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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럴드형제 Mar 13. 2020

당신이 노쇼하면 미용사는 손가락 빨고 노쇼?

전직 기자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에세이 8


미용사라면 한 번쯤 겪어 봤을 문제다. 노쇼(No-Show)는 예약을 했지만 취소 연락 없이 예약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손님을 일컫는 말로, 이미 노쇼로 인한 피해 규모가 커지면서 사회적 문제로까지 부각된 상황이다. 그렇다면 노쇼는 실질적으로 어떤 피해를 주고 있으며,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일까.  


일부러 직언으로 시작하면, 소규모로 운영되는 식당이나 미용실은 노쇼로 인해 가게 문을 닫기도 한다. 오죽하면 예약을 하고 방문하지 않는 손님에게 위약금을 받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당신의 노쇼는 사소한 실수였을지 몰라도 업장의 입장에선 치명타다. 무심코 던진 돌에 어떤 미용사는 하루 장사를 망친다.  


미용사는 그 예약을 지키기 위해 그 시간대를 비워뒀고, 그 사이 오는 손님들을 돌려보냈고, 그 시간대에 또 다른 예약을 받지 못했다. 따라서 한 명의 노쇼는 적게는 몇 명에서 많게는 몇 십명의 고객을 놓치게 한다. 따라서 명백한 업무 방해다. 심지어 방문했다가 어쩔 수 없이 그냥 돌아가야 하는 선의의 피해자까지 생기게 한다.  




나는 노쇼의 원인이 ‘비양심’에 있다고 생각한다. ‘예약’은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 그대로 ‘미리 정한 약속’인데, 일방적으로 ‘약속’을 깬 것도 모자라 취소에 대한 어떤 언급조차 없었다는 건 양심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양심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떠올리는 도덕적 의식이고, 그것을 어겼을 때 뭔가 가책을 느끼는 일이기 때문이다.


꼭 미용사가 아니라 친구와 약속을 했더라도 그 약속에 못 가게 된 경우 최소한 미리 연락이라도 해주는 것이 사람으로서의 예의다. 상대방은 당신을 믿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취소 연락조차 없었다는 것은 비양심적이라는 방증이다. 



당신이 당해도 기분 나쁜 일을 당신은 왜 하고 있을까.



나는 노쇼의 문제가 결코 ‘귀찮음’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바라보지 않는다. 신뢰와 양심의 문제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추론한다. 취소 연락 한 통을 못했다는 것은 귀찮아서가 아니라 도덕적 소양이 부족한 것이다. 당신이 귀찮은 만큼 상대방도 귀찮고, 당신이 바쁜 만큼 상대방도 바쁘다. 그걸 이해하고 살아가는 것이 도덕적 소양이다. 사람의 됨됨이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이란 성어처럼.


사실 노쇼를 비롯해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회적 문제들은 불신과 비양심이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불신과 비양심은 ‘이기주의’를 낳는다. 어차피 타인을 믿지 못하겠고, 양심을 지키지 않기에 본인만 끔찍이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로 변신하는 것이다. 님비현상이나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린다거나, 악성 댓글을 다는 것들 모두 타인은 전혀 배려하지 않고 본인만 지극히 생각하는 이기주의 때문 아닌가.




특히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엔 미용실 방문이 줄었을 것이고, 이에 따른 예약 취소가 늘어났을 것이기에 그만큼 노쇼의 비율도 높아졌을 것이다. 물론, 고객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예약을 취소하게 되는 일은 정당하다. 권리다. 다만 이를 대비할 최소한의 여건조차 불가능하게 만드는 무소식은 월권이다. 예약에 있어서만큼은 무소식이 희소식이 아니다. 무고한 사람에게 손해를 주는 일이기에 그렇다.    


이런 문제로 인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018년 2월 28일부터 소비자분쟁해결기준 개정안을 시행한 바 있다. 이 기준에 의하면 소비자가 예약시간 1시간 전에 예약을 취소하거나 취소하지 않고 업장에 오지 않으면 예약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다. 그러나 현재 예약금을 걸지 않는 살롱들도 많을뿐더러, 예약금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고객들도 많기에 이것만으로는 속 시원한 해결책이라고 볼 순 없다.


차라리 법적으로 ‘노쇼’ 자체에 벌금을 매기는 제도가 더 좋은 해결책일 수도 있지 않을까. 노쇼 피해로 골머리를 앓는 항공사들의 경우는 이미 벌금 부과나 취소 환불 수수료 등으로 대응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벌금 정책으로써 ‘노쇼’가 명백한 잘못이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면 보다 더 효과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2016년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음식점, 병원, 미용실, 공연장, 고속버스 등 5대 서비스 업종에서 예약부도로 인한 매출 손실은 4조 5천억원에 이르고 있으며, 이들 업종과 연관된 제조업체의 손실까지 합치면 경제적 피해는 8조 2천7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쯤 되면 노쇼는 개인의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차원의 과실이다. 



공적인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손님은 왕이지만, 노쇼 손님은 폭군이다.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소비문화를 위해서도 노쇼는 근절돼야 옳다.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 사람은 양심적이기에 아름답다는 사실을. 그 양심이 봉사정신도 가능케 하고 이타적인 배려도 나오게 한다. 


결국 당신의 예약취소 연락 한통도 양심의 문제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다. 경중을 떠나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이기에. 우리가 노쇼를 부끄러워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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