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을 여행처럼
압구정역을 향해 가는 전철,
무심히 앉아 사진첩 사진들을 삭제하기 시작했다.
휴대폰 용량이 꽉 찰 정도로 사진이 그득해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럽여행 사진들 중에서도 셀카로 찍어 내 얼굴이 나온 사진 외에는 과감하게 버리기 시작했는데,
문득 이 사진이 보인다.
쇤부른 궁전이었다.
꼭 다시 가고 싶은 오스트리아.
궁전 내부를 한 바퀴 돌고 나와 정원을 걷기 시작하기에 앞서,
커피와 빵 하나를 사 정원 벤치에 앉았었다.
그때,
햇살은 따가왔으나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으며,
세상은 녹색으로 빛나고 사람들은 아름다운 궁전 뜰의 그림이 되었다.
나는 이 전까지 빵이나 과자 혹은 달콤한 그 무엇을 입에 대지 않았다.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 일 년 전부터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내게 음식은 맛이라기 보단, 기억이자 추억이다.
커피를 마시면 그때 그 평화롭고 안온했던 시간을 먹는 것이며,
그때 느꼈던 행복감을 되감기 하는 것.
쇤부른 궁전에서 사 온 머그 하나가 있다.
그렇게 무거운 짐을 만드는 성격이 아니지만,
특별한 기억으로 살아남을 그때를 예감했던 것인지 고이 담아왔다.
마음에 기쁨이 부족하거나 슬픔이 넘칠 때, 혹은 행복했던 그 순간 속에 있고 싶을 때,
커피 한 잔과 과자 등을 들고 마당으로 나가 앉는다.
나무를 바라보며,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며 새소리를 듣는다.
작은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속절없이 흩어지지만,
오래도록 내 곁에 불러들이는 사람에게서는 함께 오래 살아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