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기자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에세이 20
‘역지사지’라는 성어가 있다.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헤아려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이 성어가 무색한 경우가 많다. 이는 자신의 처지에서만 모든 것을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한 세상 속의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용실에서 자주 발생하는 클레임도 그렇다. 얼마 전 고객이 고객의 입장에서만 주장을 펼치는 경우를 본 경험이 있다. 이미 그것은 논리의 영역이 아닌 감정의 영역이었다. 미용사의 사과와 환불 조치에도 불구하고 그 고객은 아랑곳없이 소위 말해 ‘쪽’을 주기 위해 미용사를 몰아붙였다.
미용사도 엄밀히 말해 고객을 상대하는 서비스직이므로 자신의 서비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여타 서비스직이 그러하듯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심장과 뇌세포가 없는 기계도 결함이 발생할 때가 있는데 사람이 어떻게 100% 완벽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클레임은 의도치 않은 실수나 예상치 못한 기술적 오류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성숙한 소비문화는 바로 이럴 때 ‘역지사지’의 태도를 상기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실수나 오류가 고의가 아니었다는 것을 헤아리고, 어쩌면 나의 친구나 형제가 그 상대방의 처지를 똑같이 겪을 수도 있다는 발상이 ‘진상 클레임’까지 나아가는 것을 막게 하는 힘일 것이다.
미용사는 고객 때문에 울고 고객 때문에 웃는 직업이다. 어떤 사고가 발생했을 때 미용사 쪽에서 일말의 인정도, 사과도 없이 뻔뻔하게 건성으로 대처한다면 그 부분은 명백히 시시비비를 따지고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판단되지만, 분명 실수를 인정했고, 잘못을 수용하였음에도 더 나아가 환불 조치가 진행됐음에도 그 이상을 지적하거나 비난하는 건 고객의 ‘갑질’이라고 생각한다. 과유불급이기 때문이다.
‘역지사지’의 태도를 가진 사람은 결코 ‘갑질’을 할 수 없다. 그리고 그래야만 서로가 상식적인 대화가 가능해진다. 미용사는 고객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 미용사뿐만 아니라 당신이 만나는 서비스직의 종업원들은 당신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 그 일을 하고 있지 않았으면 받지 않았을 수모를 굳이 당신이 제공하고 있을 뿐이다.
당신이 그 수모를 제공해도 상관은 없다. 그러나 3자의 입장에선 단지 당신의 인성의 밑바닥이 드러나 보여서 안타까울 뿐이다. ‘역지사지’와 ‘배려’는 사실 타인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인격’을 위해 하는 행위다.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헤아려 본다는 것은 편협하고 이기적인 시각을 여유롭고 이타적인 관점으로 전환해보는 일이므로 ‘인격’의 뒷받침이 필수적인 까닭에서다.
우리는 짐승이 아니므로 기분이 태도가 되어선 안 된다. 화가 난다고 그저 으르렁대고 물어뜯는 건 짐승들도 다 한다. 사람이기 때문에 ‘역지사지’도 ‘배려’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클레임이 발생할 시 정중한 사과와 설명, 상식적인 클레임 대처 및 조치 아래 고객 쪽에서도 ‘역지사지’와 ‘배려’의 자세를 취해준다면 오히려 실수를 한 미용사는 감사함을 느끼고 뭐라도 더 챙겨주려 할 것이다.
필자는 미용실에서 발생하는 시술 등 다양한 클레임과 관련해 옹호할 생각이 없다. 1차적으로 미용사의 책임이고, 미용사의 잘못이 맞다. 다만 미용사가 당신의 ‘감정 쓰레기통’인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말하고 싶다. 논쟁을 하려거든 팩트에 집중하고, 보상을 받으려거든 상식적인 제안을 하길 바랄 뿐이다. 그 이상의 인격적 무시나 비난은 클레임을 가장한 분풀이인 이유에서다.
원했던 컬러가 안 나와서, 생각했던 커트가 안 나와서, 혹은 극심한 모발 손상이 일어나서 등 여러 이유로 이미 마음이 상하고 화가 난 고객들에게 어떤 사과도, 어떤 조치도 사실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딱 한 가지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다"
‘역지사지’는 거기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용사들도 마찬가지다. 그 클레임 상황을 당한 고객의 처지가 돼서 얼마나 속상하고 화가 났을지 헤아리고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더 많이 각성한 뒤 공부하고 연습해야 할 것이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성숙한 소비문화는 직원과 고객이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 감정이 아니라 이성으로. 폭력이 아니라 협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