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기자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에세이 4
우리 회사엔 미용사 출신이 몇 명 있다. 미용 제품을 만드는 제조사에 미용사 출신이 직원으로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지만, 외려 나는 가끔 그 사실이 생소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름대로 회사 생활을 쭉 해왔던 사람의 시각에선 ‘미용사 출신’이 ‘미용실’이 아닌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일종의 괴리감 때문이리라.
그들은 우리 회사에 입사하기 전까지 계속 미용만 해왔다. 취직을 준비하던 당시, 이력서에 적을 경력사항도 오직 미용과 관련된 것들 밖에 없었을 것이다. 만약 우리 회사가 헤어 제품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전자 제품을 만드는 곳이었다면 나는 그들과 영영 못 만났을 공산이 크다.
그만큼 미용은 하나의 분야로서만 특화된 직업인 까닭에서다.
이는 예컨대 회계, 총무 등 업무적 호환성이 높은 분야의 일을 해왔던 사람들이 어떤 회사에든 지원할 방편이 많다는 점과 상반된다. 어쩌면 미용을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이런 미용의 좁은 차후 진로 선택의 관문, 막상 미용을 그만둔 뒤 뾰족한 대안이 없는 현실적 고민들 때문이지 않을까.
어릴 적부터 미용을 해온 사람일수록 진로를 변경하는 것이 더욱 쉽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아는 사람 중 유년시절부터 축구선수를 꿈으로 한 길만 파온 분이 있는데, 이 분의 경우도 축구를 그만두고서 다른 마땅한 대안이 없어 전혀 다른 분야로 이직했다. 그건 축구와는 너무나 상관없는 갈빗집 창업이었다.
미용을 했던 필드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용 제품을 만드는 제조사에서 유사한 또는 심화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그들에게 좋은 기회이고, 유용하며, 만족스러운 루트이지만 그만큼 미용사 출신들이 이런 루트를 걷게 될 확률이 드물고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미용 제품을 만드는 제조사의 숫자는 미용을 그만둔 사람들의 숫자보다 현저히 적기 때문이다.
회사원은 보통, 퇴사 시점에 새로운 분야나 연관 분야 회사로의 이직을 결심하는 반면 미용사들은 이직이라고 해봤자 결국 다른 살롱으로 옮기는 일이기에 미용을 계속 하거나 아예 미용 자체를 포기해야 되는 극단의 기로에 놓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유명한 축구선수가 아닌 이상 축구를 해왔다는 이력만으로는 축구를 계속하거나 포기해야 되는 두 가지 선택지 밖에 없을 것처럼.
나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안타까운 구조라고 생각한다. 미용을 그만두더라도 미용 경력을 살려서 도전할 수 있는 또 다른 관련 분야의 직업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미용을 포기했다고 미용에 대한 애정까지 포기한 것은 아닐 테니까.
물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오롯이 미용 한 길만 걷는 분들도 많다. 이 분들의 열정과 직업정신은 본받아 마땅하고, 그 성공과 노력은 미용을 하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돼야 한다. 미용사로 성공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흘렸던 수많은 피와 땀은 찬사 받아야할 고귀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축구선수가 메시, 호나우도, 손흥민이 될 수는 없다. 누구보다 미용을 꿈꿨고 누구보다 미용으로 성공하고 싶었지만 여러 변수로 현실의 벽에 막힌 미용사들이 분명 존재한다. 막상 시작하고 보니 예상 외로 적성에 안 맞았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당신은 노력이 부족했기에 미용사로 성공하지 못한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K-리그를 뛰고 있는 선수에게 ‘당신은 노력이 부족했기에 유럽리그로 가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는 이치와 비슷하다. 축구선수 중 축구로 성공하기 싫었던 사람도 있을까.
미용을 그만둘 것이라면, 차라리 미용에 대한 애정이라도 간직한 채 현직 미용사들을 응원하고 도울 수 있는 또 다른 공간에서 새로운 발걸음을 딛는 것이 더 아름답고 진보적일 수도 있다. 메시처럼 못 됐다고 축구를 욕하고 모든 축구선수를 폄하하는 비참한 심정이 되는 것보단 낫다.
사실, 나는 기본적으로 미용사들이 미용을 포기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미용은 헤어 ‘디자인’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성취와 보람, 가치가 있는 직업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더불어 어떤 분야든 포기보다는 그 시련과 직면하고 극복할 때 더욱 성장하고 실력이 쌓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개인적인 사유와 구조적인 문제로 미용을 그만둬야 한다면, 미용사 출신이라는 자취가 빛날 수 있는 분야로의 이직을 권하고 싶다. 그동안 배우고 쌓아온 경험들이 헛되지 않도록.
미용 제품 제조사, 미용 강사, 미용실 마케팅 업체, 미용 재료상 등 폭넓지는 않아도 당신을 기다리는 곳은 분명 어디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용 하나만으로는 힘들 수 있다. 영상편집, 디자인, 스피치 등 학원을 다녀서라도 무언가 자신만의 무기를 하나 이상 가지고 도전하길 바란다.
우리 회사엔 미용사 출신이 몇 명 있다. 그들이 그렇게 준비했고, 그들이 그렇게 도전했으며, 그들이 그렇게 합격했다. 그들은 미용사라는 직업은 포기했지만, 미용에 대한 애정까지 포기하진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