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럴드형제 Apr 02. 2020

디자이너들이 가장 싫어하는 고객

전직 기자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에세이 11



사람이 사람을 어떨 때 가장 싫어할까? 아마도 자기 자신밖에 모르고 ‘배려’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이기적인 사람과 마주할 때일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오래 사귄 연인과도 헤어지게 만드는 요인이며, 천륜인 가족과도 등을 져버리게 하는 원인일 터.


최근 우리 회사 마케팅팀에서는 ‘헤어 디자이너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라는 주제로 한 콘텐츠를 SNS에 게재했다. 이 콘텐츠의 내용을 살펴보면 ‘시간 얼마 안 걸리잖아요. 그냥 좀 해줘요(퇴근 직전).’ ‘알아서 그냥 내 마음에 들게 해줘요!’ ‘내가 해달라고 했지만 맘에 안 드네.’ ‘돈 더 받으려고 클리닉 권하는 거죠?’ 같은 일부 고객들의 날 선 멘트들이 담겨 있다.




모든 고객이 이렇지는 않겠지만, 분야를 막론하고 지나치게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고객들은 심심치 않게 분명 존재한다. 오죽하면 웬만한 콜센터 자동응답 메시지에는 ‘여기에서 일하는 직원이 당신의 가족일 수도 있다’는 내용이 안내될 정도다. 그만큼 사람은 사람을 괴롭힐 수도 있고, 한없이 무례하고 이기적일 수도 있다는 반증이다.


나는 이런 것들이 ‘언어폭력’이라고 생각한다. 폭력은 상대방을 배려할 경우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다. 소위 ‘갑질’도 마찬가지다. 철저하게 자기 자신밖에 모를 때, 인지상정, 역지사지, 측은지심이라고는 1도 찾아 볼 수 없을 때 가능한 것이 폭력이자 갑질인 이유에서다.


예컨대 당신의 자식이 소중한 만큼 그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딸이다.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인 만큼 그들도 자기 자신이 가장 귀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사회생활에선 상호간의 ‘존중’과 ‘배려’가 필요한 법이다. 너도 너가 소중하고, 나도 내가 소중하므로 그 알맞은 접점을 찾기 위한 행위가 바로 ‘존중’과 ‘배려’인 것이다.




그래서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은 언제나 유효하다. ‘퇴근 직전일 텐데 미안해요, 근데 제가 내일 너무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이렇게 부탁 좀 드릴게요.’ 라고 어떤 손님이 좀 더 배려하면서 말했다면 디자이너의 마음가짐도 분명 더 호의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객은 자신이 돈을 지불하는 ‘갑’이라고 생각하기에 저렇게 저자세로 숙이지 않으려 했을 것이고, 그러다보니 일종의 ‘언어폭력’이 발생했을 것이다. 인간관계를 이분법적으로 승자와 패자로만 나누면 대부분 그렇게 된다. 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려하는 것은 낮은 자세로 패배하는 것이 아니다. 



배려는 오히려 나의 인품이 높다는 걸 증명하는 고귀한 행위다.



‘왕 중의 왕’이라고 불렸던 예수는 섬김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했다. ‘현자 중의 현자’라고 불렸던 공자는 4살짜리 꼬마 아이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고 했다. 그들은 패자였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반대로 고귀했기 때문에 존중하고 배려한 것이다. 


서비스 문화도 마찬가지다. 직원이 고객을 배려하고, 고객이 직원을 배려하는 곳이 선진국이다. 그게 높은 시민의식이다. 돈까지 내는 마당에 왜 그래야 할까. 간단하다. 우리는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도 어딘가에서는 직원이고, 어느 곳에서는 을이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한테 맞는 게 싫다면 나도 누군가를 때리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모순이 없다. 그리고 가능하다. 사람이 짐승과 명확하게 다른 점은 상대방을 공감하고 배려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자는 사슴을 공감하고 배려할 수 없다. 그랬다간 굶어죽는다. 그래서 본능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을 공감하고 배려할 수 있다. 그게 인간의 위대함이다. 


‘언어폭력’은 스스로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 되려는 길이다. 싸우고, 물어뜯고 사냥에 나서는 맹수처럼 신경질적이다. 그리고 그건 누군가에게 필시 상처와 흉터를 남긴다. 온갖 ‘갑질’은 약육강식의 논리 속에서 배려를 상실한 채 일어나는 크고 작은 폭력이다. 가정폭력과 직장 내 괴롭힘도 마찬가지의 원리다.




따라서 디자이너가 가장 싫어하는 고객은 단순히 요구사항이 많은 고객을 뜻하는 게 아닐 것이다. 그 요구에 있어서 일말의 배려심도, 같은 사람으로서의 조금의 존중도 없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갑질’ 고객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디자이너가 아니라 누구여도 싫어할 것이다. ‘갑질’ 남편, ‘갑질’ 상사, ‘갑질’ 친구를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가학적인 것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러므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므로 타인도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의 배려가 곧 나의 인품이라는 진실을. 

이전 01화 너는 미용사라는 직업을 포기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