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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대건 Sep 25. 2019

역시 사랑은 없어

요르고스 란티모스, 더 랍스터

엔딩크레딧이 올라가자, 그는 눈을 감았다.


그는 ‘역시 사랑은 없어’라고 두어 번 반복해 말하더니, 머리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술을 마신 탓이다. 매번 술 마시면 오지 말자던 다짐은, 담배 한 개비 남기고 편의점 가듯 깨진다.


영화는 2시간 내내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서사’에 대해 찬미했다.


그 어느 겨울날, 그녀는 말했다. 사랑한다면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제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랑하더라도 사랑했기 때문에 이제 더는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어야, 그것이 사랑이라고 했다.


그가 ‘그게 어떻게 사랑이 될 수 있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어차피 사랑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 말했다.


지랄. 그런데 저 영화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사랑이 노력이라면 우리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함으로써 사랑의 붕괴를 막는다.


사랑이 운명이라면 서로를 배신하지 않기 위한 노력은 사랑에 의무를 씌우고, 의무에 충실해야 사랑은 깨지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은 끝이 존재하고, 의무는 지워지곤 한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그는 개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은 개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밖은 어두웠다. 술을 더 마시러 갔다.


(18.07.17, 요로고스 감독이 신작 냈다는 소식에 보러 갈까 말까 고민하면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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