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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은 김밥

김밥으로 채우는 주말

by 래리

결혼한 지 3개월이 채 되지 않는 나와 아내는 7-8월 주중에 거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깨가 떨어지기 전에 내 발 사무실에서 떨어지지 못해서이다. 매년 바쁜 시기가 있었지만, 올해의 여름은 더욱 다양한 일들이 쏟아지기 때문이었다. 반면 비교적 한가한 시즌인 아내와 나는 아침에 일어날 때와 밤에 잠잘 때 잠깐 보고 얘기하기 일쑤였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항상 주말을 함께 압축적으로 보내곤 했다. 아침의 시간부터 저녁까지 함께 하는 시간들로 주중에 보지 못하는 시간들과 이야기들을 채워야 우리의 이야기가 흐를 것 같아서였다. 8월의 주말 아침도 그러했다.


토요일 아침 9시, 침대에 몸을 맡기고 늘어진 나에 반해 주방에서는 아내의 분주함으로 채워진 소리가 들린다. "삭, 사-악" 뭉뚝한 무언가가 잘리는 소리, "캉- 캉" 보울과 접시가 부딪히는 소리, "칙-- 치익-" 김이 펄펄 나는 소리의 3중주에 거실로 천천히 몸을 이끌고 나가본다. 그곳에는 채 썬 당근, 단무지, 햄 등 김밥이 되기 전 재료들이 오와 열을 맞춰 줄을 서있다.


주말에 언제 일어날 거냐고 물었던 아내의 말의 뜻을 조금 이해해 본다.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아침에 일찍 일어나 준비한 아내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반반 섞은 아침인사를 건넨다. "뭐 도와줄까?". 당근을 볶던 아내의 손을 덜기 위해 나도 주방의 3중주에 한 소리 얹어본다. "톡, 톡, 팍!" 계란을 까자 1개였어야 할 노른자가 2개가 되어 하얀 보울에 담긴다.

와 쌍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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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어 깬 달걀도 노른자 2개로 나와 2개의 알에 4개의 노른자가 나왔다. 당장 로또를 사러 가자는 둥, 쌍둥이의 조짐이 보인다는 둥의 말을 늘어놓으며, 지단을 만든다. 2개였던 손이 4개가 되니 재료들이 빠르게 채워진다. 볶은 당근, 햄, 단무지, 지단, 파프리카, 그리고 루꼴라, 오이, 그리고 냄비로 지은 밥까지, 8가지로 어우러진 식탁을 보니 먹지 않아도 마음이 풍족한 느낌이다. "꼬르륵", 감성과 달리 몸의 생채기관은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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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김밥이라곤 초등학교 시절에 엄마가 싸준 김밥이나, 김밥천국 아주머니가 만든 김밥밖에 먹어보지 못한 나는 김발 위에 밥을 펼치는 것조차 생경했다. 이탈리아에 다녀온 뒤 루꼴라의 매력에 빠진 아내 덕에 특별히 루꼴라를 넣은 김밥을 싸보았다. 당근을 좋아하지 않은 나를 위해 볶은 당근부터, 고슬고슬하게 지은 냄비밥 등 하나하나의 재료에 담겨있는 아내의 배려를 손에 조물조물 올려 담아 김밥을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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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말고 먹은 김밥은 따뜻하고, 고슬고슬한 주말의 맛이었다. 싼 김밥을 다 먹으니 11시가 되었다. 우리의 주말 아침이 만든 김밥으로 시작한 주말은, 쌍란이 나왔을 때 느낀 경쾌함처럼 가뿐했다. 30대 중반이 되어 처음 싼 김밥의 맛은 더욱 따뜻했고, 고슬고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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