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보다 해몽 #5 "맞서 싸우며 분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치는 찬가"
2026년에는 반드시 1주일에 한 편씩은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아직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한 주를 지나칠 뻔했다.
쓰고 싶은 글이 없었던 걸까?
그렇지 않다. 하고 싶은 말,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은 넘쳐난다.
근데 그걸 하나도 빼먹지 않으면서도 두서 있고 쉽고 깔끔하게 정리할 수 없을 것 같아 불안하다.
며칠의 시간을 붙들고 앉아 있으면 가능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설령 그것이 '완벽하지 않은 글'로 끝나더라도 일단 써보자는 취지로 목표를 정했던 거였다.
하지만 막상 그런 마음으로 글을 시작하면, 내가 나의 그 관점과 생각을 홀대하는 기분이 들어 슬퍼진다.
무엇보다 그 작품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이번 주는 '완벽한 글을 쓰고 싶은 나'와 '시간과 체력이라는 현실을 맞닥뜨린 나' 사이의 싸움이었다.
동명의 원작 만화를 기반으로 제작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100미터.》.
이번 주의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나를 더 달리지 못하도록 땅바닥으로 끌어내리는 모든 것.
어쩌면 나 자신, 혹은 경쟁자라는 현실을 딛고 일어나 100미터의 경주를 멈추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좌절, 희망, 희로애락과 고군분투를 100분의 영상 속에 담았다. (크레딧 시간 미포함)
달리기를 다룬 스포츠물이지만, 달리기에 관심과 재능이 없어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영화였다.
그들의 '달리기'는 우리 모두가 버티고 있는 '인생'의 은유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글을 계속 쓰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1등의 자리'에도 올라보고 싶다.
하지만 그 목표의 달콤함에 비해, 현실적으로는 한계와 어려움이 가득하다.
그중엔 시간의 부족, 재능의 한계 등 나의 힘과 의지만으로 절대적인 극복이 불가한 영역도 많다.
이런 현실에 부딪혀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따뜻한 위로와 가슴 뛰는 깨달음을 전한다.
*** 스포일러가 가득하니 주의하세요 ***
영화의 시놉시스는 아래와 같다.
“대부분의 문제는 100M를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면 다 해결돼”
선천적으로 발이 빨라 달리기에서 지는 법이 없던 토가시는
현실을 잊기 위해 무작정 달렸던 전학생 고미야를 만나 제대로 달리는 법을 가르쳐 준다.
누구보다 빠르게 달릴 때의 환희를 알게 된 고미야는 토가시에게 100M 경주를 신청하고
그날의 경기 이후 고미야는 토가시의 앞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몇 년 후, 계속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던 토가시 앞에
일본 기록 경신을 꿈꾸는 고미야가 나타나는데…
100M 전력 질주, 시간은 단 십여 초.
그 시간에 모든 것을 담아낸 청춘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엔 두 친구가 등장한다. 둘 중 더 뛰어났던 주인공이 친구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며 관계가 시작된다. 그 친구에겐 주인공을 뛰어넘을만한 실력이 있지만, 그걸 아직 모른다.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우정이 계속되는 이야기일 줄 알았지만, 모종의 이유로 그들은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딱 여기까지만 들었을 때에는, 후지모토 타츠키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영화 《룩 백(2024)》이 떠올랐다. 《룩 백》 역시 별도의 글로 다루고 싶을 만큼 대단한 작품이다 보니, 왠지 마냥 비슷하기만 할 줄 알았던 《100미터.》. 그러나 이 영화는 나에게 또 다른 종류의 감동을 주었다.
육상 스포츠 영화이기 때문에 박진감 넘치게 달리는 장면이 주구장창 나올 거라 예상했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분명 몇몇 장면에서는 그 찰나의 긴장감과 환희를 짜릿하게 담아내었지만, 대부분의 경기는 화면으로 그려지지조차 않았다. 그렇다고 그것이 실망스러웠느냐면, 그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런 생략이 극 중 인물들의 상황과 감정, 전체 영화의 주제를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있었기 때문에, 훌륭한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영화의 중후반부, 비가 오는 날 경주를 준비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3분 40초 간의 롱테이크로 보여주는데, 이 장면에서도 역시 선수들의 테스트 러닝 순간만큼은 달리는 그들을 비추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경기장과 몇 없는 관중들, 그리고 억수로 쏟아지는 비를 담아낸다. 그럼에도 놓치지 않는 건, 각 선수들이 본격적 경주를 시작하기 전에 각자 호명될 때 한 발짝 앞으로 나와 손을 흔드는 인사 장면. 달리는 과정 혹은 결과 이전에, 출발선 앞에 선 각자의 모습들이다.
'나다움'이란, 참을 수 없이 불안한 감정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게 피어난다.
출발선에 서있는 선수들 각각에게 '달리기'란 무엇일까. 경쟁 혹은 부담, 존재의 증명, 또는 단순한 즐거움이나 무언가에 대한 해소일지도 모른다. 각 사람마다 모두 다른 걸 느끼겠지만, 한 명의 동일한 사람이라고 해도, 매번 똑같은 감정일 수는 없을 것이다. 매 달리기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기 마련이다. 어떨 땐 등수와 상관없이 달리는 것 자체만으로 그 해방감에 즐거울 수도 있다. 또 어느 날엔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는 상황으로 인한 부담감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감정은 일정하지 못하고, 늘 이리저리 요동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감정을 오롯이 느끼는 '나'는, 늘 그곳에 서있다.
그 모든 감정들은, 매 번 똑같은 출발선에 서있는 '나'라는 그릇에 물리적인 형태로 담긴다. 그리고 그 물리적인 그릇, '세포의 집합체'가 10초간 움직이는 100미터의 달리기는, 그곳에 담긴 감정들이 아주 섬세하게 조합되어 발생하는 거대한 폭발이다. 어떨 땐 설레기도, 어떨 땐 불안함에 잠식되기도 하지만, 그 모든 감정들이 뒤엉킨 그 상태 자체를 받아들이고 만끽하는 것. 그 순간의 찬란한 10초를 보내는 것. 그것이 '100미터'라는 그 거리가, 짧다면 짧은 우리들의 인생이 가지는 폭발력이다. '나다움'이란, 도저히 참을 수 없이 불안한 감정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게 피어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휘몰아치는 감정들을 꾹꾹 눌러 담은 채 변함없이 한 번 더 출발선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는 이들에 대한 찬사이자 위로, 그리고 응원이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의 본질이자, 열린 채 끝난 결말에 대한 해석이다.
마치 《더 퍼스트 슬램덩크 (2022)》가 그러했듯, 일반적으로 스포츠 애니메이션은 3D로 작업 후 그 위에 만화 텍스쳐를 후가공하는 (흔히 2.5D라고도 부르는) 카툰렌더 방식, 또는 실사 촬영본을 프레임 한 장씩 옮겨 그리는 로토스코핑(Roto-scoping) 방식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장르 특성상 섬세한 움직임 표현이 중요하다 보니 100% 셀 애니메이션으로 작업하려고 하면 그 노동의 강도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3분 40초 간의 롱테이크 컷도, 로토스코핑으로 제작했기 때문에 연출해 낼 수 있었던 장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론 그 2D 후가공 뒤에 덮여있는 3D/실사 소스가 지나치게 튀어나오는, 즉 그 소스들의 존재가 너무 드러나는 작업물을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100미터.》 역시 이 불쾌함을 완벽히 피해가진 못했다.
주인공의 어린 시절에선 크게 거슬리는 장면이 없었는데, 그가 고등학생이 되고서부턴 달랐다. 어쩐지 매 순간 움직임을 참지 못하고 흐물흐물 꿀렁꿀렁 움직이고 있어, 캐릭터가 갑자기 경박스러워졌다고 느꼈다. 기술적 관점에서, 순전히 인물의 몸이 길어졌다 보니 로토스코핑 티가 더 나버린 것인진 모르겠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중학생 시절까지는 다소 빳빳한 모습이었던 반면에 고등학생이 되자 사람이 180도 바뀐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야기 구성 면으로 보아도 주인공(토가시)이 어릴 때와는 달리 점점 실패를 경험하기 시작하며 캐릭터가 변화했기 때문에, 이 작은 불편감이 영화 시청을 멈출 정도의 거부감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단 보다 보니 그림에 눈이 적응해 버렸다. 늘 그러하듯이.
좋은 영화였다. 하지만 영화보다는 원작 만화가 더 궁금해지는 작품이었다. 애니메이팅의 비주얼적 표현 방식 때문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달리기 장면의 의도적 생략'과 같은 연출이 영상적 각색의 의미를 더하고 있기에, 영화로서의 의미 역시 훌륭했다. 그럼에도 왠지 만화가 더 대단할 것이라 느껴지는 이유는 단지, 이 작품의 특장점이 '영상적 표현'에 중심을 두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가장 매력적이게 만들고 있는 건, 다양한 인물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전하는 명대사들이었다. 흘러가는 대사들의 의미를 천천히 곱씹고 싶은데 자꾸만 빠르게 지나가버려 야속하게 느껴지는, 그래서 자꾸만 장면을 되돌리고 멈추게 되는 그런 영화였다. 이건 이 원작 만화의 작가 우오토의 작가적 특성인 것 같기도 하다. 본작과 마찬가지로 이미 애니화된 그의 다른 작품 《지.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 역시 마찬가지의 이유로 자꾸만 (의미를 곱씹기 위해) 영상을 멈추게 되어서, 시간이 널널할 때 보기 위해 결국 멈춰져 있는 상태다.
이 작가의 작품은 만화를 통해 나만의 페이스로 천천히 읽으면, 더 많은 걸 보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리뷰는 이 영화 속 등장한 명대사들 모음집으로 끝맺는다. 너무나도 잘 쓰인 대사들이기에, 내가 백 문장을 더 쓰는 것보다 훨씬 더 명쾌할 것이란 생각 때문도 있고, 순전히 내가 이 명대사들을 아카이빙 해두고 싶어서라는 사심도 있다.
"오랫동안 정상에 있으면서 왜 계속 도전하시나요?"
"저는 생물입니다. 언젠가 죽습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다. 이유는 그것뿐입니다."
"불안 대처법을 알고 싶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불안은 대처할 대상이 아니다.
인생은 패배할 가능성으로 가득 차있다. 그곳에 삶의 묘미가 있다.
공포는 불쾌한 게 아니다.
안전은 유쾌한 게 아니다.
불안은 너 자신이 널 시험할 때의 감정이다.
영광 앞에서 대가를 치러야 할 때, 보잘것없는 세포집합체인 인생 따위를 내던지면 된다.
"현실을 상대하는 법?
방법은 단 하나야. 기록으로 초월하는 수밖에 없어.
난 타고난 재능이 있어. 물론 달리기 재능이지. 그것도 단거리에 특화돼 있어.
어릴 적에는 진 적이 없었어. 동네에서도, 현에서도.
전국 대회에서 깨지기도 했지만 노력으로 더 빨라졌어.
그리고 전국 대회에서 우승을 노리고 있던 고3 여름, 15세의 자이쓰가 나타났다.
그때부터 15년, 난 끊임없이 현실을 맞닥뜨려야 했어.
늘 한 발 앞에 그 녀석이 있는 현실이다.
항상 마지막에 지는 현실. 만년 2위라 불리는 현실.
1초, 1초 늙어가는 현실. 고미야 같은 신예가 떠오르는 현실.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는 말도 신물 나게 들었어.
신기하게도, 이 세상은 내가 이길 수 없는 현실이 많더라.
근데 또 신기하게도, 다음엔 내가 이긴다고 굳게 믿고 있어. 왜 그런지 알아?
현실은 도피할 수 있기 때문이야.
내 승리가 비현실적이라면, 난 온 힘을 다해 그 현실로부터 도망쳐.
현실 도피는 나에 대한 기대야.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는 자세지.
설령 주변에서 어떤 정론, 통찰, 진리, 계몽을 내세워도, 난 나를 인정해.
그게 내 사명이자 일, 살아가는 의미, 달리는 의미다.
잘 들어 토가시. 달리는 이유를 알면, 현실 따위는 얼마든지 피할 수 있어.
한 가지 확실한 건, 현실은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거야."
"토가시 너는 생각해 본 적 없어?
매일매일 반복되는 이 거리가 허무하다는 거.
나는 지난 10년 내내 기록만 생각하면서 기록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어.
근데 방금 기록은 신경도 안 쓰는 사람한테 기록으로 졌어.
계산도 없고 경향도 대비도 없이 집념만으로 달리는 사람한테.
만약 내가 또 기록을 깬다면 그다음엔 뭐가 있는 걸까?
빠르다고 얻는 것도 느리다고 잃는 것도 사실은 없는 거 아닐까?
그렇다면 도대체 그 한순간은 왜 있는 거지? 이 경쟁은 왜 있는 거지?
우리는 도대체 왜 달리고 있는 거지?"
"그건 당연히 전력을 다하기 위해서지. 그 외엔 없어.
나도 돌이켜보면 그냥 계속 허둥대는 인생이었어.
지거나 고립되는 게 무섭고, 지지 않겠다고 배짱도 부렸어.
그러다 패배를 회피하기도 하고, 누군가 날 봐주고 있다는 이상한 믿음에 빠지기도 했어.
근데 그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
인간은 자기 마음밖에 모르고, 어디에도 진짜 내 자리는 없어.
연대도, 공감도, 애정도 전부 착각일 뿐이야.
세상 모든 게 우릴 불안하게 만들지. 그리고 마지막엔 다들 죽어.
냉정하게 생각하면 이렇게 미친 얘기도 없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진심으로 전력 질주하는 기쁨을 1밀리미터도 뺏어갈 수 없어.
지금 생각해 보면, 난 그런 걸 수없이 보고, 수없이 맛봤어."
"유감스럽게도 난 그런 걸 본 적도 맛본 기억도 없어. 이 허무함의 해결책은 없어."
"고미야, 잊은 것 같은데 세상엔 단순한 규칙이 있어.
그러니까 100미터를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면 전부 해결돼.
네가 찾고, 네가 목표로 삼고 네가 갈고닦은 속도가 허무하게 느껴진다고?
진심으로 달리면 다 날아가. 날카롭게 다듬은 세계는 빛이 나.
그런 풍경을 본 적 없다면, 이번 100미터에서 그런 풍경을 보자."
“자, 그럼 지금부터 현실로부터 도망쳐볼까!”
"이제 선수 생활을 끝냈으니 비로소 단언할 수 있겠네요.
100미터는 그 한순간에 인생을 압축하는 경기입니다.
몇 센티미터 차이로 파탄 나고, 몇 그램 차이로 파멸합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얻을 수 있는 고양감이 있습니다.
그 거리에만 허락된 풍요로움이 있습니다.
희망, 실망, 영광, 좌절, 피로, 만족, 초조, 성취, 그리고 희로애락.
그 모든 걸 100미터에 담아 최고의 10초를 만끽하세요."
+)
영화가 끝나자마자 울리는 엔딩 테마곡, Official HIGEDANdism의 らしさ (나다움).
히게단은 내가 원래도 워낙 좋아하는 밴드이다 보니(내한 콘서트에도 갔었다!), 이번 노래가 특히나 좋아서 이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면도 없지 않다.
아직 일본어 실력이 턱없이 부족해서 가사 없이 노래로만 들을 땐 잘 몰랐는데, 이 노래의 가사 전체가 이 영화에 대한 요약본이면서 주제의 시적 표현이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생략하지 않고 가사를 곱씹으며 들으니 마음속에 차오르는 뜨거움과 뭉클함이 있었다.
그리고 이 노래를 한 번 더 들으며 글을 마치고 나니 드는 생각. 아 역시 오늘 의지를 내어 자리에 앉아 이 글을 써내려가길 잘했다. 결국 매 번 출발선에 서야 무엇이든 시작되는구나.
당신이 이 영화를 봤다면, 이 노래의 가사를 꼭 한 번 되뇌며 영화를, 고미야의 마지막 얼굴을 다시 떠올려보길 권한다.
자랑스러워 전부.
내가 나로 있기 위한 요소를 좋아해, 전부.
'너'라는 나의 검은 부분도, 타고나지 못한 재능도, 굳세지 못한 성격도.
그럼에도 터무니없는 꿈을 제대로 그려내는 강인함도.
초초해 언제나.
발소리의 군중이 나의 노력을 찢어놓아.
몇 번이나 너라는 어둠의 신세를 졌었지.
Only One이라도 괜찮다며 억지로 쓴 눈가리개 속에서, 한숨도 못 자는 자신도 질려버렸어.
“현실적, 객관적으로 보면 절망적으로 절대적인 1등은 분명 못 할 거야”
알고 있어, 알고는 있지만,
압도적, 직감적으로 나는 납득할 수가 없어.
아 왜 이렇게 귀찮고 부적합한 장점을 품어버린 걸까.
'나다움', 그런 걸 안고서는 우리들은 울고 웃었어.
서로 경쟁하면서도 정말 좋아하는 것에 모든 걸 바치고는, 몇 번이고 울고 웃는 거야.
엉망진창인 페이스로.
그것밖에 없으니까 매달리고 싶었던 거야. 있을 곳을 원했던 거야.
몇 번을 이겨도 그건 그거대로 미래는 괴로운 것.
아 정말 뭐야?
지고 또 지고 지기만 할 때일수록, 추억 이야기가 나의 발걸음을 늦추어버려.
과거의 나와 너로부터의 최악의 선물.
타산적이고 소극적인 면은 나를 지키는 반창고. 무서워서 분명 떼지 못할 거야
알고 있어, 알고는 있지만,
자존심은 새것인 채로 하얗게 불어서 가려워하고 있어.
아 어느 쪽이든 나이고 너니까, 둘 다 진심이니까 골치 아파
“시작이 늦었으니까”, “세상은 너무나도 넓으니까”
“천재는 레벨이 다르니까”, “그래도 네가 즐거우면 됐잖아”
아 시끄러워.
그래도 왠지 너에게 져버리는 날도 있었지.
뭐, 그건 그래. 흔들리지 않는 심지나 사상 따위는 나답지 않아.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미 한계야. 네 말대로 하는 건 견딜 수 없어.
나는 역시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아. 그런 열정이여 제발 사라지지 마!
'나다움', 그런 걸 안고서는 우리들은 울고 웃었어.
서로 경쟁하면서도 정말 좋아하는 것에 모든 걸 바치고는, 아직도 울고 웃는 거야.
제자리에 섰다면,
자, 진심으로 승부다.
'나다움', 그런 걸 안고서는,
기쁨 슬픔 불안 기대 절망 절정, 너와 나의 것이야 전부.
'나다움', 그런 걸 안고서는,
아, 숨이 끊어질 때까지 울고 웃는 거야
“정말 다행이다”
아,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