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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온도

전략기획 팀장 일기 5편

by 초연

전략기획팀장이 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재무도, 보고서도, 리스크도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숫자는 계산하면 되고, 보고서는 고치면 된다.

리스크는 예측하고 대비하면 된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계산도 안 되고, 고쳐지지도 않고,

예상대로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오늘은 그 마음이

가장 크게 흔들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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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이라는 자리가 만들어내는 거리


아침에 팀원이 나를 조용히 불렀다.


“팀장님, 어제 말씀하신 부분 때문에

혹시 제가 실망을 드린 건가요?”


그의 표정에는 불안이 확실히 묻어 있었다.

어제 나는 단순히 업무 범위를 조정했을 뿐인데,

그는 그걸 ‘나는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로 받아들인 것이다.


팀장이 된다는 것은

말의 무게가 커지는 자리라는 걸

또 한 번 실감했다.


나의 의도보다

상대의 해석이 더 크게 작용한 날이었다.


나는 말했다.


“실망이라니… 그런 게 아니야.

그건 단순히 역할 분배였어.

너한테 부담이 되지 않게 하려던 거야.”


그제야 그의 눈빛이 조금 풀렸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전략은 회사의 방향을 정하지만,

말은 사람의 마음을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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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솔직함’이다


점심 무렵, 또 다른 팀원이 찾아왔다.


“팀장님, 요즘 팀 분위기가… 조금 빡빡한 것 같아요.”


그 말이 가볍지 않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전략기획은 늘 빠르고, 변수가 많고,

‘오늘 결정해서 오늘 움직여야 하는’ 순간들 투성이이다.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너도 그렇게 느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들 열심히 하는데,

서로가 지쳐 있다는 느낌이 있어요.”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전략기획팀의 성과는 회사의 성과와 직접 연결돼 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한 발 더 뛰어야 했고,

하루가 늦어지면 다음 날의 결재가 흔들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지치고 있었다.


팀장의 역할은 목표를 견인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사람의 소모를 막는 사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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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도 힘들어요?”


저녁 무렵, 가장 어린 팀원이 말했다.


“팀장님은… 가끔 힘들지 않아요?”


나는 순간 대답을 망설였다.

팀장이 흔들리면 팀이 흔들린다.

그러나 팀장이 너무 강해도

팀은 숨 쉴 공간을 잃는다.


그래서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힘들어.

근데 너희가 버티고 있는 걸 보면서

나도 버텨.”


그 말에 그는 작게 웃었다.


“그럼… 오늘은 같이 버틴 걸로요.”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전략기획은 늘 ‘해결’의 언어를 쓰지만,

관계는 ‘함께 버팀’의 언어로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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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기획팀장은 관계의 온도를 관리하는 사람이다


밤 10시.

사무실을 나서며 오늘의 대화를 떠올렸다.


성과, 리스크, 보고서, 일정…

이 모든 것들은 시스템으로 움직이지만,

사람은 시스템이 아니다.


전략기획팀장의 역할은

방향을 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지치지 않는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나는 오늘 처음으로

이 문장을 마음속에 썼다.


“사람이 버틸 수 있는 조직이 진짜 전략이다.”


그 진짜 전략을 만드는 일은

어떤 보고서보다 어렵지만

가장 오래 남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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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 줄

조직은 숫자로 굴러가지만,

사람은 온도로 움직인다.

전략기획자는 그 온도를 조율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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