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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징구리 Jul 07. 2021

나는 ‘어린아이’입니다.

“작은 것”

   아이들과 함께 길을 걸어가면 아이들은 계속해서 물어봅니다. 어린아이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게 보입니다. 길거리에 피어있는 작은 꽃들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의 옷과 움직임, 그리고 자기가 만나게 되는 모든 사물과 사건들까지 말이죠. 그래서 어린이들은 물어봅니다. 그 모든 것들이 새롭게 다가오는 ‘흥미로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린이는 질문들을 통해서 자신에게 이질적으로 다가오는 그 새롭고 흥미로운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것이 아이의 특징입니다. 마음이라는 깨끗한 종이에 어린이는 계속해서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있는 그대로 적어 내려갑니다. 자신이 듣고 본 그대로 말이죠.


   세상의 많은 책들이 어린아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책 속에 나타나는 늑대와 새끼양, 표범과 새끼 염소, 송아지와 새끼 사자. 그리고 때때로 등장하는 철부지 어린이. 이 모두는 어떠한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수용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그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새끼 양에게 늑대도, 새끼 염소에게 표범이, 새끼 사자에게 송아지도.. 어린이들은 의심 없이 아버지의 말을 따르고, 어떠한 편견 없이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입니다. 그대로..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것들을 진실되게 수용하는 사람이 어린이들인 것이죠.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사고의 틀 안에 가두게 됩니다. 나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것을 새로운 상자를 만들어 담아내기보다는, 비슷한 분류가 있는 상자에 그냥 쌓아둡니다. 새로움을 새롭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것들을 헌 것으로 치부해버립니다. 철이 들었다는 이유로, 그는 그 철에 맞는 행동들을 하려고 하고, 그 외의 것들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철 모르고 하는 행동들에는 많은 위험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세상의 안전함, 세상의 현명함에 갇혀서 축복과 생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죽은 나무의 결과인 그루터기일 뿐입니다. 큰 범주 안에 그 모든 것들을 집어넣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그루터기에서 나온 햇순을 바라봅니다. 그들은 작은 것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처럼 나에게 다가오는 작은 것들을 받아들이도록 하십시오. 어른처럼 큰 범주에 그것들을 넣어서 그들이 숨 막혀 죽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오늘, 단 하루만이라도 주변의 작은 것들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 안의 정의 II, 기초 소묘, 4B연필,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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