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기획 팀장 일기 9편
전략기획팀에서 일하면서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이 하나 있다.
“팀장님, 보고서는 어떻게 쓰면 잘 쓰는 건가요?”
사람들은 보고서를
예쁜 PPT를 만드는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고서의 본질은 디자인이 아니다.
전략기획 보고서의 본질은 ‘이야기 설계’다.
그리고 이야기를 설계하는 기술을 우리는
‘스토리라인(Storyline)’이라고 부른다.
오늘은 그 스토리라인 하나 때문에
하루 종일 회사가 떠들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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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 자료는 충분한데… 왜 설득이 안 될까요?”
오전 9시.
팀원이 초안 보고서를 가져왔다.
숫자는 정확했다.
표는 깔끔했다.
차트는 완벽했다.
그런데 나는 첫 장을 보자마자 말했다.
“이건 설득이 안 되겠다.”
팀원이 당황했다.
“왜… 왜요?
근거는 맞게 넣었는데요…”
나는 조용히 말했다.
“근거가 맞는 건 중요한 게 아니야.
근거가 ‘언제’ 등장하느냐가 더 중요하지.”
전략기획 보고서는
순서가 반을 먹고 들어간다.
- 어떤 이야기로 시작할지
- 어떤 위기를 먼저 보여줄지
- 어디에서 감정선을 누그러뜨릴지
- 언제 결론의 강도를 높일지
이게 설계되지 않으면
보고서는 정보는 있어도
방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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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설득하지 않는다.
스토리라인이 설득한다.
우리는 팀원과 다시 초안을 펼쳐놓았다.
“여기서 문제는…”
나는 차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문제를 너무 늦게 말하고 있어.”
그는 물었다.
“그럼 언제 말해야 해요?”
“맨 앞에서.”
그는 놀랐다.
“문제를 앞에 두면…
보고가 너무 부정적으로 보이지 않나요?”
나는 웃으며 답했다.
“전략보고에서 가장 부정적인 건
문제를 숨기고 긍정적인 척하는 거야.”
스토리라인은 이렇게 설계한다.
1) 문제를 먼저 밝힌다
- 그래야 경영진이 ‘아, 이건 진짜 보고구나’라고 느낀다.
2) 원인과 데이터를 제시한다
- 숫자는 문제를 정당화하는 용도일 뿐이다.
3) 해결안은 단순해야 한다
- 복잡하면 실행되지 않는다.
4) 결론은 짧고 강해야 한다
- “그래서 무엇을 할 건가요?” 이 질문에 한 문장으로 답해야 한다.
이 네 단계를 제대로 설계하면
CEO는 결론을 듣기 전부터
이미 방향을 이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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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스토리라인이라면 CEO가 바로 알겠다.”
오후 3시.
우리는 수정된 보고를 들고
임원 중간 피드백을 받았다.
임원은 자료를 훑어보더니
표정이 바뀌었다.
“어? 이건…
오늘 아침에 본 자료랑 완전 다른데?”
나는 웃었다.
“내용은 같습니다.
순서만 바꿨습니다.”
그는 멈칫했다.
“순서만?”
“네.
문제 원인 대응 결론
이 구조로 다시 짰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알겠다.
보고서는 내용이 아니라
구조가 설득하네요.”
그 말이 오늘 가장 중요한 문장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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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모니터 앞에서 생각했다
늦은 시각이라
팀원들이 다 집에 간 사무실에서
나는 오늘 만든 최종 보고서를 다시 열어보았다.
사진도 없고,
화려한 그래프도 없고,
기교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보고서가 ‘잘 보였다’.
가독성 때문이 아니었다.
이야기의 힘 때문이었다.
전략기획팀장은
사람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앞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왜 움직여야 하는지,
어디까지가 위험인지,
무엇을 버텨야 하는지.
그걸 스토리라인으로 정리해
조직의 방향을 만든다.
나는 모니터를 닫으며 혼잣말했다.
“전략은 기술이 아니라 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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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 줄
숫자는 보고서를 채우지만,
스토리라인은 사람을 움직인다.
전략기획자는 그 둘을 연결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