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기획 팀장 일기 10편
전략기획팀장으로 일하면서
가장 벅차고, 가장 고단하고, 가장 외로운 순간은
언제나 ‘조직을 바꾸는 순간’이었다.
오늘은 그 변화가
회사 전체를 관통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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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 왜 또 바꾸자는 거죠?”
오전 회의.
나는 사내 프로세스 일부를 개편하는 안건을 제안했다.
- 보고 체계 단축
- 승인 단계 간소화
- KPI 우선순위 재정립
하지만 말을 꺼내자마자
한 임원이 표정을 굳혔다.
“팀장님, 왜 또 바꾸자는 겁니까?
지금도 충분히 돌아가는데…”
나는 조용히 말했다.
“돌아가는 것과
옳은 방향으로 가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조직을 바꾸려 할 때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논리적 반대가 아니라
정서적 저항이다.
사람은
망가진 시스템보다
익숙한 시스템을 더 오래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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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팀은 지금도 바쁩니다.”
업무 개편안에 대해
각 팀의 의견을 듣는 시간.
어느 팀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팀은 지금도 빠듯합니다.
프로세스까지 바꾸면 부담이 너무 큽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래서 지금 바꿔야 해요.”
그는 고개를 들었다.
“네?”
나는 차트를 보여줬다.
- 중복 보고 14건
- 승인 지연으로 인한 비용 3.2억
- 결정 시간 평균 4.7일 증가
- 팀별 과부하 증가
“지금이 바쁘기 때문에
바꾸지 않으면
6개월 뒤에는 ‘운영 불능’ 단계로 갑니다.”
그는 한참 말이 없었다.
조직을 설득하는 첫 단계는
‘지금이 괜찮지 않다’는 사실의 재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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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논리보다 ‘기준’을 따른다
오후에 대표이사 중간 보고가 있었다.
나는 말보다
‘근거’를 앞에 내세웠다.
- 외부 벤치마킹
- ROI 분석
- 비용 절감 시뮬레이션
- 경쟁사 대비 리드타임 비교
대표는 자료를 보며 말했다.
“논리는 완벽하네요.
하지만… 조직이 따라올까요?”
내가 미리 준비한 답은 하나였다.
“논리에 기반한 기준,
그 기준에 기반한 반복.
조직은 결국 기준을 따라갑니다.”
변화를 막는 사람도,
변화를 피하는 사람도,
언젠가는 기준을 따라간다.
문제는
그 기준을 누가 먼저 세우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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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 저희 팀은 하겠습니다.”
하루가 거의 끝날 무렵.
계속 반대하던 팀장이 조용히 나를 찾아왔다.
“팀장님…
저희 팀은 개편안, 하겠습니다.”
내가 놀라자
그가 말했다.
“솔직히 무서웠습니다.
새로 한다는 게…
근데 팀장님 말처럼
지금도 힘든데 이대로 가면 더 힘들어질 것 같아서.”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사람은 ‘변화 그 자체’가 아니라
‘변화가 요구하는 감정’을 두려워한다.
전략기획팀장은
그 감정의 공백을 채워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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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한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결정은 한순간에 일어난다
밤 9시.
최종 개편안이 전사 메일로 발송됐다.
적용일자는 다음 달 1일.
메일을 보내고 나니
묘한 정적이 흘렀다.
바꾸려고 했던 모든 것을
이제는 정말 바꾸게 된 것이다.
조직 변화는
천천히 축적되지만
실제 결정은 단 한 순간에 내려진다.
그리고 그 순간의 뒤에는
보이지 않는 수십 번의 설득,
수백 번의 회의,
수많은 사람의 감정이 눌려 있다.
나는 모니터를 닫으며
큰 숨을 들이마셨다.
오늘은 변화가 움직이기 시작한 날이었다.
그리고 그 변화 앞에서
나는 팀장으로서 한 걸음 만큼 더 굳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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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 줄
조직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변화의 시작은
항상 ‘한 사람의 한 문장’에서 시작된다.
전략기획자는
그 문장을 만드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