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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은 Jan 24. 2024

멀리 있는 건 멀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까운 것이 모두 사랑은 아니듯이

우리는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그는 대전, 나는 서울에 있는 각의 집으로 돌아갔다.


대부분의 연인들이 각자의 생활을 하며 연애하다 시간이 지나 한 집으로 합치는 패턴이라면, 우리는 한 집에서 생활을 하다(한국 들어오기 전, 그는 백패커에서 나와 내가 셰어 하던 집에 방을 렌트했다.)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하면서 서로 멀리 떨어지게 된 것이다.


그는 대학에 복학했고, 나는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생업에 종사하는 성인의 원거리 연애라는 것은 주중에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이고, 생일과 크리스마스 같은, 흔히 연인들이 챙기는 기념일 등에 함께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직장인과 학생의 연애라는 것은, 시간이 나는 주말에도 학생인 상대방이 시험기간이라면 만남을 미뤄야 한다는 것이고, 경제력이 없는 연인에게 변변찮은 선물도 기대하면 안 되는 그런 것이다.

20대 중반, 또래 친구들이 남자친구의 차를 타고 휴일마다 여행을 다니거나, 기념일마다 선물을 나누며 축하하고 기쁜 일 슬픈 일을 실시간으로 함께 할 때, 나의 연애는 어느 것 하나 그들과 닮은 구석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러한 이유로 이별을 생각한 적 없다.

애초에 연애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들과 이 사랑이 가져올 결말 같은 건 염두에 두지 않고 그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는 졸업 후 무엇을 할 것인지, 그의 부모님은 무엇을 하시는지,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는 단 1년 앞의 우리의 미래도 미리 상상하지 않았다.

가끔씩 그것은 나에게 괴로운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우여곡절 없이 마냥 사랑만 한 것은 아니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라고, 헤어지자고 마음먹는 순간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연락이 되느니 안되느니, 이번 주말엔 만날 수 있느니 없느니 같은, 다툼을 빙자한 애정확인이었다.

한 번은 대부분 데이트 비용을 감당하고 있는 나에게 미안하다며 그가 먼저 이별을 꺼낸 적이 있었다.

소위 "사랑하니까 헤어지자."같은 레퍼토리였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것을 속인 적이 없었고, 나도 그것을 모르고 있지 않았다. 애초에 그가 가진 것을 보고 만난 것이 아니었기에 나는 미안함이 헤어짐의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곧바로 대전으로 내려가 그의 하숙방에 있는 물건을 둘러보았다.

나 저 토스트기 줘.


나는 그가 감당해야 하는 데이트 비용만큼의 값어치가 나가는 물건들을 몇 개 골라 집으로 가지고 왔다.

그리고 우리가 이별하는 일은 서로가 싫어진 것만이 이유가 될 수 있다고 그에게 선언했다.

그와 만나는 동안, 서울과 대전을 오가는 지루한 연애였음에도 다른 인연에 눈을 돌린 적은 없었다.

함께 있고 싶은 순간에 항상 같이 있을 수는 없었어도, 나는 그에게 소속되어 있으니 굳이 다른 사람을 만날 필요는 없었다.

'누군가에게 소속되어 있다는 것'

그것은 내게 안정감을 주었고, 나의 연애는 그것으로 충분하였다.

우리가 만나는 동안, 그 한 차례 휴학 할 때도 나는 전혀 조급하지 않았고, 그가 한 달간의 해외여행도 떠났을 때도 나는 변함없이 출근을 하며 그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졸업과 동시에 취업에 성공해 2월부터 첫 출근을 하였다.


같은 해 6월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다.

우리가 호주에서 처음 만난 지 5년째 되던 해였다.

그는 금융업에 종사하는 직장인이 되었고, 상견례날까지도 자세히 아는 것이 없었던 시부모님은 서울의 20평대 아파트를 신혼집으로 마련해 주셨데, 그는 그곳을 풍선과 양초로 가득 채워놓고 내게 프러포즈를 했다.

학생과 연애한다고 내가 아깝다고 했던 직장 동료는 결혼식 준비하는 나에게, 알고 보니 그는 "도련님"이었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주변에서 뭐라고 하던, 그의 조건이 어떻게 달라졌던, 2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는 나에게 가슴에 빵을 품고 내 집 앞에 서있던 남자일 뿐이다.


내가 스위스에서처럼 도망쳤다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그가 내민 빵을 받고 그냥 문을 닫았다면, 그에게 뉴질랜드로 가라고 말을 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랑하니 보내준다 하는 말에 량 맞은 영화 한 편 찍은 것으로 우리의 연애가 막을 내렸다면, 원거리 연애가 힘들어 만나고 싶은 아무런 때에 볼 수 있는 사랑을 찾아 떠났다면,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는 그와의 미래가 불안해 함께하기를 포기해 버렸다면?


나에게는 그와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몇 번의 기회들이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내가 다른 길을 선택하지 않은 건, 이 사람이 나의 운명이라고 번개를 맞은 것 같은 깨달음이 있어서도 아니었고, 내가 하고 있는 이 사랑만이 정답이라는 계산이 끝났기 때문도 아니었다.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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