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시티> 연작소설
다음날, 레비의 집에서 나왔다. 레비는 절대 못 나간다고 캐리어를 인질로 잡았지만 정중하게 거절했다. 레비와 파브리엘은 신혼 여행을 가지 않고, 출근했다. 그래서 두 사람의 빈 보금자리에 머무는 것이 민폐처럼 느껴졌다. 레비는 전혀 불편하지 않다고 오히려 사람이 있는 게 낫다고 우겼지만, 내가 집에 있는 동안 레비는 계속 나를 신경 쓸 것이다. 퇴근 후엔 몸과 정신력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 때때로 사랑하는 할머니는 내쫓지도 못해서 불청객보다 못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더 머물었다간 레비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말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내가 가야하는 길이 있고, 레비는 레비가 가야하는 길이 있다. 이곳엔 내가 갈 길은 없었다.
집을 나가는 대신 화성에 머무는 동안은 함께 저녁을 먹기로 약속했다. 파브리엘이 내놓은 중간책이었다. 나는 망설였지만 서운해하는 레비를 보니 마음이 약해졌다. 나는 못 이긴 척 승낙했다. 레비는 품에 달려들었고, 나는 아이의 등을 토닥였다. 나는 레비에게 좋은 할머니이고 싶다. 언제까지나.
평생 성실하고 미련하게 일한 덕분에 마스 돔에서 일주일을 더 묵을 수 있었다. 가장 저렴한 호텔도 달에 비하면 비쌌지만 지금이 아니면 화성에 언제 오겠어.
레비와 파브리엘이 퇴근하기 전까지 나는 주어진 시간을 즐기려 했다. 마스 돔 명물 블루 샌드를 먹었고 유토피아 수원(水源)을 거닐었다. 가장 마음에 든 장소는 마스 돔 중앙 대로를 따라 형성된 대공원이었다. 루나시티는 센트럴이 모든 중심이라며 빌딩을 높이 세웠었다. 그런 장소에 대공원이라니. 마스 돔은 루나시티와 달랐다.
점심 일과는 중앙 대공원 산책으로 정해졌다. 내 옆을 지나는 자전거를 탄 사람들과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손을 흔들었다. 화성에 있는 모든 이가 그러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금방 익숙해져선 내가 먼저 손을 흔들곤 했다.
“엄마!”
익숙한 목소리에 귀가 쫑긋 섰다. 행복을 빌었던 모자였다. 그들은 아들과 아들 파트너와 함께였다. 아이는 형과 형의 파트너의 손을 나눠잡고 걸었고, 엄마는 한 걸음 물러서서 디바이스로 사진을 찍었다. 엄마의 얼굴엔 아이들을 향한 상냥함과 앞으로의 걱정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며 미묘한 표정을 빚었다.
“엄마!”
큰아들이 엄마를 불렀다. 엄마는 종종걸음으로 아들에게 다가갔다. 큰아들은 근처 환경미화 로봇에게 디바이스를 건넸다. 환경미화 로봇 몸통에서 튀어나온 가느다란 팔이 디바이스를 잡았다. 네 사람은 한 몸처럼 달라붙어선 디바이스를 향해 활짝 웃었다. 그들 뒤엔 기념할 만한 랜드마크가 없었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들이 함께라는 것이다. 나는 저들이 무사히 만났음에, 그리고 행복한 시간을 보냄에 감사했다.
모래 시계 속 모래가 다 떨어졌다. 푸른 사막은 산책만으로도 힐링되었고, 마음 같아선 못 이기는 척 레비에게 응석 부리고 싶었지만 한동안 일을 하지 않으니 좀이 쑤셨다.
레비가 공항까지 마중을 나왔다. 출국 심사대를 앞두고 레비와 진한 포옹을 나눴다.
“내가 갈 때까지 건강해야 해요.”
“할머니가 다시 올게.”
우리는 새끼 손가락을 걸었지만,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았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고, 우주는 넓다. 마지막은 처음과 같아서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구태여 마지막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 이별이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영원한 이별이 아닐 수도 있다. 약속대로 내가 화성에 올 수 있고, 레비가 달로 올 수 있다. 마지막은 처음과 다르게 우리가 정할 수 있다.
1번 게이트에서 지구행 우주선을 기다렸다.
원래는 루나시티 직항 항공권을 구매하려 했지만, 이상하게 지구 경유편에 눈이 갔다. 3일의 여유가 있는 스톱오버 옵션이었다. 붉은 별이 푸른 별이 된 것처럼 지구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은근한 기대감이 서서히 피어올랐고, 그 기대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물론 그것을 확인하기엔 3일은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구태여 변하지 않은 모습을 확인하고 다시 실망할지도 모른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게 있으니까. 어쩌면 내가 변하지 않아서 똑같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멋대로 겁내고 멋대로 실망할지도. 하지만 직접 겪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똑같은 경험도, 비슷한 경험도 없다. 처음을 겪을 뿐이다.
우주선에 올라 동면 캡슐에 몸을 끼워넣었다. 두 번째라고 자연스러웠다. 동면 캡슐이 닫히자 기장의 안내가 들렸다.
“FMTE-214편 승객님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리 우주선은 쾌속선으로, 동면 캡슐 이용 우주선입니다. 우주선 출발 시, 중력 가속도 급변으로 매우 위험하오니 무수면 여행을 사전 체크하신 분들도 동면 캡슐에 들어가주시길 바랍니다. 운행 궤도에 오르면 깨워드립니다. 승무원 지시에 따라주시고, 궁금한 점은 근처 승무원에게 물어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무수면 여행을 체크했다. 172일이라는 기나긴 여정은 지루할 것이다. 과거의 나를 원망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 시간은 기대감을 잔뜩 부풀리고 다독일 수 있기에 충분하다. 처음이기에 누구도 알 수 없다.
승무원이 동면 캡슐을 점검했고, 우주선이 궤도 레일로 옮겨졌다. 동면 준비가 끝났고, 나는 눈을 감았다. 어떤 세계가 기다릴지 두려웠고, 기대되었다.
그래, 첫 경험이 그렇다.
나는 푸른 별을 떠나 푸른 별로 향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