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뒤 남미로 떠난다! 내 멋대로 살아보자!
여유롭기 그지없던 2년간의 인도네시아에서의 생활을 제외하고, 나는 줄곧 대한민국에서 근로자로 살아왔으며 그 착취 세계에 비교적 충실히 순응해왔다. 밤낮없이 일하고, 새벽에도 일하고, 주말에도 일하고, 사장님이 명령해도, 광고주가 불러내도 일했다. 난 책임감 있는 사람이다. 숨도 못 쉬게 빡빡한 사회생활에 소새끼 말새끼를 늘 뇌까렸지만,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것도, 마감에 펑크를 내는 것도 견딜 수 없어 나는 최선을 다했다.
온 나라가 한증막처럼 유난히 무덥고, 회사는 전쟁처럼 바빴던 이번 여름. 이렇게 주어진대로,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인생의 내 마지막은 과로사 또는 고독사가 아닐까, 회의감의 절정에 다다랐다. 작열하는 태양열에 쩍쩍 갈라지는 들판처럼 영혼의 감수성도 하루하루 메말라갔다. 그러나 이런 힘겨운 상황은 전혀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헬조선을 사는 우리 직장인들은 이미 그런 자기 착취 상태를 내면화해 일상의 한 부분으로 여기고 살아가고 있지 않나. 무심히 흘러가는 한강수처럼 하루하루 흘러갈 뿐.
그러다 8월의 막바지, 문득 하느님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 마음의 문을 두드려 주셨다. 올려다 보니 저 위에, 하아 신세계가 하늘에 펼쳐졌다! 닫혔던 심장도 열리고, 무거운 머리도 열렸다!
아, 이제 떠나야겠다.
꿈만 꾸던 남미로 떠나자.
발목 잡힌 회사를 떠나자.
내 나이 서른여섯, 내년이면 중반이라고 우길 수도 없는, 빼도 박도 못하는 서른 후반이 된다. 애인 도남 편도 없고, 내 이름으로 된 집도 차 한 대도 없다. 두 달 전 새로 옮긴 원룸 전세금에 십 원 한 장까지 탈탈 털어 넣어 현재 통장에는 ‘잔고’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의 아주 작은 숫자가 남아있다.
악바리로 아등바등 살아남아도 불확실한 미래에 제 몸뚱이 하나 건사하기 힘든 이런 상황이지만, 나는 떠나야겠다. 곧 진입할 마흔 줄의 여자는 어디를 가도 대접받지 못하는 지옥 같은 나라에서 커리어는 일말의 생명줄이라지만, 이젠 그만둬야겠다.
일 년 뒤, 나는 남미로 간다.
이미 마음은 아마존 하늘 위를 날고 있다.
이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