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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전략 사이

전략기획 팀장 일기 8편

by 초연

전략기획팀장이라는 자리는

공식적으로는 ‘전략’을 다루는 자리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정치’를 매일 마주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나는 오랫동안 정치라는 단어를

조금 경멸하듯 바라보곤 했다.

‘실력 없는 사람들의 도구’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오늘, 나는 깨달았다.


정치를 이해하지 못한 전략은

끝내 실행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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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 이번에 누구 편을 드실 겁니까?”


오전 회의.

신규 프로젝트의 책임 소관을 두고

두 사업부가 서로 의견을 달리했다.


영업부장은 말했다.


“전략실에서 우리 쪽 안을 지지해줘야

이게 속도가 납니다.”


R&D본부장은 말했다.


“아닙니다.

지금은 영업보다 기술 검증이 더 급합니다.”


그리고 둘은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전략기획은 누구 편을 들지 선택해야 한다.”


그 순간 나는 웃고 싶었다.

전략기획은 팀이 아니라 회사 편인데,

이들은 늘 ‘내 편’이 되어주길 바란다.


나는 말했다.


“저는 어느 팀 편도 아닙니다.

상황 편입니다.”


순간 방 안이 조용해졌다.


정치는 사람의 편을 드는 걸 원한다.

하지만 전략은 상황의 편을 들어야 한다.


그 둘이 충돌할 때,

전략기획팀장은 흔들리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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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정치란 결국 ‘목소리의 힘’ 싸움이다


오후에 HR 본부장이 나를 불렀다.


“팀장님,

영업이랑 R&D가 또 부딪혔네요.”


그는 잠시 말하다가 이렇게 덧붙였다.


“사내 정치는요…

결국 누가 더 크게 말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오래 말해왔느냐의 싸움이에요.”


그 말이 이상하게 와 닿았다.


조직에서 힘은

직급이나 숫자가 아니라

‘오랫동안 유지된 관성’에서 나온다.


그리고 전략기획팀의 역할은

그 관성을 바꾸는 일이다.


즉,

전략기획팀장은 조직 정치에 휘둘려서는 안 되지만,

정치를 ‘읽을 줄’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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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법”


저녁 무렵

내 팀원 한 명이 물었다.


“팀장님은…

정치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어떻게 하세요?”


나는 그에게 세 가지를 말했다.


1) 친해지되 밀착되지는 않는다

모든 팀과 친해야 한다.

그러나 어느 팀에도 ‘너무 깊이’ 들어가선 안 된다.

전략은 중립에서만 제대로 보인다.


2) 말하지 않는 편이 말하는 편보다 더 강할 때가 있다

정치는 말싸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침묵이 주는 무게가 더 크다.


전략기획팀장은

“누구 편도 아니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유지해야 한다.


3) 결국 답은 데이터가 말하게 한다

정치는 사람 싸움이지만

전략은 숫자 싸움이다.


의견이 충돌할 때

사람을 보지 말고 숫자를 보면

편을 들지 않아도 된다.


나는 팀원에게 말했다.


“정치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정치의 움직임을 읽어내는 사람이

전략기획팀장이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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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관성을 깨는 결재선 앞에서


퇴근 직전

오늘 논쟁이 되었던 프로젝트가

CEO 결재를 통과했다.


결재 코멘트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전략실 판단 근거 명확.

관성보다 상황을 우선함.”


관성보다 상황.

그 한 줄이

오늘 하루의 답이었다.


결국 전략기획팀장은

정치의 파도 위에서도

사실의 방향으로 노를 젓는 사람이다.


정치를 부정하는 순간 흔들리고,

정치에 휩쓸리는 순간 방향을 잃는다.


나는 컴퓨터를 끄며 조용히 생각했다.


전략이 회사를 움직인다면,

정치는 회사의 힘줄을 움직인다.

그리고 그 둘을 동시에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비로소 전략기획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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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 줄

정치를 모르면 전략은 실행되지 않고,

정치에 휘둘리면 전략은 사라진다.

전략기획자는 그 사이의 외줄을 걷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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