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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Sep 18. 2019

황사

그녀가 코타키나발루로 떠났다.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봄이 다 가고 있다.


언제 올 거냐고 물으니, 서울은 어떠냐고 받아친다. 서울은 황사가 가득하다.


“세상의 모든 생태주의자들은 반성해야 해. 꼭 책을 내잖아. 그 책도 다 나무라고. 황사에 한몫했다니까. 모르는 사람보다 더 나빠.”


작년, 어김없이 황사가 우리를 덮었던 날, 그녀는 방으로 들어와 마스크를 내던지며 말했다.


“야, 황사랑 사랑이 왜 같은 줄 아냐? 우선 둘 다 밖에 나와야 할 수 있어. 백날 집에 있어 봐야 그게 뭔지 도저히 알 수 없다는 말이지.”


그녀는 창문 밖을 바라봤다.


“또 봄이 오면 찾아와. 봄바람 타고 사랑도 오고, 황사도 와.”


그녀는 창문을 살짝 열더니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남았어. 아파. 뭔지 모르는데 막 아파. 가슴이 먹먹해지고 숨도 못 쉬고 그래. 민감한 사람일수록 더 심하지.”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아니지. 사랑은 행복하고 기쁜 거다.


“그래도 사랑은 행복한 거 아냐?”


나는 되물었다.


“넌 사랑이 진짜 행복해? 기뻐? 뭐, 가끔은 그렇기도 해. 하지만 본질은 아픔이야. 미세먼지 같은 거라고. 내 몸속에 퍼져서 있는 듯, 없는 듯 남아서 나를 괴롭히는 거. 그게 황사이고 사랑이야. 둘은 결국 같아. 누가 그랬잖아. 통증은 불가피하지만 고통은 선택할 수 있다. 황사와 사랑은 선택된 고통이지. 통증은 따라오는 거고.”


그녀는 창밖으로 담배 연기를 보냈다.


“그러니까 나는 간다. 너도 집에만 있지 말고.”


일주일 지나고 그녀는 감기에 걸렸다.


그녀는 아직 코타키나발루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여름 문턱에서 비가 온다. 황사가 잠잠해지겠다.(1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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