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이미 스스로 머리를 쓰다듬어줄 수 있는 손이 두 개나 있다.
올해 읽는 이석원 작가의 두 번째 책이다.
제목은 2인조- 처음엔 사람이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던가, 타인과 혹은 세상과 2인조를 이루는 이야기라고 막연히 짐작했다. 작가는 내가 요 몇 달간 그리고 3년 전 이별 후 했던 꼬리를 물던 생각들과 고민들을 한마디로 정리해줄 것이라는 건 짐작을 아직 못한 채로.
그 한마디를 여기에 쓰기 전에 잠시 외로움, 고독 이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사람이라면 빈도는 다르나 외로운 순간들이 찾아온다. 어떤 가치판단도 하지 않고 내 말을 들어주는 친구가 없어서. 직장동료들과 있을 때 물컵에 있는 한 방울의 기름처럼 나만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아서. 또 나같이 외국에 사는 경우에는 내가 누구여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주는 가족이 멀리 있어서. 7년이나 산 도시가, 이 사람들이 아직도 낯설어서.
스톡홀름에서 학교를 시작한 첫날.
같은 반 친구들과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기 위한 활동 중 하나는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 3가지’를 전지에 그림이나 글을 통해서 표현하고, 반 전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었다.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으나,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건 이것 하나뿐이다. 나와 친하지도 않았고 지금도 연락조차 안 하는 친구가 했던 그 한 마디.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우울증 때문에 고생했어. 지금도 조금 그렇고. 항상 너무 외로웠지. 하지만 그 고독의 시간들을 살아내다가 어느 밤 나는 아주 중요한 걸 깨달았어.
하루의 끝에는, 내가 나의 곁에 있어줄 수 있다는 사실.
그 생각이 든 후에는 외롭지만 외롭지 않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려나?”
제일 외롭던 여름의 끝자락에 그 말이 내 마음에 단단히 박혔다. 나도 그 후로 그 말을 가만히 꺼내보면서, 전보다 괜찮아졌다.
그리고… 요새는 전에는 안 해봤던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할 때 보다도 나 스스로와의 시간을 가지지 못했을 때 더 큰 외로움을 느낀다는 그런 생각. 내가 타인과의 관계에 집중하느라, 내가 뭘 원하는지, 어디가 아픈지,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도대체 왜 흐리멍텅하게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지. 그런 것들.
그런 종류의 것들은 결코 남이 답해줄 수 없다. 오히려 꼬아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탐구하고, 생각해보고, 내 안에 있는 여러 모습의 나와 이야기를 나누어봐야 하는 것이다. 이걸 빨리 알고 습관처럼 하는 사람들은 좀 더 단단하지 않을까 싶다.
이석원 작가는 1년간 무너진 자기 자신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글을 쓰고, 몰두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고, 스스로를 보살펴주는 행위를 통해서 말이다.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해나가며 그는 스톡홀름에서 만난 친구가 했던 것과 닮아 있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는, 우리는 누구나 날 때부터 2인조 아닌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결코 잃을 수 없는 내 편이 하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종종 까먹는다.
잃을 수 없는 내 편.
아무리 지질해도, 비겁해도, 뭐 저러냐 싶은 생각과 행동을 하더라도. 잃을 수 없는 내 편.
남에게 바라는 것을 내가 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로해주기.
맛있는 거 먹여주고 좋은 영화 보여주기.
지쳤을 땐 쉬게 해 주기.
수영장 가주기.
꽃을 선물하기.
내가 좋아하는 많은 것들은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이다. 밖에서 찾으면 외롭지만 안에서 찾으면 충만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잃을 수 없는 내 편인 나를 의지하며.
그 언제라도 나를 비난하기보다는 두 팔 벌려 안아줄 준비가 되어있는 또 다른 나를 매일매일 만들어가며.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닌 2인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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