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켜기 전의 시간
하루는 끝났는데
마음은 퇴근하지 못해서
신발만 먼저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불을 켜면
방이 나를 알아볼까 봐
한동안
어두운 채로 서 있었다
식탁 위에는
아무 잘못 없는 컵 하나
나는 그 앞에서
괜히 물도 마시지 못하고
오늘이 어디서부터
무너졌는지 세어보다가
끝내
숫자를 잃어버렸다
창밖에는
늦은 차들이 흘러가고
다들 집으로 가는 것 같은데
나는 자꾸
어디서부터가
집이었는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그냥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의자 하나에
마음을 조용히 걸쳐두었다
울지는 않았는데
이상하게
방 안의 모든 것이
젖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