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세계들의 충돌 : 소설 《방금 떠나온 세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세계에 다가가다

by 하선

언젠가 친구에게서 받은 생일 선물이었다. 김초엽 작가의 SF 소설 단편집 《방금 떠나온 세계》.


읽고 싶은 책이랍시고 내 손으로 위시리스트에 넣어놓고, 매일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회사 생활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몇 년(!)을 끌었다. 그리고 드디어 얼마 전 완독했다. 이게 얼마나 오래 끈 거냐면, 배송받자마자 읽었던 첫 장, <최후의 라이오니>는 도대체 엔딩이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지경이었다. 단편집이다 보니 짬 날 때 한 편씩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도 이랬다니. 반성하게 된다.


어쩌면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 어떻게든 의지를 다지고 이 책을 다 읽었더라면, 조금은 위로와 희망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안타깝다. 왜냐하면 이 책은 일곱 가지의 서로 다른 세계 속, '보통의 사람들' 사이에 섞인 '조금 다른 존재'에게 다가가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같은 인류가 맞나 싶을 정도로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과 매일을 함께해야 한다면. 마치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소통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가득한 공간에 놓여 있다면. 오랜 기간 그 사이에 낑겨온 나머지 "내 상식이 틀렸나?" 하는 자기 의심에 빠져 괴롭다면. 그렇다면, 《방금 떠나온 세계》는 당신에게 큰 위안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 책은 문학 소설이고, 결코 우리에게 어떤 구체적인 해결 가이드라인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각 이야기 속 구원은 우리의 것이 아니며, 결국 그 세계 속 인물들 안에 있다. 그들과 달리 21세기 지구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구원은, 결국 우리 자신이 찾아야만 한다. 하지만 머나먼 그 세계에서조차 발버둥 치고, 해답을 찾아가는 존재들이 있을 거란 상상만으로도, 지금의 나는 어쩐지 조금 덜 외로워지는 것 같다.




큰 세계들에서 벌어지는 작은 세계들의 충돌과 상호작용


이 책에 펼쳐지는 각 세계들은 먼 미래의 지구 혹은 새로운 행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곳을 살아가는 인류(였던 것)는 21세기 지구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마치 지구가 그러하듯이, 그 새로운 세계 안에도 새롭게 형성된 '평범함'이 존재한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그곳에는 '평범하지 않은' 돌연변이 역시 살아가고 있다.


여기에서 미래의 인류가 살아간다고 말하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란, 로봇과 함께 생활하고 수명이 대단히 길게 늘어나거나 복제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력에 이르렀다~라는 정도의 깊이로만 끝나지 않는다. (물론 그런 이야기도 있다) 어떤 이야기 속에선 인류가 소통하는 방식 자체가 변화하여, 더 이상 '말', 즉 음성으로 소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공중에 떠다니는 입자를 호흡하며 의사 표현을 주고받는다. 만약 우리가, 즉, 그들 기준의 과거 지구인이 이곳에 불시착한다면, 음성으로 소통해야 하는 그 지구인이 이해할 수 없는 이방인이고 돌연변이일 것이다. 수록된 단편 <숨그림자>가 정확히 그런 구도로 진행되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단편집 《방금 떠나온 세계》는, 각기 다른 큰 세계들에서 벌어지는 작은 세계들의 충돌과 상호작용을 그린다. '세계'라는 표현은, 모두 함께 살아가고 있는 거대한 세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 각자의 개체가 가지는 가치관과 생활 방식, 각자의 오감을 통해 느끼는 주관적인 세상 역시 '작은 세계'다. 수록된 <인지공간>에서 '스피어'의 존재를 통해 아주 잘 표현되고 있다. 간혹 그 '작은 세계'가 '큰 세계'와 달랐음이 확인되며 서로 충돌할 때, 우리는 대부분 가능한 선에서 큰 세계에 맞추어 변화하기를 선택한다. 하지만 그것이 늘 가능하지만은 않다. 특히 이 충돌이 어떠한 신체적 차이에 기인하고 있는 경우, 다른 세계와 싱크로를 맞추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책은 자의든 타의든 이 선을 넘어갈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의 좌절, 그리고 희망에 대하여.


이 책에서 전개되는 단편들엔 이런 존재들이 하나씩 등장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꼭 화자인 것은 아니다. 공통적으로 그들 곁에는 그들을 구원하거나, 그들을 통해 오히려 구원을 받는 누군가가 있다. 그리고 그들은 '보통의 존재', 그러니까 그 세계에서 요구되는 '평범성'을 갖춘 이들이다. 어떤 이야기의 화자 역할은 이들이 수행하고 있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기도, 고통을 주고받기도 하며 그들의 방식대로 교류한다. 이야기의 끝에서 그들은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기도, 이에 실패하기도 한다. 내가 경험할 수 없는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그 세계를 아주 많이 사랑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보상일지도 모른다. 다른 세계에 대한 이해에 있어, '사랑'은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상대방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그 한계점에 대해서도 지나치지 않고 짚어낸다. 특히 <로라>가 그렇다.


사랑한다고 해서, 상대방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또래에 비해 조금 일찍 결혼한 편이다. 우리는 함께 많이 웃기도 했지만, 연애할 때 겪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빈도와 강도로 싸우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이 지점을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하나의 큰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다른 사람의 작은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딱 한 명뿐일지라도 서로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관계가 된다면, 그건 우리의 남은 인생을 모두 할애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소중한 구원이자 축복이다.


서로 다름을 느끼며 겪게 되는 고통은 완전한 불행이 아니다. 사랑의 과정이다. 그 '다름'은 서로 다른 세계를 가진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게 포장해 볼 수도 있지만 이 '사랑의 과정'이란 건 매우 사소하면서도 꽤나 필사적이고, 자주 구차해지며, 결코 버티기 쉽지 않다. 21세기의 지구 위 결혼이라는 개념은 그래서 생겨난 건지도 모른다. 우리 인류의 보편적 기준에선, 평생을 함께하자며 약속하는 사회적 구속이라도 만들어내지 않는 이상, 십수 년 간 포기하지 않고 이해를 시도하는 게 너무나 비효율적이고 바보같이 느껴지기 때문에. 그 정도로 상대방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는 건 어렵다.


한동안 나는 이런 고통스러운 과정을 건너뛸 수 있는, 즉 '이미 나와 세계를 공유하는', 내 기준의 '보통의 사람'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언젠가,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착했다. 그 깨달음 끝에 나는 결국 '내가 이해하고 싶은 사람'을 찾았다. 나와 얼마나 같은지 다른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린 매일 서로의 세계에서 새로운 다름을 찾는다. 그리고 그걸 이해해 가는 과정이 꽤나 즐겁다. 상대방의 세계를 이해해 가는 나 자신이 뿌듯하고, 매일 조금씩 성장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방금 떠나온 세계》 속 인물들은 나의 경우와는 달리 자매이기도, 친구이기도, 연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드넓은 세계에서 딱 한 번 목격되기도 쉽지 않은, 소중한 이해의 관계를 쌓아간다. 그 과정은 경이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그래서 <숨그림자> 속 두 사람이 주고받는 메시지가 내 마음을 울렸다.


양말이 사막 구석에서 모자를 쓰고 발견되었다.

- 김초엽 《방금 떠나온 세계》 177p, 188p




이 책은 작가 김초엽이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이 있었기에 이렇게나 섬세하고 아름답게 쓰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삶과 그가 가진 특성에 공감할 수 있는, 즉, '비슷한 세계'를 살고 있는 이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이 세계에서 소외된다. 나를 둘러싼 넓은 세계와 멀어지지 않으려 발버둥 칠수록, 내 안에 남는 건 공허함 뿐일 때가 많다.


우리의 작은 세계는 누군가의 또 다른 작은 세계와의 충돌을 통해 갈등할 수밖에 없고, 오직 그 과정을 통해서만 우리는 '이해'라는 보상에 닿을 수 있다. 이런 정반합(正反合)의 과정이 일곱 가지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통해 풀어져 있다. 단편집이라 가볍게 읽기 좋으니 바쁜 현대인들에게도, 아니, 오히려 그들에게 더더욱 추천하는 소설이다. 나보다 2년은 빠른 감동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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