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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베르 Aug 02. 2021

속초, 그리고 아버지

백신을 맞고 바로 본가에 내려가는 일정이었다. 사흘동안 생활하는 데 필요한 짐을 쇼핑백에 넣고 집을 나섰다. 평일 아침에 고속버스는 텅텅 비어 있을 테니 옆자리에 쇼핑백을 놓을 수 있겠지 -- 하고 생각하던 찰나, 아버지의 연락을 받았다. 이미 병원 근처까지 오셨다고. 차를 타고 천천히 내려가자고 하신다.


원래는 계획에 없었는데, 새벽 3시에 눈이 떠져서 일찍 서울까지 올라오셨다고 한다. 당황과 기쁨의 감정이 교차한다. 사실 기쁨이 더 크다. 아니, 아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으셔서 꼭두새벽에 먼 길을 달려오신 걸까. 접종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눈물이 핑 돈다.


접종을 마치고 차에 올라탔다. 아버지는 급히 방향을 틀어 강원도를 향했다. 미시령 고개를 넘어 속초에 가자고 하신다. 드넓은 바다를 보고 싶은 아들의 마음을 읽으신 걸까. 미시령 즈음에서 점심을 먹고 두 시쯤 속초를 찍은 다음에 바로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동홍천에서 고속도로를 빠져 나가 44번 국도를 타고 인제를 향했다. 46번 국도로 갈라져서 미시령터널을 가는 길목에 '용대리 황태마을'이 있었다. 사람이 없는 식당을 찾아 들어가서, 더덕구이를 시켰다. 타지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하는 식사가 약간 어색하다. 참 맛있다. 다음에 또 오기로 했다. 아, 운전하지 않고서는 올 수 없는 곳이구나. 장롱면허 소지자에게는 먼 미래의 이야기다. 그러면 아버지랑 다시 오는 수밖에 없다.


미시령 고개를 넘었다. 구불구불. 구름 속에 파묻힌 미시령 정상은 여름이 아니다. 가을 바람이 솔솔 불고 있었다. 속세의 찜통 속으로 내려가기 싫었다. 팔벌려뛰기를 했다. 그러나 접종 네 시간째의 어깨 근육통 때문에 팔이 올라가지 않았다. 점점 몸이 반응을 하고 있었다. 일단 오던 길을 계속 가기로 했다.


미시령 옛길 끝자락에 있는 리조트에서 카페 라떼를 포장했다. 리조트에 체크인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보였다. 휴가철이구나. 울산바위가 보이는 정원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울산바위 대신 안개만 찍혔다. 12년 만에 울산바위를 보는구나 하는 기대는 실패로 돌아갔다.


속초를 향해 내려갔다. 체온계는 37.3도를 가리킨다. 아직 해열제를 먹을 수준은 아니지만, 조금씩 힘이 빠졌다. 항구 앞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묵묵히 바다를 쳐다보았다. 바다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정박해 있는 배 몇 척 뿐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마주하기 위해 다섯 시간을 달려온 셈이다. 말없이 생각에 잠긴 아들을 아버지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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