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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대건 Sep 27. 2019

내겐 너무 버거운 당신

강준만의 <독선 사회>를 읽고

독일의 문예비평가이자 철학자인 발터 벤야민은 수많은 자료의 인용문과 그에 대한 논평 그리고 주석만으로 이루어진 책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아쉽게도 미완성으로 남았지만, 그는 “내 연구에 있어서 인용은 길에 숨어 있는 강도들 같다”라고 말할 정도로 ‘인용’이 본문 이상으로 중요함을 강조했다.


강준만은 발터 벤야민을 꿈꾸는 것일까. 그의 인용에 대한 수준과 폭은 대단하다. 오래된 자료에 머물지 않고, 파도와 같은 최근 연구물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철저하게 균형을 찾으려고 스스로 노력하며 글의 말미에만 짧은 글로 본인 생각을 피력한다.


찰스 어거스터스 마그누센, 국적을 가늠하기도 어려운 이름을 던져놓고 보는 것은 강준만이야말로 그의 현신은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연설명을 하자면 마그누센은 셜록 시즌 3에 나오는 극 중 인물이다. 그는 서부의 모든 주요 인사들의 사적인 비밀을 쥐고 있다. 그래서 협박의 대가로 불리기도 하며, 셜록과 대립하는 역할이다.


강준만의 책을 읽으면서 마그누센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지점은 바로 something을 기억하고 불러들이는 방식과 그 ‘방대함’에 있다. 강준만에게도 마스누센의 애플도어와 같은 도서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뭐가 있긴 하다. 하나의 개념을 가지고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등의 모든 것을 꺼낸 다음, 엮어내어 자신이 원하는 콘텍스트와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무척이나 비슷하다. 둘은 생김새도 닮았다. 광대뼈도 비슷하다. 차이점이라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하는가와 그저 책으로 출판하는가 정도. 그가 우리 편은 아니지만, 상대편도 아니라는 것이 다행이다.


솔직한 말로 버겁다. 이걸 어떻게 다 알고 살라는 말인가. 피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기억하는 것만이 시간의 위협 속에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강준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15.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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