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Do List 2

주색잡기와 음주가무도 고급지게!

by 안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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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것이 남는 것이다!


무릇 인생에 흥취가 없으면 일말의 감정도 모르는 좀비의 삶과 다를 바가 없다. 회사에서 사장님이 시키는 일을 제외한 일은 대부분 놀이의 카테고리에 들어간다. 누구의 강요도 아닌, 자발적 의지와 재미 추구에만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자식들 교육에 신경 쓸 틈이 없이 살았던 엄마의 어쩔 수 없는 ‘자유방임주의’ 교육 덕택에 나는 알아서 놀고 알아서 사는 법을 일찌감치 습관화했다. 덕분에 정해진 길대로 체계적으로 뭘 배우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관심 분야를 내 식대로 배우고 적용해왔다. 수입의 상당 부분이 교육비로 지출되는데, 내가 배우는 것 중에 무엇 하나 더 나은 커리어나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남은 여생 더 고급지게 놀기 위해 배울 뿐이다.


일 년 간을 ‘퇴사준비 기간’이라고 명명하면서, 가장 핵심적으로 할 일은 이제껏 내 가 배워오거나 즐기던 일의 수준을 확 끌어올리는 것으로 정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취미와 놀이가 퇴사 직후의 중장기적 삶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즉, 앞으로는 쭈욱 자발적 선택에 지배되는 삶을 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크게 주색잡기와 음주가무로 나눌 수 있다.


주색(酒色) & 음주(飮酒)


조주사 자격증 따기

자카르타 어느 바에 갔을 때였다. 바텐더가 무슨 술을 시킬지가 아닌, 어떤 맛을 원하는지 물었다. 지치고 더운 날이어서 “새콤하고 기분을 업 시킬 수 있는 맛”을 주문했다. 테킬라 오렌지나 마가리타가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하이볼 글라스 가득 영롱한 바다색 음료가 나왔다. 새콤 달콜한 것이 딱 원하는 맛이었다. 이름이 뭔지 물었더니 ‘only for me’ 용이어서 이름이 없단다. 레알 믹솔로지란 척하면 척 탄생시킬 수 있는, 멋있는 창조의 세계였다. 너무 만족스러워서 후하게 팁을 줬다.


자격증이 바텐더의 기본 덕목은 아니지만, 나 같은 아마추어가 그 세계를 접하기로는 딱 좋은 관문이다. 명색이 술집 오너가 목표이니 올해 안에 조주사가 되고자 한다. (배우고 만들면서 더 많은 술을 마실 수 있기 때문에 그러는 건 절대 아니다.) 훈남 손님이 왔을 때 당신이 원하는 술을 더 세게 만들어 주고픈 생각은 굴뚝같다.



가무(歌舞)


미디 끝장내기

누군가는 평생 직업으로 하는 일을 이 짧은 시간 안에 ‘끝장내기’는 불가능하다. 내가 원하는 수준은 선생님의 도움 없이 내 손으로 온전히 믹싱을 끝낼 수준에 이르는 거다. 지난 몇 달간 배웠지만, 사실 바쁘다는 이유로 제대로 작업을 못하고 한없이 진도가 지체되고 있다.


일 년 동안 남미 여행을 하고 돌아왔을 때, 그 바이브가 고스란히 실린 트랙을 몇 개 완성하고픈 꿈이 있다. 레게의 본고장과 삼바의 고향을 가는데, 그 아름다운 영토의 멜로딕 한 영혼들을 받아들이려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노래 공부에 매진하자.



잡기(雜技)


1) 영상 촬영 및 편집 기술

https://www.youtube.com/watch?v=uhSFgJoeZ1o


피제이의 뮤직비디오가 내 마음에 불을 질렀다. 기계라면 버튼 하나로 작동하는 단순 기계에도 공포심을 느끼는 나에게 영상 촬영이란 신이 내린 수준의, 꿈도 못 꿀 기술이었다. 작곡가인 피제이는 '혹시 사용될지도 몰라' 아이폰으로 저 영상을 찍고, 기어이 뮤비로 탄생됐다. 영상도 아무나 찍을 수 있는 거였나 봐? 나도 아이폰 유저인데...!


부랴부랴 상상마당에서 하는 영상수업을 하나 신청했고, 다음 달 시작한다. 우유니 사막만 종일 찍어도 뮤비 몇 편 뚝딱 나올 것만 같다. 쿠바의 길거리에 널렸다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할매 할아버지들도 섬세하게 찍어올 테다.


벌써 며칠째 고프로 리스트를 살펴보고 있다. 아, 지름신!



2) 남미 문화 알기


인도네시아에 있을 때 국립박물관에서 투어가이드 봉사활동을 했다. 장장 6개월 동안의 역사, 문화 수업을 받고 세 번의 프레젠테이션 테스트를 통과해야 가이드의 자격이 주어진다. 영어로 하는 수업에다 전문 용어도 많고, 반만년의 한국 역사 못잖은 인류사를 가진 나라인지라 공부할 게 무척 많았다. 그러나 그 경험을 통해 '섬 많은 나라'로만 알았던 인니의 깊고 넓은 역사와 문화를 더 많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일 뿐만 아니라 아는 만큼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독립에 관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복잡다단한 문화적 정체성과 장대한 서사시를 방불케 하는 투쟁, 계급화, 콜로니얼리즘이 뒤섞인, 판타지 소설 같은 역사가 펼쳐져 있었다. 현실과 상상이 뒤섞인 마르케스와 보르헤스 작품이 어떻게 해서 태어날 수 있었을까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앞으로 일 년, 지구 반대편 영혼들의 생각과 문화를 차근차근 읽어낼 생각이다. 체 게바라의 재독(再讀)도 그 계획 중 일부이다. 다시 대학생이 된 기분으로.



3) 물에 뜨기


물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는 있지만, 한 곳에 떠 있을 수는 없다. 이건 수영을 못하는 것도 아니도 하는 것도 아니다. 이번에야 말로 물에 뜨는, 잡기 중의 잡기를 반드시 해 낼 거다. 티티카카 호수에서 하는 수영이 그렇게도 영광이란다. 발만 담글 수는 없다.


그러나, 조주사가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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