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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대건 Dec 08. 2019

25000원

조지 오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조지 오웰의 『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은 노동의 비참함을 탐구하는 르포다.


내가 처음으로 노동의 비참함을 느낀 날은 어느 겨울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그다지 손이 큰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올해 가족들이 먹을 김치를 자신이 모두 담겠다고 선언하셨다. 가족이라 함은 위로 세 분의 큰 이모네, 삼촌네, 작은 이모네까지 족히 10 식구가 넘었다. 물론 365일 식탁에 올라갈 김치를 책임진다는 말은 아니셨겠지만, 김장에서 몸 쓰는 일을 다 도와야 했던 나로선 청천벽력 선언이었다. 조지 오웰이 막장에 들어가는 고됨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배추를 가져오기 위해 포터를 타고 밭으로 향하는 그 시간은 유격훈련을 위해 연병장을 떠나는 행군 못지않을 만큼 두려웠다.


200포기였다. 뽑아낸 것이 배추인지 허리인지 모른다. 허리가 꼬부라져서 녹슨 힌지처럼 삐그덕 거리는 고통은 말로 다 못한다. 포터에 기대어 쉬고 있는데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배추값을 치르시려나 보다. 지갑을 들고 꾸부정 걸음으로 기듯 갔다.


“25,000원만 주세요.”


이럴 순 없다. 200포기였다. 200포기. 게다가 무를 4포대나 같이. 포터 기름값보다 쌀 것이다. 어머니에게 왜 이렇게 싼 것이냐 묻자 대답하시길, 다 힘들게 사신 단다라고 말씀하셨다. 조지 오웰이 보았던 막장은 진도의 어느 배추밭에도 있었다. 광부들이 받는 몇 실링은 그때 배추밭 어른에게 건네드린 25,000원으로 대치되었다.


내가 했던 노동은 힘들 뿐이었다. 200포기의 배추를 키워낸 농부가 했던 노동이야말로 비참했다. 시장이 주는 가치 절하 앞에서 그들의 노동은 감히 신성했다 입발림 못 하겠다. 그것은 그냥 비참한 것이다. 그것만으로는 삶을 살아갈 수 없다. 조지 오웰은 이러한 자본주의 속 노동의 비참함을 생생하게 그린다. 너무 생생하고 또 너무 생경해 잘 표현된 SF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자연스럽게 가와카미 하지메의 『 빈곤론 』 이 떠올랐다. 『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이 1930년대의 저술이니 우리나라 일제 식민지 시절이기도 하다. 굳이 차이점은 따질 수 없겠지만 빈곤을 다룬다는 면과 그로부터 사회주의 이념과 정치로의 해결책을 말하는 부분을 보면 조지 오웰보다는 가와카미 하지메의 글이 더 마음을 울린다.(16.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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