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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섭 Mar 26. 2019

졸업

백수입니다만.

 스무 살, 나에게 까마득하던 대학교의 졸업도 지나갔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난 백수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났던 6학번이 높았던 선배를 보며 '아직도 학교를 다니네, 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라고 말했던 나는 올해 신입생 기준 7학번이 높은 존재의 흔적이 없는 캠퍼스의 망령이다.


 졸업을 하면, 취업도 하고, 다 될 줄 알았는데. 망상이었다. 물론, 지금 '실업급여'를 받고 있는 상태이지만, 정말 나의 생산성은 0에 수렴하고 있다. 강의가 있던 학생 시절보다 학교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꼭 9시 50분 '금일 방목 학술정보관의 이용시간이 마감되었습니다'를 듣고 집에 간다.


 우리 엄마 얼굴보다, 회계학 선생님 얼굴을 더 많이 본다, 900원짜리 커피를 억지로 쑤셔 넣는다. 2700원 기본 학식을 후딱 해치운다(진짜 졸업하기까지 사 먹은 기억이 없다, 학식은 돈가스다). 신입생이 기다리던 졸업, 현실적으로 지금 졸업생의 나는 제법 다르다. 그리고 아직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동아리 박람회라고, 왁자지껄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서 내 동아리에 갔다. 정확히 내가 했던, 이젠 후배들이 하는 동아리다. 앞서 말한 생활의 패턴이라면 3일 치를 애들 커피 사줬다. 주책이다. 겉멋이고, 그래 봐야 얘들이 뭘 얼마나 알겠는지, 올해 학교가 공사한다고, 우리 동아리 사용하던 농구코트를 밀어버렸다. 1년짜리 체육관을 대관하는데 10만 원을 냈다(억울하다, 난 수입이 없는데). 사람이 참 쪼잔해진다.


 사람은 한 치 앞을 모르는데, 계속 끝을 생각한다.


 나 스무 살, 졸업하면 적당히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스물일곱, 졸업하니, 이 생활에서 졸업하고 싶다. 사실 인턴을 하던 시절만 해도, 취미며, 글쓰기며 분주하게 뭐 많이도 했는데.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그럴 여유가 없는 것 같다. 내가 원했던 졸업 후 사회인이 된 주변을 보면서. 나는 점점 작아진다. 뿅! 하고 사라지는 CG효과의 결말이라면 그건 아닌 거 같다.


 내가 쟤들 나이로 돌아가면, 개 같은 후회와 만약이라는 만능 표현을 붙일 시간이 없다. 근데 진짜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흘러가면 바다가 나올 줄 알았는데, 이름 모를 웅덩이에서 썩어갈 줄 알았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움직였겠지. 표현이 좀 극단적이지만, 매일 발악은 하고 있다. 효율이 좀 더 좋아져야겠지만.


 졸업하니까 더 착한 대학생이 되었다. 아니, 착한 백수가 되어 대학생 생활을 다시 하고 있다. 예전에... XX 그만 하자. 제일 좋은 건 학생이다.


 언제 졸업할지 궁금하던 학생은 졸업하고, 다시 학생이 되고 싶다.


 이제... 이 생활에서 졸업하고 싶다.


봄이 와서 야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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