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우주가 나의 집

점을 봤다. 집시의 인생이란다. 이토록 멋진 운명!

by 안기옥

하늘과 별이 나라는 존재를 이 풍진 인간사에 어떻게 점지했는지 듣고 왔어.

매머드급 태풍의 한여름을 보내고, 핵폭탄급 변화를 작심하고 나서, 내가 정말 제정신인지 사실 조금은 걱정스러웠거든. 혹시 시궁창 같은 아바나 뒷골목에서 변사체로 발견되는 것은 아닌지, 콜롬비아 국경에서 마약 운반책으로 오인받아 평생 죄인 생활을 하는 건 아닌지. 그리고 초콜릿바 복근의 남친이는 언제 나타나는 거야?!


그런데 있잖아, 난 정말 특별한 사람이더라고.

별들은 바람처럼 떠다니라고, 마음껏 호령하라고 나에게 운명 지웠대. 그러니 이젠 네 멋대로 날아도 괜찮대.

하아, 이렇게 멋진 인생이 있나? 그래서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내 인생 스토리를 써봤어.


Chpter 1 신묘한 아기

애니, 넌 달빛을 가득 품은 월악산 자락, 푸른 바람이 머무는 강가에서 태어났어. 장성한 나무의 가장 높은 곳에서 하늘을 올려보고 땅을 내려다보는 탐스러운 밤송이가 태몽이었다지. 유난히 우렁찬 울음소리로 다른 아이들까지 덩달아 울게 했지. 세상 빛을 본 게 뭐가 그리 서러운지 울고 또 우는 너를 가만히 안고 할머니는 말했지.

"신묘한 아이로구나. 자신이 언제 죽을지 알고, 죽음을 통제할 수 있는 아이야. 사내였다면 세상을 호령했을 텐데..."


Chapter 2 밤을 걷는 소녀

매일 어두운 밤을 걷고 아득한 죽음을 생각해. 감옥 같은 학교, 지옥 같은 나날. 소음만이 가득한 무채색의 시공간에서 증발되길, 소멸하길 바랄 뿐.

하아 떠나야 한다, 아니면 죽어야 한다...!


Chapter 3 광대의 삶, 노예의 삶, 의심의 삶

여기서도 애니! 저기서도 애니! 애니, 애니!

넌 훌훌 날고자 하는데, 붙잡는 게 너무 많아.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경고에 마음이 작아지고, 매달 들어오는 월급에 또 목을 매고. 광대의 인생 같아. 관객의 박수와 웃음을 위해 오늘도 멍들고 찢긴 몸뚱이를 무대에 던지지. 그러다 차차 알게 돼. 그 웃음은 노예 같은 너를 조롱하는 비웃음이라는 걸. 무대에 불이 꺼지면, 손뼉 치던 그 누구도 너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그리고 네가 부린 재주 값은 다 사장님 몫이 된다.

의심과 불안과 회의로 이불 안팎을 들락날락, 엎치락뒤치락거리길 십 수년. 피에로의 거짓 웃음은 이제 그만두기로 해. 진짜 낭만이 있다는 쿠바로 나는 거야, 드디어!


Chapter 4 연애는 자고로 엔조이. What a bitch!

"오늘 한 번만 더 널 보러 가도 될까? 제발...?"

P군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질척대는 남자, 딱 질색인데. 만난 지 벌써 100일이 지났어, 감정은 식었다고.

넌 끊임없이 애인을 사귀지만, 자기애를 넘어선 감정은 절대 그/들에게 주진 않아.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 관계를 요구하는 한심한 루저들은 가차 없이 싹을 잘라버리지.

그런데 왜 더 외로운 거지? 그가 옆에 있어도, 다른 누구를 만나도 왜 나는, 우리는 항상 외로운 걸까? 매정한 년들의 마음에는 어떤 슬픔과 그리움이 있기에 그토록 아픈 거야? 너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책할 거야. 그 끝 모를 고독과 냉정함은 몇 달의 성찰의 시간을 거쳐 책이 된다. 누가 알았겠어? <Bitch>로서의 너의 고백이 그토록 많은 호응을 얻고 베스트셀러가 될 줄이야. 하하, 연애는 정말 엔조이라니까, 그렇지?


Chapter 5 I will get High, the beautiful last day.

발리의 아침 햇살은 오늘도 바스락거려. 가볍고 발랄해서 손에 쥐면 금가루처럼 반짝이며 흩어져버릴 것 같지. 숨을 크게 들이쉬고 태양의 냄새를 깊고 섬세하게 느껴. 이 경쾌한 생명의 냄새를 매일 맡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진심을 담은 기도를 드려. 삶이란 이토록 경건하고 경이롭고 아름답구나.

매니저 야닛은 벌써 신께 올리는 꽃을 현관에 가지런히 놓고 매장 곳곳에 향을 피우고 있어. 너를 보고 그 아이는 미소를 지을까, 아니면 눈물을 흘릴까. 혹시 무서워서 바들바들 떨지도 몰라. 너는 조용히 야닛을 끌어안고 끝까지 남아주어서 고맙다고 말할 거야.

한 자 한 자 고심하여 하루 종일 유서를 쓴다. 태양이 사그라질 때쯤 베스 기븐스를 틀 거야. 밤새 그 슬픈 음색이 리플레이되면, 준비한 자살의 의식을 치르고 하나씩 기억을 더듬겠지. 그놈들, 네가 쓴 책의 구절구절, 발리에서의 첫날, 우유니 사막, 엄마... 그리고 조용히 생을 마감하는 거야. 안녕, 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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