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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디대디 Mar 10. 2023

청바지

무심하게 그렇게

청바지.


광부의 작업복으로 시작한 옷인 만큼

그 내구성이 다른 옷 대비해서 좋은 편일 텐데

협소한 내 옷장은

청바지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이거시 바로 과소비.

하지만 옷장을 보는 내 마음은

곧 다가올 봄날의 햇살처럼

따듯하다.


이렇게 청바지 부자가 되는 거다.


청바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자유'다.


푸른 '하늘', 푸른 '바다'와 같이

'청'색은 나에게는 자유를 의미하는

색이다.


창의성이라고는 1도 없는 네모난 빌딩 안

1.5m 남짓한 파티션을 사이에 두고

1년에 대략 200일을

하루에 8시간씩

의자에 앉아 모니터만 바라보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나.


뭔가 활동적이고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은 날이면

항상 청바지를 꺼내 입는다.

물론, 청바지를 입는다고 내 '업'의 '태'가 바뀌는 건 아니어서

똑같이 의자에 앉아 모니터만 바라보는 하루가 반복될 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꽉 막힌 이 공간 속, '화이트 칼라'들 사이에

나 홀로 '블루 칼라'가 된 느낌이랄까.


바지를 오래 입다 보면, 항상 겪는 문제가 있다.

바로, 늘어남이다.

특히 무릎 부분과, 엉덩이 부분이 늘어나게 되면

바지의 원래 fit이 완전히 망가지게 되는데

치노바지나, 슬랙스와 같은 바지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격'이 필요한 경우에 입는 바지라 그런지

그 바지 고유의 분위기를 완전히 흐려버린다.


쉽게 말해 그냥 '없어 보인다.'


물론

청바지의 경우에도 이런 늘어남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바지에 비해

늘어난 청바지를 입는 것이 청바지의 '멋'을

크게 훼손하지는 않는다.

늘어난 청바지는 늘어난 데로, 멋이 있다.


그렇게 무심하게,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도록 입는 게

'그렇게 입는 게 청바지니까.'

오죽하면 청바지를 평생 한 번도 빨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하질 않는가.



나도 청바지처럼 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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