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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베르 Jan 27. 2024

짝사랑의 끝에서, 완충 지대

짝사랑의 끝에는 흔히 두 가지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사랑이 이루어지거나, 사랑에 실패하거나. 


짝사랑의 끝은 과연 진정으로 이분법적일까. 

나는 두 가지 결말 사이의 완충 지대가 있다고 믿고 싶다. 


짝사랑의 끝이 두렵게만 다가오는 이유는 단순하다. 오랜 시간동안 누군가를 좋아하던 마음이, 한순간에 부정당할 가능성을 머릿속으로는 알지만 마음속으로는 애써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짝사랑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 두려움은 점점 커진다. 


그날 진심(眞心)의 방에서 나는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 방을 나가는 순간 너를 좋아하는 마음을 지워야 한다는, 더 이상 너를 좋아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그런 사실 때문에.  

그럼에도 나는 너를 짝사랑하던 시간들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나의 마음 속에서 너를 짝사랑하던 감정들이 사라질지라도 그 시간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영원히 너와 나의 삶의 궤적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나의 이기적인 마음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시간들이 소멸되지 않고 이 세상에 존재하기에, 두 가지 결말 사이의 완충 지대가 있다고 믿을 수 있는 듯하다. 사랑에는 실패했지만, 삶의 어느 시점에 너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최소한 너에게 전할 수는 있었기에. 그리고 그 사실 - 그 시간 - 은 결코 사라지지 않기에. 


짝사랑의 끝에서 우리는, 과거로 시간을 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열역학 법칙에 의거하여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지만, 그러한 과학적 사실을 부정하고 싶다. 그럼에도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한다. 시간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거짓이 아니라는 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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