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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과 함께 걷는 일

전략기획 팀장 일기 6편

by 초연

전략기획팀장이라면

항상 미래를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회의에서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전략실이면 이런 상황을 예상했어야죠.”

“왜 이 변수를 미리 말하지 않은 거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대답한다.


“불확실성은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그 불확실성이

가장 크게 뒤틀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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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20분, 가정이 무너지는 소리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베트남 법인 담당자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팀장님, 내륙수출 건… 또 일정이 밀릴 것 같습니다.”


그 한 문장이 엑셀의 수많은 가정을 무너뜨렸다.


- 환율 가정

- 원가 구조

- 재고 회전율

- CB 발행 일정 조정

- 세무 리스크 대응표 전체


전략이란 결국

‘가정’ 위에 세워진 집이다.

그리고 가정은 생각보다 자주 무너진다.


나는 모니터를 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이건 오늘 다시 짜야겠네.”


불확실성은 늘 갑자기 찾아오고,

전략기획자는 그때마다

지도 전체를 다시 그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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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 앞에서 가장 흔들리는 건 ‘사람’


오전 회의에서

내가 준비해온 시나리오 B안과 C안이

순식간에 무력화되었다.


영업팀은 당황했고,

재무팀은 난색을 표했고,

해외팀은 목소리가 떨렸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팀장님, 왜 이걸 더 일찍 파악 못 하셨어요?”


나는 조용히 숨을 들이마셨다.


전략기획팀장의 일이란

누군가의 책임을 넘겨받는 일이기도 하다.

예상했던 일에도 욕을 먹고,

예상하지 못한 일에도 욕을 먹는다.


하지만 나는 화내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불안을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비난은

두려움에서 나온다.

그 두려움의 방향이

가장 조용한 사람에게 향할 뿐이다.


그리고 오늘은 그 대상이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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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죠?”


회의가 끝나고

한 팀원이 다급하게 왔다.


“팀장님… 가정이 다 흔들렸는데

이럴 때는 뭘 먼저 해야 하죠?”


나는 그의 눈을 보고 말했다.


“우선 흔들린 걸 인정해.

그리고 최악의 시나리오부터 다시 짜는 거야.”


전략기획자의 기본은

‘예상한 최악을 버틸 수 있는가’를 미리 확인하는 일이다.


우리는 함께 화이트보드를 마주했다.


- 가정 초기화

- 리스크 재정의

- 영향도 재산정

- 이해관계자 조정

- 일정표 재작성


그 과정은 복잡했지만,

그의 표정은 점차 안정되기 시작했다.


불확실성 속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정확한 데이터가 아니라

안정을 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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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이 틀리는 순간, 전략은 시작된다


점심을 겨우 넘기고

나는 새 시나리오를 만들어

CEO에게 보고했다.


CEO는 조용히 물었다.


“이건 확실합니까?”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CEO가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확실한 척하는 것보다

확실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게 더 정확하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한쪽이 풀어졌다.


전략기획자는

‘모든 걸 예측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설명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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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7시.


하루를 마무리하며

오늘 다시 만든 전략 파일을 열어봤다.


숫자들은 여전히 불완전했고,

일정은 여전히 불안정했고,

리스크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전략이란

불확실성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견디는 기술이라는 것을.


나는 종종

전략기획팀장은 선장이 아니라

폭풍 속에서 지도를 다시 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폭풍은 예측이 아니라

버텨내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또 한 번 그 폭풍을 지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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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 줄

불확실성은 예측의 실패가 아니라,

전략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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