도 팔처럼 쭉 벌려야 한다.


“혹시 병이 있으신 건 아니구요? 스노그 이석증이라던가…”


“MRI도 찍고 엑스레이도 찍고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해봤는데 정상이래요. 사람마다 중력 변화를 감지하는 게 조금씩 다른데 제가 더 예민하다고 하더라구요. 스노그 이석증까지는 아니구요.”


“고생하셨겠어요.”


“많이 나아졌어요. 아이도 저처럼 고생할까 봐 놓고 가려고 했는데 형을 워낙 좋아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이번에 못 보면 언제 또 만날지 모르니까요. 홀로그램 통화는 곧 죽어도 싫대요.”


엄마는 코 잠든 아이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그러면 데리고 가야죠.”


결혼식을 못 보는 게 얼마나 속상한 지 겪지 않으면 모른다. 나는 아직도 그 시간을 후회하고, 죽을 때까지 후회할 것이다.


“화성…, 괜찮을까요?”


엄마는 깍지손을 끼고 손마디를 주물렀다.


“루나시티도 세워졌을 땐 다들 한마음 한뜻인 것처럼 굴었잖아요. 아이가 마스 돔이 개방할 때부터 정착하면 나을 거라는데. 정말 그럴까요? 어른들 말씀 지겹도록 들었지만 저는 애프터 루나 세대라서 겪진 못했으니까요.”


엄마는 조심스레 나를 보았다. 어떠셨어요? 그렇게 묻는 것 같았다.


루나리안 드림따윈 없었다. 바뀐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웠고, 지구를 떠났다는 이유로 생면부지에게 손가락질 받는 것도 견디기 어려웠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고 싶을 뿐이었다. 레비가 화성에 정착할 거라고 말했을 때, 마션 드림은 없다고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먼저 나설 필요는 없다고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내 시간을 겪었을 뿐이다. 레비의 시간을 겪지 않았다. 되돌아보면 괴로웠던 시간이 마냥 싫었던 건 아니다. 서하와 함께라서 견딜 수 있었고, 기주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허겁지겁 달려든 직업은 운좋게 적성에 맞았다. 비록 그 시간 때문에 엄마다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지금도 후회하지만 만약 그때로 돌아가도 나는 똑같이 할 것이다. 서하를 위해서. 기주를 위해서. 우리 가족을 위해서.


“어후, 어후.”


엄마는 양손을 교차하며 허공을 휘저었다.


“또 걱정이네요. 우리 애가 어련히 잘할까 믿는데도. 병이에요, 병. 이건 어떻게 해서도 안 고쳐지나봐요. 걱정병 검사는 없을까요.”


“걱정하는 게 당연해요. 저도 걱정인걸요. 하지만 마스 돔은 루나시티처럼은 되지 않을 거예요. 시대가 바뀌었잖아요. 사람들 인식도 달라졌고.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니 잘하겠죠.”


“맞아요. 우리 아이들이니…… 왜 이리 걱정이 많은지 모르겠어요. 저희 부모님도 그러셨겠죠?”


나는 싱긋 웃었다.


우리는 지구에 도착할 때까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었다. 대부분 엄마가 말하고 나는 들었다. 말주변이 없는 나로서는 다행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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