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바다에 다녀왔습니다. 5월의 서해바다는 망각의 공간을 넘어 중독의 공간으로 변해있었습니다. 한없이 드리워진 갯벌의 끝에 출렁이는 물결과 뿌연 하늘, 건너편의 고층빌딩. 이 풍경이 나는 낯설면서도 익숙합니다.
바다 앞에서 나는 한없이 연약한 존재가 됩니다. 바닷가에서의 사색은 주로 슬픔에 관한 것들입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바다는 결코 내게 웃음을 내주지 않습니다. 바다에 다녀와서 쓰는 글은 짭짤한 소금물에 우울함을 타놓은 듯한 느낌입니다.
웃으라고, 제발 웃으라고.
친구들과는 바다에 잘 가지 않습니다. 바다가 주는 슬픔을 친구들에게까지 전가하기는 싫어서입니다. 기억하나요, 두 해 전 여름 나는 바다가 보이는 강릉의 펜션에서 다섯 명의 고등학교 동창들과 밤늦게까지 신나게 놀았죠, 애써 슬픔을 숨기면서, 그러고는 모두가 잠든 시간 터벅터벅 해변으로 걸어나가 동트는 아침을 홀로 맞이했던, 그 순간을. 그날의 나는 바다로부터 몰려오는 감정을 그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마음 한구석을 꾹 억누르고 있었던 거죠.
그 이후로 바다를 찾을 때는 보통 혼자 가거나, 부모님과 함께 갑니다. 그리고 멀찌감치 서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바다를 바라봅니다. 바다는 위로가 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쓸쓸한 공간입니다. 작년 늦가을의 광안리가 그러했지요. 구름 한 점 없었던 맑은 날 동이 트자마자 홀로 열차를 타고 도착한 그곳에서, 벤치에 앉아 눈물을 흘리던 11월의 고요한 월요일.
반 년이 흐른 지금의 나에게 바다는 중독의 공간입니다. 말없이 슬퍼지고 싶을 때면 그곳을 찾아갑니다. 침울함이 몰려올 것을 알면서도 바다가 그리워집니다. 시흥에서 송도로 넘어가던 길에, 갯벌과 바다가 보이는 공원 앞에서 아버지께 차를 세워달라고 했던 어제 아침과도 같이.
-2021년 5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