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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대건 Sep 24. 2019

위대한 러시아의 이름으로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러시아 문학은 벽이 높다. 높은 만큼 깊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인생의 이야기는 러시아 소설과 시, 그리고 글로 된 것들의 변주 일지 모른다.


몇 년 전, 몇 번의 실패의 겪고서야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읽어 냈다. 1564 페이지 끝에 성취감은 없었다. 대신 밀려드는 감동에 떨었고, 멍한 허탈감에 빠졌다. 어리석은 인간의 질투, 나약한 인간의 사랑, 처절한 분노와 날카로운 복수. 모두 소설 안에 있었다.


영화평론가 강유정의 말대로 안나 카레니나가 당대의 삶을 온몸으로 헤쳐 나간 여성이었기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 스토리를 어떻게 영화나 오페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각자의 문법이 있고 각자의 방식이 있다면, 안나의 삶은 소설이었다.


그렇지만, 음악이 궁금했다. 러시아의 음악은 소설만큼이나 위대하다. ‘러시아’는 위대하다는 수식과 어울리는 몇 안 되는 단어다.


도입부터 작정하고 관객의 눈과 귀를 압도했다. 군무도 멋졌다. 발레의 유려함이 힘을 만나면 저런 춤이 나오는구나 싶었다. 음악도 좋았다. 클래식, 락, 성악 등 장르 불문하고 장면에 대한 묘사를 위해 뭐든 하려고 애썼다. 물론 성공했다. 강렬했다. 배우들의 노래도 끝내줬다. 다만, 스피커로 들어서인지 실제 목소리가 귀로 들어가며 느낄 수 있는 기합은 없었다.


백미는 안나였다. 아름다운 안나. 한 번 더 쓰자. 아름답고 아름다운 안나. 안나 카레니나만 봐도 이 뮤지컬을 본 값을 한 것 같다. 그러니까 한 번 더 써야지. 아름다운 안나.


소설을 표현하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건 아이러니하게 소설을 읽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요소가 많아서일 것이다.


도입과 마무리의 배치, 개연성을 넣으려고 의도한 순서, 극 사이사이 불어 섞인 말 등을 소설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당시 러시아는 프랑스 사교 문화를 동경해서 상류층은 불어를 배웠다. 오페라 본 사람은 ‘소설로도 읽으면 좋을 텐데’라는 속절없는 아쉬움마저 들었다. 하지만 소설 속 인물에 대한 심리 묘사가 10 中 4에 그친 느낌이다. 배우는 모두 좋았지만, 2시간 남짓 안으로 담기엔 소설이 너무 큰 탓이다.


10년 전이였다면 ‘모스크바에서 봐야지’라고 안 봤을 텐데, 이제 허황된 꿈은 버려야지. 레미제라블 이후 오랜만에 뮤지컬 영화, 아니 뮤지컬 실황을 봤다. 성공적이었다. (18.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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