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도 무언가를 씀에 있어서 내적인 필연성 같은 건 찾지 못했지만, 문득 할머니가 나오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름대로 필연성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필연을 생각할 때 기준이 좀 높은 편이다. 정말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 묻는다면 쉽사리 그렇다 할만한 것들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절함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에게는 그다지 간절한 게 없었던 것 같다. 대학원 시절 소설 창작을 지도해 주시던 교수님 또한 나에게 그다지 소설을 쓰는 데에 간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었다. 그때의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내 생활은 소설이 우선이 아니었고, 소설이 아니면 안 되는 삶 또한 아니었기 때문이다. 필연에 대한 기준이 높듯, 간절함에 대한 기준도 높다. 그 기준은 나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타인에게도 해당되는 기준인데, 누군가가 나에게 ‘나는 이것에 간절해’라고 말한다면 나는 ‘아니, 너는 딱히 간절해 보이지 않는데?’라고 쉽게 말할 수 있다. 그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고, 생활을 어떻게 이어나가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소설에 목메지 않았고, 밤을 새워가며 소설을 쓰지 않았으며, 소설 때문에 아파하지도, 내 것을 포기하거나 내어주지 않았다. 소설 쓰기는 내 삶에서 필연도, 간절한 것도 아니었다.
지금에 와서 그렇냐 하면은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앞서 말했듯 그 기준이 나에게 높기 때문에 나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보다도 간절해질 필요는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말이 되면 써야 한다는 충동이 강하게 일어야 하는데 그다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나에게는 조금은 골치 아픈 일이기도 하다.
최근에 친구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간절함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친구들은 나름대로의 간절함이 모두 있는 친구들이었고, 각자의 ‘내적인 필연성’에 의해 삶을 살아가고, 또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친구들 사이에서 문득, 나는 그다지 간절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 이후에는 내가 마치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이나, 죽어 있는 삶을 사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다음 날에 콘서타를 처방받기 위해 병원에 갔다가 그 이야기를 했었다. 항상 진료실에 들어가면, 한 달간 잘 지냈는지 의사는 묻고(한 달치의 약을 받기 때문이다) 나는 한 달 동안 어떻게 보냈는지 의사에게 간략히 말한다. 나는 이 과정이 나름의 결산 보고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 과정에서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고, 아쉬움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때에 나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내가 느낀 것에 대해 말했었다. 나는 뭔가 간절함이 부족한 것 같다고, 그렇게 말했다. 의사는 그 친구들은 간절함이 있나요? 하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말하며 친구들을 짧게 소개했다. 그 말에 의사는 그 친구들이 독특한 거 아닌가요? 하고 답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맞아요, 그렇긴 하죠, 하고 답했다.
진료실을 나오고 약을 처방받은 후에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생각했다. 내 친구들이 특이하긴 하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간절하게 살아가지는 않지. 뭔가 항상 간절한 게 있다면 그건 조증이 아닐까? 보통은 나지. 나처럼 살아가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처럼 간절해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와 나, 하고 쓰는 글들은 대체로 ~에 대해 써야지 해놓고 딴 소리를 하게 되는 것 같다. 그게 사실 내가 여기에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한데, 소설에서는 이렇게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누군가 읽는 사람은 있지만, 읽어주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라서 가독성 같은 건 고려하지 않고 쓴다. 다시 돌아와서… 할머니에 대해 쓰고 싶다,라는 생각을 최근에 했다.
우연찮게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인연이 깊게 된 것 같다. 학부 3학년 때에 동구청에서 생애출판 사업을 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자서전 작업을 한 후로 3년을 더 동구청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시간을 보냈다. 분수에 맞지 않게 팀장을 3년이나 했는데, 졸업을 앞둔 23년 겨울에 출판 기념회 때 했던 말이 떠오른다. 본의 아니게 매년 30명 정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글쓰기를 돕고 그 글들을 첨삭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는 백 명 분의 자서전을 읽게 되었고, 동구를 지날 때마다 이곳은 어떤 할머니의 이런 이야기가 있는 장소지, 이곳은 어떤 할아버지의 이런 이야기가 있었지, 하면서 웃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면서 동구를 걷는다는 내용이었다. 그 안에서 용기를 얻기도 한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는데, 사실 그건 행사의 분위기에 맞춰 긍정적인 결말을 내기 위한 꾸밈말이었다.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보면서 용기를 얻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으며 또 한편으로는 어떤 기대를 접기도 했기 때문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는 이야기가 많다. 그들과 내가 다른 건, 나는 쓰는 것을 연습한 사람이고, 그들은 쓰는 것을 연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서전을 쓰려고 함께 앉아 그들이 써온 글을 보면, 어떤 것은 감정이 결여된 채로 보고서 형태로 쓰여있고, 또 어떤 것은 사건이 결여된 채로 감정만 쓰여있다. 그들이 잘 쓸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그들이 감정을 찾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하고, 잊었던 사건과 이유를 찾게 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야기가 되려면 오래 생각해야 하고, 또 수없이 퇴고해야 한다. 살면서 겪은 것들이 모두 이야기가 되지는 않는다.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엮으면 열 권짜리 대하소설도 나온다는 말이 있는데, 그들은 쓰지 못한다. 막상 적으려고 하면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문장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선 쓰기 위해서는 그때를 다시 불러와야 하고, 그때를 정확히 불러오기 위해서는 오래 생각해야 한다. 또 누군가 읽을만한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수없이 퇴고를 해야 한다. 글을 쓰는 일이 그다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어능력을 가지고 있고, 한국 사회에서 문맹은 흔하지 않다. 누구나 말할 수 있고 누구나 글자를 적을 수 있다. 다만 그게 이야기의 형태를 띠는 데에는 많은 숙고와 퇴고가 필요하다.
최근에 출판사에서 일하는 형에게 써놓은 단편소설을 보내는 일이 있은 후로 계속 드는 생각이 나는 써놓고 퇴고를 하는 데에는 긴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써놓은 소설의 파일을 정리해 보았더니 열 편 정도 있었다. 근데 누군가에게 보일만한 소설이 있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아주 못 쓴 소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내 기준에서 크게 아쉬운 부분들이 있어 선뜻 보여주지 못하는 소설들이었다. 내 눈에 보기에 부족한 부분이 딱히 없다는 생각이 들면 선뜻 보여주겠지만, 내 눈에 보기에도 부족함이 있는데 그걸 누군가에게 내미는 일은 나 스스로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고, 프로답지 않은 행위였다.
근데 여기에서 중요한 건, 내 눈에 보기에, 또 내가 아는 부족한 부분들이 있는 소설을, 하지만 끝까지 쓰여 완성된 초고들을 퇴고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신인상에 응모해 볼 법한 소설들이 내게는 한 편도 없는 것인데, 완성된 소설은 열 편이나 있다. 근데 나는 최근까지 새 소설을 쓰고 있었다.
간절했다면 소설을 계속해서 고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번 여름에 내가 할 일은 어쩌면 방치된 열 편의 소설을, 제법 그럴듯한 모습으로, 내 눈에 보기에 아쉬움이 없는 정도로(어쩌면 그건 불가능하겠지만) 만들어놓는 일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는 와중에도 쓰고 싶은 마음이 들면 계속 쓰면서…
아… 할머니와 나,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려고 했는데 이건 퇴고와 나, 로 바꿔야겠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젊은 사람을 초고로 비유한다면, 나이 든 사람은 퇴고가 된 작품일까.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종이가 닳도록 지우고 쓰고 지운 그런 형태일까. 주름이 생기고, 머리가 하얗게 세고 노화가 된 이미지라면 나름대로 적절한 메타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사십 년을, 팔십 년을, 백 년을 퇴고하고도 완성되지 못한 소설도 있다, 는 식으로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닌가, 그건 내 눈에 보기에 그런 것인가. 저마다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나. 그렇다면 그건 퇴고를 실패한 것이 아니라, 이해받기를 실패한 것일까. 아니면, 그 누구도 읽으려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퇴고해 나가야 할까?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또 이리저리 먼 산에 도달했지만 나름 유의미한 도착지다. 가자 가자, 저 언덕으로 가자. 가서 깨달음을 얻자, 하는 주문이 떠오른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모지 사바하) (불교 군종병이던 때가 떠오른다. 종교와 나? 그러고 보면 나와 얽힌 것들이 정말 많다. 그게 연이지. 그게 삶이지. 그렇지.) (~와 나, 는 무궁무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