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내일을 위한 Long-term 필수 덕목
우리 부모님은 평생 일만 하셨고, 지금도 변함없다. 쉬는 날은 추석과 설 당일 딱 이틀. 엄마는 가뭄에 콩 나듯 일 년에 한두 번 서울 딸 집에 와도 끊임없이 가게 걱정, 아빠 혼자 바쁘지 않을까 걱정, 걱정이다. 바지런한 두 분의 갖은 고생 덕에 우리 삼 남매는 별 탈 없이 대학까지 어엿하게 졸업했다.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야 늘 변함없지만,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고, 고작 한 번뿐인 인생을 가족을 위한 희생으로 마감할 수는 없다고. 어린 시절의 마음 단련이 고스란히 이어져 나는 마음에 원하는 것이 있으면 꼭 하고야 만다. 몇 년이 지날지언정 제대로 된 시도라도 할 때까지 자꾸 뒤돌아 꼭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밥벌이와 마음 깊이 원하는 한량의 삶을 조율해가며 버텨왔지만, 힘들 때마다 꺼내보는 꿈이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꽂히는 월급 수혈의 달달함도 언젠간 이 꿈을 이뤄야겠다는 의지를 이기진 못했다. 결국 수행하고자 결단을 내린, 현재 가슴에서 불꽃을 피우는 욕망은 다음 세 가지이다.
미국을 경유한 남아메리카 여행, 1년 내 외
이후 술집(Pub, bar, bistro 뭐가 됐든 맥주를 판다!) 오픈
주요 밥벌이가 뭐가 됐든 죽을 때까지 창작자로서의 삶을 지속할 것
이제 이 계획은 본격적이다!
10년 넘게 생각만 했던 것이니, 잘 해보고 싶다. 특히 잠깐의 놀이가 아닌, 삶의 패턴 자체를 바꿀 수 있는 큰 변화이므로 신중하게, 진중하게 진행해야 한다. 뭘 하든 호흡이 짧은 나는 원래 치밀한 워크플로우나 준비 같은 것 없이 임기응변의 잔재주에 기대 왔다. 조급함, 찰나적 만족을 넘어 긴 호흡으로 차근차근 준비할 것을 꼽아보았다. 약간의 강제를 주기 위해 약속을 달아 둔다. 최소한 이것만이라도 지킨다, 일 년.
글을 만지는 일로 밥벌이를 해왔지만,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아무리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와도 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공허함과 무언가를 빨리 창작해내야 한다는 의지는 그러나 팍팍한 현실과 게으름 앞에 항상 무릎을 꿇었다. 더불어 사회생활에 닳고 닳아 감정도 무뎌졌다. 날카로운 필치는 서슬 퍼런 광고주와 사장님의 닦달 하에서만 가능해졌다. 이래저래 내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은 멀어져만 갔다.
다시 붙잡으려 한다. 어렵사리 시작한 이 브런치를 잘 가꾸는 게 출발이다. 산발적으로 흩어진 블로그도 통일하고 정비해 시크한 글쓰기의 삶을 다시 시작한다. 남미를 다녀오고서는 여행기도 완성했으면 한다. 숱하게 여행을 다니고도 제대로 된 감상문 한편 쓰지 않았다. 후회막심하다.
과감하게 세계여행을 떠난 많은 분들이 전세금 빼서 또는 단돈 삼백만 원만 들고 무작정 떠났다는 말을 한다. 대단하다. 그러나 적잖은 여행을 다녀본 나로선 그런 ‘막무가내’가 누구에게나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다녀와서도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어쩔 수 없는 밥벌이는 해야 한다. 귀국 후 창업을 하건, 백수 생활을 하건 귀한 종잣돈이 될 전세금은 손대면 안 된다. 여행은 경험은 쌓지만 돈은 지출하는 행위이다. 나는 길거리에서 노숙하고 싶지도 않고, 알아주는 다이빙 포인트에서는 그 값이 매우 비싸더라도 바닷속을 들어갈 생각이다. 페루에서 기니피그 한 마리쯤 뜯어야 하지 않나. 죽으나 사나 여행 경비를 모아야 한다. 일 년 동안은 군말 없이 사장님을 받들어 모시겠다.
(스트레스가 쌓일 땐 쇼핑 대신 갈라파고스에서 물개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명상을 한다)
스페인어를 시작한 걸로 치면 햇수로 2년째이지만, 아직도 동사변화를 모른다. 즉, 시작은 했으나 열심히 한 적은 없는 것이다! 단언컨대, 언어는 삼 개월 정도 식음을 전폐하고 몰입을 해야 실력 향상의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그 고난의 행군이 없다면, 매일 하는 30분 정도의 깔짝대기 정도로는(그나마 이것도 매우 어렵지만) 절대 초급을 넘을 수 없다. 이렇게 잘 아는데도, 2년이 지나도록 이러고 있으니 한심하다. 이젠 목표가 세워졌으니 일 년 안에 중급으로 점프해 보자!
언어를 모른다고 여행을 못하는 건 결코 아니다. 그러나 그 나라에 사는 사람과 소통하지 않으면 여행은 피상적이 되고, 타자화하기 쉽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라 하니, 또한 나는 그저 방문하는 객의 입장일 뿐이니,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편의의자 예의이다.
수백 년 된 칠레의 와이너리에서 덥수룩하게 수염 난 쥔장 아저씨와 빈티지가 어떻고, 포도 농사가 어떻고, 유창하게 스페인어로 대화하는 상상을 해본다. 신의 물방울의 환상적 그림이 눈 앞에 펼쳐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