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4)

<루나시티> 연작소설

by 송건자

나와 모자(母子)는 휴스턴 스페이스 센터에 내렸다. 동행이 있는 것만으로 여행길이 즐겁다는 걸 처음 알았다. 새삼 서하와 여행을 자주 가지 못한 게 아쉬웠다.


나와 모자의 동행은 여기까지였다. 화성으로 가는 우주선 예약이 꼬였는지 나와 모자가 타는 우주선이 갈렸다. 어차피 동면 때문에 대화를 나눌 수 없겠지만 기껏 친해졌는데 헤어져야 한다는 게 아쉬웠다. 우리는 식별 아이디를 묻지 않았다. 기분 좋게 나눈 시간을 의무적인 관계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처음이 만들어준 짧은 인연을 소중히 간직하기로 했다.


아이가 간식 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포장지에 손하트를 내민 루나래빗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쪼그려 앉자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두 손을 모아 내밀었다.


“고마워요.”


아이는 내 손에 사탕을 살포시 내려놓고는 엄마 뒤로 숨었다.


“손주분께 결혼 축하한다고 전해주세요.”


“고마워요. 아드님께도 결혼 축하한다 전해줘요.”


우리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뒤돌았다. 각기 다른 게이트로 향했다. 충분히 멀어졌을 즘,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는 엄마 손을 꼭 붙잡고 참새처럼 재잘재잘대었다. 내가 겪지 못한 시간이 부러웠고, 그 행복을 눈 감을 때까지 간직하기를 바랐다.


승무원은 디바이스에 저장한 티켓을 확인하고, 지정된 동면 캡슐로 안내했다. 동면 캡슐은 파라오 관처럼 보이기도 했고, 장난감 패키지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홈에 다리와 팔을 끼워넣었다. 알맞은 위치에 사지를 놓자 빈틈없이 팔과 다리가 채워졌다. 온몸을 감싸는 안마 의자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승무원이 동면 캡슐을 살폈다. 미리 기입한 내 신체 정보와 평균 연령에 따른 정보를 비교하여 내게 알맞은 수치를 조정하는 모양이었다. 모든 조치가 끝난 승무원은 전문적인 미소를 지으며 캡슐을 닫았다.


“FETM-112편 승객님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리 우주선은 쾌속선으로, 동면 캡슐 이용 우주선입니다. 우주선 출발 시, 중력 가속도 급변으로 매우 위험하오니 무수면 여행을 사전 체크하신 분들도 동면 캡슐에 들어가주시길 바랍니다. 운행 궤도에 오르면 깨워드립니다. 승무원 지시에 따라주시고, 궁금한 점은 근처 승무원에게 물어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내 방송이 다양한 언어로 흘러나왔다.


얼굴 위치에 투명 디스플레이가 있어서 바깥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승무원은 끊이지 않고 들어오는 승객을 친절하게 응대하며 동면 캡슐로 안내했다. 정비 문제로 우주선이 예정보다 7분 늦게 궤도 레일로 옮겨졌다. 예상 도착 시간이 81분 늘어났다.


디스플레이가 외부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었다.


“우리 우주선, 3분 뒤 출발합니다. 동면 시작하겠습니다.”


기장의 안내가 끝나자 디스플레이 가운데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동면 캡슐 내부 조명이 백색에서 오렌지색으로 바뀌었다. 이내 몸이 나른해졌다. 흐린 시야 속에서 동면 캡슐 사이를 오가는 승무원들이 보였다. 카운트다운이 1분 남짓 남았을 때, 승무원들도 서둘러 동면 캡슐로 들어갔다. 그들의 동면 캡슐이 오렌지색으로 바뀌는 모습을 끝으로 암흑 속으로 빠져들었다.


붉은 모래가 휘날리는 야외 결혼식장에서 레비와 레비의 파트너가 손을 잡고 황적색 버진 로드를 걸었다. 부부는 하객들에게 손을 흔들며 환히 웃었다. 붉은 모래가 그들을 훑는데도 그들의 표정은 밝았다. 나는 레비를 향해 박수를 쳤다. 레비가 나를 발견하고 할머니, 목소리를 높이며 손을 높고 크게 흔들었다.


“우리 우주선, 40분 뒤 마스 돔 중앙 우주 공항에 도착합니다. 대기권 돌파 및 착륙 시 흔들림이 발생하오니 되도록 캡슐 안에서 대기해주시길 바랍니다. 불편한 점이 있으면 상단 승무원 호출 버튼을 눌러주시길 바랍니다. 현재 시각 5월 27일 14:39 MST(Mars Standard Time)입니다. 감사합니다.”


디스플레이가 붉은 별을 비추었다. 붉은 별은 크기를 더했고, 그 위에 넓게 퍼진 푸른 점이 보였다. 투명한 반구가 푸른 점을 덮었고, 반구 속엔 하얀 뭉게구름이 떠다녔다.


승무원이 동면 캡슐을 열었고, 나는 사람들을 따라 다리를 움직였다. 사람들에게 떠밀려 어리숙하게 심사대 앞에 줄을 섰다. 디바이스를 심사대 단말기에 꽂자 출입국 심사관 홀로그램 프로젝터에 내 얼굴이 빙글빙글 돌았고 그 밑에 식별 아이디가 떠올랐다. 심사관은 식별 아이디와 사전 입력 정보, 그리고 내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어떤 일로 마스 돔에 왔나요?”


“손주 결혼식 때문에 왔어요.”


사무적인 심사관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그는 단말기에서 디바이스를 뽑아 내밀었다.


“결혼 축하해요. 마스 돔에 온 걸 환영해요.”


거침없이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노란색 안내 표지판 속 검정 화살을 따라 겨우겨우 움직였다. 공항을 빠져나오니 신선한 바람이 뺨을 간지럽혔다.


도로변을 따라 늘어선 택시 대기줄에 섰다. 한 명씩 호버 택시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졌고 내 차례가 되었다. 뒷문을 열고 택시에 올랐다. 나는 어쩔 줄 몰랐는데 운전대가 없었고 전좌석이 비어있었다. 이상함을 감지하고 내리려는 찰나 인공 합성음이 들렸다.


“목적지를 알려주세요. 안전하게 모셔다 드립니다. 이것은 믿을 수 있는 무인 택시입니다.”


반쯤 걸친 엉덩이를 도로 집어 넣었다.


“감사합니다. 목적지를 알려주세요.”


나는 디바이스에 저장한 메모를 열어 더듬더듬 읽었다.


“그린 씨. 쓰리 웨이브. 2-1.”


레비와 그 파트너가 일찍이 터를 잡은 보금자리다.


“그린 씨. 쓰리 웨이브. 2-1. 확인했습니다. 안전벨트를 해주세요.”


매끈한 좌석 사이로 안전벨트가 빼꼼 머리를 들이밀었다. 안전벨트를 매자 문이 닫혔다.


“출발하겠습니다.”


호버 택시가 부드럽게 미끄러졌다.


차창 밖에 보이는 사람들은 자유롭고 행복해 보였다. 손을 잡고 환히 웃으며 가볍게 발을 구르는 모습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이상향처럼 느껴졌다. 저들이라고 고민이 없겠느냐만 달에 이주했을 때와는 달라보였다. 적어도 레비가 누구도 살아보지 못한 푸른 사막에서 누구도 겪지 않은 문제로 골머리를 썩힐 것 같지 않았다.


“할머니!”


레비는 예정보다 열흘 반 늦게 도착한 할머니를 반갑게 맞이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연락도 안 하시고. 걱정했어요.”


“우주선이 고장 나서 돌아 돌아 왔어. 연락한다는 게 깜빡했지 뭐니. 늦지 않아 다행이야.”


“결혼식이 대수예요. 저는 무슨 일이 있는 줄 알고……”


걱정으로 가득한 손주의 얼굴을 끌어안았다. 레비는 더욱 내 품에 파고 들었다.


내가 겪은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고생 많았다며 레비는 내 손을 잡았고, 옆에서 대화를 듣던 레비의 파트너, 파브리엘은 나를 안아주었다. 그는 레비보다 조금 작았는데 웃는 모습이 무척이나 따뜻한 것이 좋은 사람처럼 보였다. 서하도 내 눈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기주랑 제이는. 안 오니?”


“LR 코드로 접속해서 결혼식 영상을 볼 거예요. 시간 차는 있겠지만요.”


레비가 말하길, 기주는 출장 때문에 오지 못했고(내게 일을 그만두라고 했을 나이보다 곱절은 더 많은 나이다), 제이 부부는 외우주로 향하는 우주선을 타고 있어서 오지 못했다. 제이 부부는 항상 외우주를 동경했고, 레비가 제 앞가림을 할 수 있게 되자 미련없이 꿈을 찾아 떠났다.


“할머니가 오셔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레비가 내 손에 깍지를 꼈다. 아이의 손은 따뜻했고, 조금 떨고 있었다. 레비의 손등에 손을 얹었다.


“할머니도 올 수 있어서 정말 기뻐.”


레비가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나는 아이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레비의 결혼식에 직장 동료 다섯 명이 참석했다. 나를 포함한 여섯 명이 결혼식에 참석한 손님 전부였다. 레비와 파브리엘을 통틀어 가족은 나 혼자였다. 별것 아닌 일에 뿌듯해 하며 레비에게 손을 흔들었다. 레비는 이 세상 누구보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각기 다른 시차 간격을 두고 기주와 제이의 축하 인사가 날아들었다. 기주는 엄마의 참석에 놀라면서 저 대신 가줘서 고맙다 말했고, 제이는 우리 딸 축하한다며 항해 중 찍은 하트 모양 은하 사진을 보냈다. 레비는 모두 보고 싶다며 건강하게 지내라고 한바탕 눈물을 쏟았다.


결혼식이 끝난 날, 파브리엘은 레비의 곁을 양보했다. 나와 레비는 마주보고 누웠고, 레비는 언제나처럼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할머니 냄새, 그리웠어요.”


이젠 품에 들어오지 않는 아이를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한동안 얌전히 얼굴을 묻은 아이는 고개를 빼들고는 내 얼굴을 올려보았다.


“할머니도 여기서 살면 안 돼?”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아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파브리엘도 좋대. 여기 남는 방도 많아. 할머니가 가만히 있으면 좀이 쑤시는 걸 알지만, 이제는 쉴 때도 되었잖아요. 아니면 나도 할머니가 할 만한 일을 찾아볼게. 응? 할머니.”


레비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차올랐다.


“…이대로 가시면 다시 못 볼지도 모르잖아요.”


나는 레비를 끌어안았다. 응. 응. 대답도 아닌 소리를 웅얼거리며 아이의 등을 하염없이 쓰다듬었다. 가슴이 촉촉히 젖어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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