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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디대디 Mar 04. 2023

오랜만에 목욕

유성호텔 대온천탕

아내와 아들이 잠시 친정에 내려가 있던 주말 아침. 

오랜만에 '유성호텔 대온천탕'을 다녀왔다. 

아침 7시인데도 제법 탕 안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집에서 차로 30분 걸리는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굳이 찾은 이유는 

바로 '노천탕'때문이다. 


탕에 들어가기 전, 

샤워기로 몸을 대충 씻고 

발끝으로 온탕의 물 온도를 빠르게 체크한 뒤

입수. 


'크 그래 이맛이지.'

큰 솥에 몸이 통째로 삶아지고 있는 느낌.

마치 내장까지 따듯해지는 기분이었다.


적당히 몸을 데우고

온천탕 한 구석에 마련된 통로를 지나, 

노천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겨울이 완전히 지나가기 전이라 

바깥공기가 서늘했다.

그렇다고 몸에 닭살이 돋을 정도는 아니지만. 


발가벗고 발만 탕에 넣은 채

돌방석에 앉아 하늘을 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어쩜 이렇게 완벽할 수가. 


종종은 아니라도, 가끔 이런 노천탕에 있을 때면

아담이 사과를 따 먹기 전,

태초의 인간의 형태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현대에 이만큼 솔직한 공간이 있을까 싶다. 

노천탕 한쪽 구석에는 대략 2미터 정도 위에서 내려오는

인공 폭포가 마련되어 있다. 

온천수는 아닌 것이 물이 차갑다. 

폭포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이 앙상한 다리를 천천히

움직이시며 탕에서 나와 그곳으로 걸어가셨다.

가차 없이 쏟아지는 물줄기를 연약해 보이는 

몸으로 받아내시면서

"시원하다" 소리를 연신 내 지르셨다.

어디서 저런 힘이 나시는 건지. 


어르신이 다녀가신 그 자리에 이제는 

중학생 즈음 돼 보이는 소년이 들어갔다.

'제법인데'

아마 처음인 듯, 폭포수 밑으로 내려가는 길 

발을 헛디뎠는지 갸우뚱거리곤 

조심히 가장자리 돌담을 손으로 짚어가며 

폭포수 아래로 들어갔다.

물벼락이 시원하게 소년의 머리 위로 쏟아지고

"허으"

뭔가 재미난 것을 한 것 마냥 들뜬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잠시 소강상태인 폭포수 아래로

이번에는 내가 몸을 던져봤다.

마치 물로 만든 망치로 몸을 두드리는 듯했다.

내 몸에 맞고 자꾸 들어오는 물 때문에 

눈을 감을 수밖에 없게 된다. 


오랜만에 들어와서 그런 건가. 

보기와는 다르게, 

폭포수가 몸을 짓누르는 힘이 제법이었다.

자꾸 굽혀지려고 하는 두 다리에 힘을 바짝 주고

버텨봤다.

아까 그 어르신도, 소년도 이걸 버틴 건가. 


오기로 몇 분을 더 버티다

폭포수 아래에서 나와 뜨끈한 온천물을 

바가지째로 머리 위로 몇 번을 붓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나갈 시간이었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폭포수아래에서 

두 다리 꼿꼿이 서서 마침내 승리하는 나를 기대한다. 


존버는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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