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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 은 Mar 12. 2019

디아스포라의 공간

- 션 힐의 포스트카드 연작시

 

2005년 8월 어느 날 이른 저녁 션 힐은 그의 아내 로렌이 모는 자동차 포드 크라운 빅토리아의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당시 그들은 미네소타주의 베미지(Bemidji)에서 캐다나의 북서부 도시 밴쿠버(Vancouver)까지 북아메리카 서부지역 종단 여행 중이었다. 션 힐은 여느 여행자처럼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 마주친 풍경과 사람들을 엽서 모양의 사진으로 담아두었다. 베미지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느 날 저녁 워싱턴 주의 하트라인을 지나는 중에 그는 북아메리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이트호크 두 마리가 철길 위로 낮게 비행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땅 위에 곧게 뻗은 선로에 바짝 붙어 두 마리의 새가 재주넘듯 공중곡예를 벌이는 모습이 그에게 마치 누군가에게 받은 선물처럼 느껴졌고, 불현듯 그 순간을 친구이자 동료 시인인 니키 비어(Nicky Beer)와 나누고 싶어 졌다. 그는 그 자리에서 시를 써서 그녀에게 엽서로 보냈다. 


  시인 션 힐의 엽서시 연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많은 작가들이 ‘엽서’를 시 형식으로, 혹은 비유로서 시와 산문에 써왔기 때문에 엽서시 연작이라는 기획 자체는 특이할 것이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기획을 시작하면서 그는 두 가지 원칙을 세운다. 반드시 여행 중에 새를 봐야 하고 특정인을 지정해서 시를 쓸 것. 시를 담은 엽서는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 후가 아니라 여행 중에 보낼 것. 션 힐은 자신의 엽서시 기획을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내 엽서시 연작들이 엽서 쓰기라는 어떤 극적인 상황을 담아내길 원했다... 편지봉투에 넣지 않은 채 전해지는 엽서는 마치 시가 그렇듯 저 바깥에, 열린 공간에 놓여 있다.” 


엽서 쓰기의 극적인 상황은 그가 겪은 또 다른 경험을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언젠가 션 힐은 위스콘신 주의 매디슨에 있는 한 골동품 가게에서 옛 엽서 하나를 구입한다. 시골길을 따라 펼쳐진 푸른색 호수 사진에 매혹되었던 것이다. 엽서에는 “아칸서스 주 혹시(Hoxie)에서 보내는 인사”라고 제목이 붙어있고, 위스콘신 주의 바라 부(Baraboo)에 사는 G.J. 쿠시만이라는 여성에게 수지와 아돌프가 보내는 사연이 담겨 있었다. “어제 62번 고속도로를 따라 아칸서스를 가로질러 와서 오늘은 멤피스를 향해서 63번을 달리고 있어요. 아칸서스 주의 존스보로(Jonesboro)를 떠날 땐 너른 밭에 물기둥이 서 있었죠. 농부들이 원판 써레로 땅을 갈거나 면화를 따고 있었어요.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1959년 1월 29일이라고 날짜가 적혀 있었고 발신지는 아칸서스의 마키드 트리(Marked Tree)라는 곳이었다. 수지와 아돌프는 쿠시만에게 엽서 사진에 담긴 길에 있었던 시간, 그 길 이름, 그곳에서 본 것들을 상세하게 적어서 그 자리에서 엽서를 부친 것이었다. 개인적인 사연은 적혀있지 않아서 그들이 누구인지, 직업이나 배경 등에 대해선 전혀 알 길이 없지만, 엽서를 읽고 나서 션 힐은 마치 그들을 잘 알게 된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수지와 아돌프의 엽서처럼 여행 중 길 위에서 만나고 스쳐간 것들을 짧게, 하지만 생생하게 글로 담아 누군가에게 보내지는 과정까지가 션 힐이 말하는 엽서라는 매체가 제공하는 극적인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션 힐은 새가 등장해야 한다는 조건을 단다. 그의 엽서시 연작을 담고 있는 최근 시집 『위험물질(Dangerous Goods)』(2013)의 표지는 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이 흐릿한 윤곽으로 나타나 있는 지도 위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떼가 인적 드문 해안가와 나룻배를 배경으로 날아다니는 이미지로 되어있다. 표지 전체엔 푸른빛이 돈다.     



                                      (시집 표지그림)                                



표지가 시집의 전부는 아니며 중요한 것은 물론 수록된 시편들이다. 하지만 때로는 시집의 표지에 매혹될 때가 있다. 제목에 담긴 “위험한”이란 형용사와 “물건”이란 말에 함축된 딱딱한 경제적 의미 및 몰개성적 이미지와는 달리 표지의 이미지가 환기시키는 비상, 노천(露天), 하늘과 바다의 푸른빛과 지도와 배가 상징하는 이주와 디아스포라 등은 우리 존재의 심부를 건드리는 정서적 울림을 갖는다. 이 시집을 찾기 위해 내가 지금 거주하는 도시의 주립대학 도서관 6층으로 올라가 책 곰팡이 냄새가 가득한 서가를 한참 걸어가서  시집을 찾아 꺼내 들었을 때의 전율을 아직도 기억한다. 난 이 시집의 내용을 읽기도 전에 표지의 이미지로 션 힐의 시가 디아스포라에 관한 것임을 직감했고, 시집을 펴서 시를 읽기를 미룬 채 표지의 이미지를 며칠을 두고 내 마음속에 새겼다. 표지의 이미지에 사로잡혀 문자로 된 시를 읽기가 어려웠던 경험은 처음이었다.


  표지 속 새떼의 움직임은 종작없다. 리더를 따라 이 열 종대로 줄을 맞추어 날아가는 철새 무리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안가에서 떠나지 않고 사람들 주변에 모여드는 갈매기로도 보이지 않는다. 언뜻 보면 바다에서 솟아 하늘로 향하는 듯한 이 새떼는 무리 속에서 홀로 비상한다. 창공에 점점이 흩뿌려진 듯한 새들을 보면서 나는 형체 없는 어떤 것을 향한 그리움에 사로잡혔다. 시집의 표지에 대한 나의 매혹은 아직도 여전하지만 시집을 비로소 펼쳐 들고 수록된 시를 한 편 한 편 읽어가면서 션 힐의 엽서시 기획을 알게 되었고 애초의 매혹에 주제적 깊이가 더해졌다. 표지의 매력에 더하여 형식과 내용에서 보여 준 시적 완숙도는 션 힐의 시집 『위험물질』이 내게 언제까지나 소장하고 싶은 시집이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이 시집에는 총 12편의 엽서시가 포함되어있다. 엽서시 기획에 속하지 않는 시들도 물론 이런저런 방식으로 이산의 주제에 연결되어있다. 애초 여행 중 새를 보고 특정 지인을 향한 개별적 엽서를 보내는 방식으로 시작된 이 기획은, 그의 말을 인용하면, 점점 “틀린 주소”, “목적지”, “후회”, “오늘 나의 세 번째 매혹” “화해” 등 추상적 형태를 띤 “가공된” 수신자를 향하거나 그런 발신자가 보낸 엽서시로 변화해간다. 이 네 가지 외에도 “무기력”, “향수”, “핏자국”, “내 신발 바닥” 등이 그의 엽서시 수신자 혹은 발신자로 지칭된다. “안나”와 “에두와르도”에게 보내는 두 편의 엽서만이 특정인의 이름을 지칭하고 있다. 이 “가공된” 수신자 혹은 발신자를 향한 엽서시에 대해 션은 이렇게 말한다. 


“특정 시간과 장소의 이미지와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 상상의 엽서들은 마치 시의 화자가 수신자에게 시인인 내가 겪었기 때문에 한번 걸러져서 뒤죽박죽 섞이고 그 목적이 재조정된 경험을 구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션 힐은 시어를 통해 어떤 울림의 체계를 만들려고 시도한다. 그의 시어는 그가 관찰하고 사유, 그리고 세상에서 겪은 만남들에서 울려 나오는 것을 담고 있다. 그에게 이 울림이 담긴 시란 바로 역사, 즉 과거에 일어난 일의 연관성을 이해하는 방식으로서의 그런 역사 쓰기에 다름 아니다. “내게 시는 소통이며 역사이고 미래이며 바로 지금이다”라고 션은 말한다. 언어는 그에게 현재와 응답하는 통로이다. 가령 「노스탤지어에 보내는 엽서」에서 사용된 “속이다”를 의미하는 hornswoggle이나 “초심자”란 의미의 greenhorn 같은 단어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고어 표현인데, 노스탤지어가 의인화되어 일종의 호격 명사처럼 사용된 이 시에서 이런 어휘들은 마치 우리가 그리워하는 과거의 시간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시를 읽어보자.


언제부터 내 인생이 노스탤지어의 재료가 

되어 버렸지? 일전에 

한 술집에서 구석자리에 앉은 한 사내가 

맥주를 주문하며 하는 말을 들었다. 

난 네가 새 친구를 만났는지 몰랐어

이번에도 장거리 친구지.


그 친구를 보면 내 동생이 생각나

아주 어릴 적 동생이 지껄였지 

바닷가에서 첫 파도가 밀려들어 

그가 서있던 자리를 차지해버렸어

물에 잠기고 속임을 당했던 거야

물안경은 이제 그의 목 언저리에 내려와 있고

그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나 스쳐 지나갈 일에 

더 이상 초보자는 아니었지.


이 새로운 도시의 이발사는 

내 머리카락을 잘라주겠다고 고집을 부려

내 머리숱이 없어지는 것을 막아보겠다고

그는 전혀 몰랐던 과거의 나로 돌려놓으려고 해


나는 주머니 속에 종이쪽지에 적은  

단어들을 가지고 다녔어

매일 아침 나는 그 단어들을 다시 생각해

정오에도, 자정에도 다시 떠올려 봐.

그것들은 나의 마지막 말이야

아니면 나의 마지막 말이 되었으면 해.

                  --「노스탤지어에 보내는 엽서」 전문


이 시에선 향수의 대상이 장소로서 뿐 아니라 시간 속의 고향이 되어, 그때 그곳에 대한 그리움을 그때의 시점으로 형상화한다. 이런 효과는 디아스포라 적 경험에 매우 중요하다. 디아스포라에게 고향은 단지 그립고 돌아가고 싶은 장소가 아니라, 떠나는 그 순간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상실된다. 흔히 디아스포라는 귀향 후 낯선 고향의 모습에 상실감에 시달린다. 그러면서 깨닫는 것은 자신이 그리워한 고향은 장소로서의 어디가 아니라 기억 속의, 과거의 시간 속에 고스란히 간직된 이젠 돌아갈 수 없는 저 먼 곳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노스탤지어는 상실이며 상처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기억 속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불가역성이 디아스포라의 주체에 고향에 대한 갈망이 아닌 상처를 입히는 (homesick) 것이다. 

  

오래전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 위해 수 천 페이지의 글을 썼듯이 문학은 이 상실된 시간을 복원하려는 욕망인지 모른다. 여기에 디아 스포라 적 시각이 더해지면 상실된 시공간으로서의 고향을 언어로 복원해내는 일이 문학의 존재 이유가 된다. 이 시는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사회문화적으로 죽어버린 언어를 통해서 지나간 시간의 과거성을 환기시킴과 동시에, 독자를 그 과거의 시간대로 소환해서 ‘그곳’으로 보낸다. 그곳이라는 기억의 장소는 이미 시간성을 획득한 곳이다. 

  

션 힐의 시는 미국 역사, 그중 특히 흑인에게 가해진 폭력과 죽음의 역사에 깊이 관여한다. 조지아주의 밀레지 빌(Milledgeville)에서 태어난 그는 선천적으로 기형인 발을 교정기에 의지한 채 살았다. 그의 기형적 발은 안쪽으로 굽어있어서 영어로 ‘비둘기 발가락’이라고 불렸는데, 이 어린 시절 불구의 경험이 그를 ‘새’ 이미지와 친밀하게 해 주었다. 발을 교정한 뒤 두 발 모두 한 방향을 향해서 걸을 수 있게 되자 그의 가족은 그의 발을 “바람에 불려” 갔다고 불렀다. 이 말 때문인지 성장한 뒤 힐은 고향을 떠나 여러 곳을 떠돌며 살게 된다. 

 

 이처럼 전치 혹은 이산(displacement)은 션 힐의 시에서 중요한 시적 실천이다. 그는 증언의 시를 위한 시점을 전치를 통해 확보한다고 말한다. 그에게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의 이동, 즉 디아 스포라 적 뿌리 뽑힘과 이주의 경험은 일종의 ‘매혹’과 관련된다. 어딘가에, 혹은 무엇에 주술에 걸리듯 빠져드는 것, 그것은 폭넓고 일반적인 관심을 어쩔 수 없이 무기력하게 관심을 한 곳, 하나의 대상으로 집중시키는 것이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상상해보라. 뭔가에 열정적으로 매달리던 때를 떠올려보라. 일상적인 삶의 흐름이 멈추고 한 가지 생각, 대상, 행위에 몰두하게 되는, 그 저항할 수 없는 사로잡힘. 이것 자체가 전치 혹은 이산이라면, 이제 우리는 디아 스포라 적 경험을 생각할 때 고향과 향수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 나와 사랑의 매혹에 관해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션 힐의 시적 디아스포라를 심도 있게 논의하려면 그의 흑인 노예 조상들을 불러내야 하지만. 이 글의 지면상 본격적인 흑인 디아스포라 논의는 다음 기회를 기약하고, 그의 시 몇 편을 번역해서 함께 읽어보는 것으로 글을 맺으려 한다. 션 힐은 최근 미국 시단에서 보기 드문 지성과 감성의 조화로움을 보여주고 게다가 시에 담긴 역사적 울림이 인상적이다. 시 한 편 한편과 만나는 경험이 갈수록 소중해지는 때이다. 이론이나 해석을 거치지 않고, 번역으로 걸러지기는 했어도 있는 그대로의 시 언어를 통해 독자들이 시인 션 힐을 직접 만나보기를 바란다. 그의 시가 호소력 있게 형상화하고 있는, 국가와 인종 불문 우리 모두의 내적 풍경인 고향 상실성을 고요히 마주할 시를 읽는 시간이 될 것이다.   


<내 신발 바닥에 보내는 엽서>


당신, 여기 있는 것과

사용된 것, 낡아버린 것

세상의 낡음과 한데 섞이도록

내버려진 것의 총화라서

엽서 한 장 받을 자격이 있지.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어

당신이 어디 있는지 

또 나는 어디에 있었고

우리는 어디로 가게 될지

그러니 이 엽서는 당신에게

패스(*) 일반우편으로 보낼게. 


  *Path: 길 혹은 통로를 의미하는 단어이며 일반우편시스템의 고유 이름이다.



<틀린 주소로 보내는 엽서>


어제 나는 있었다, 시작을 위한 장소

오늘 나는 봤다, 또 다른 장소, 하지만 

안다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너는 나를 주어 든 목적어든 그 문제에 있어선 모른다

하지만 너는 적절하다 --

적절하게 어울리지 않지 마치 그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는 어린 시절 놀이를 하며 함께 노래했지

너는 참회실 같다, 아니면

레스토랑의 건의함 일지 모르지. 

너는 내가 회개를 하든 비아냥대든

신경 쓰지 않지. 나는 네게 

오늘 하이킹 다녀온 천국의 한쪽에 대해

말해줄 수 있어, 그곳의 식물과 동물에 대해

새들도! 아님 사이들 퍼레이드(*)는 어때

어제 봤던 그 미묘한 광경

그래 그건 중요하지 않지. 나는 말할 수 있어

네게 내가 정말 무엇을 느끼는지

아버지에 대해서, 내 신발 치수에 대해서

그것들은 똑같이 무겁지

심장의 무게 달기 의식(**)처럼 - 영혼은

천국으로 들어가려면 깃털의 균형을 맞춰야 하지

내일은 사자의 단추 박물관(***)에 갈 예정이야. 

그들은 사자의 조절판이라고도 불리지

기관사가 꾸벅꾸벅 졸 때를 위해 마련된 것처럼.

압력이 없으면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Sidle Parade 퍼레이드의 일종

**Weighing of the Heart 죽은 자의 심장을 새 깃털과 함께 무게를 달아 사후의 생명을 정

   하는 고대 이집트의 의식으로 깃털보다 무거우면 죄를 많이 지은 것으로 판명되어 저울 옆

   에서 기다리고 있던 괴물에게 먹이로 던진다. 

***Dead Man’s Button ‘사자의 단추’란 표현은 기계를 작동하던 인간이 갑작스러운 이유로 죽

   게 되면 자동으로 작동하도록 되어있는 버튼이나 스위치를 의미



  <핏자국이 묻은 엽서>


이 엽서를 며칠 동안 품고 다녔다네,

사랑하는 이여. 이제 마침내 당신에게 몇 자 적으려고 하오. 

오늘은 이 지역의 건축을 보고 경탄해 마지않았다오.


첨탑, 아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얼룩은 신경 쓰지 마시오,

이 엽서에 손을 베었지. 알아요,


뭐 그런 일이 일어날까 싶다는 걸. 이곳의 해안가는 아름답소. 

엽서는 사실 마체테 칼(*)이었어. 하지만 꿰맬 필요는 없었지.

원주민들처럼 코코넛을 손으로 깨 보려고 했다오.


글쎼, 말하자면, 플랜테이션(**)을 둘러보다가 

지역의 한 여인이 아이를 낳는 것을

도와주었지. 뭐 영웅이 되려던 것은 


아니었지. 고백해야겠소.

이 지역의 술집에서 만난 한 여인의

월경에 연루되어버렸소.


이 말을 왜 내가 했는지 도통 알 수가 없군.

뭔가 통속적이고 사소한 것, 면도날에 스친 것 같은.

사실을 말하자면, 시민 폭동이 일어나는 와중에


잘못 날아온 총알에 맞을 뻔했지.

나는 괜찮소. 당신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요.

이 엽서를 받으면 당신의 파피에 마쎄에나 사용하길.

아니면 파피에 콜레(***)에 사용하던지. 


*machete 중앙아메리카와 카리브 연안지역에서 사용되던 크고 무거운 칼

**plantation 한 종류의 수확물을 재배하는 큰 농장으로 노동자를 고용해서 공장처럼 운영하

   는 시스템. 미국 노예제 당시 면화 재배농장이 대표적 예

*** papier mache 종이, 밀가루, 풀 등을 이겨서 만드는 반죽 공예 기법

    papier colle 종이를 사용한 콜라주 기법


<위험물질>


연금술사 같은 캐나다인들을 찬양 하노라

해로운 재료들(HAZARDOUS MATERIALS)을 

위험물질(DANGEROUS GOODS)로 바꾸어놓다니.

삼 년 전 그날 너는 운전을 했고

나는 네 옆에 앉아 있었어. 표지판을 보고 들떴었지

어떤 문장이 낯설어지는 경험이었어.

너를 생각하긴 너무도 쉬워

진부함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너는 내 삶의 가장 위대한 물건.

나는 올봄 혼자 자동차 여행을 했어. 

존재론이라는 단어가 나를 덮쳤어

뉴욕의 던커크에 있는 데미 트리의 그리스 레스토랑에 

앉아있었지. 레스토랑 밖에는

전력 공장이 이리 호수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어. 

불빛이 켜지자 갈매기들이 황혼 속을 회전하며 날았고

추상적 관념으로 호박을 깎는 일이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전부였어 --

잭 오 랜턴(*)의 존재론.

너의 부재를 달래줄 얼굴 표정을 하나 만들었지만

촛불과 그것의 흔들림을 생각했지 --

불이 밝혀지거나 캄캄한 암흑이거나.

덴마크의 왕자(**)가 너와 잭과 함께 했고,

나는 포틴 브라스의 아버지(***)를 떠올렸어

그는 내 고향의 행동파 사내였지. 그리고 나는 여기

이 세상에 이렇게 나와 앉아서

잭 오 랜턴의 존재를 명상중이야

이 존재는 내가 너를 떠나 있을 때면 

내게 유령처럼 나타나겠지.


* jack-o-lanterns 10월의 마지막 날 핼러윈에 호박을 깎아 얼굴 모양으로 만들고 촛불을 안

         에 넣어두는 등불

**the Prince of Denmark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의 주인공 햄릿

*** Fortinbras-father 포틴 브라스의 아버지. 포틴 브라스는 <햄릿>에 나오는 노르웨이의 왕

      으로 햄릿의 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한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복수하려고 덴마크를

      공격한다. 아버지의 복수를 지연시키면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햄릿과 비교된다. 



##이 글은 문예지 <한국동서문학>의 미국 문학 기획연재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고, 수록된 시는 모두 필자의 번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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