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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Feb 25. 2020

질문에서 답은 시작된다

제임스 밴더빌트의 트루스를 보고

증거의 정황이 잡히자 팀은 급해지기 시작했다. 리스트를 만들자. 바로 전화를 돌리자. 증인을 찾아가자. 증거를 찾자.


모두가 흥분한 그 순간, 메이프스(케이트 블랏쳇)는 팀을 진정시키고 묻는다.


“우리가 답해야 할 질문은 무엇인가”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사상가인 엘리어스 카네티는 <군중과 권력>에서 질문과 권력의 관계성에 대해 말했다. 그는 질문을 권력의 핵심 요소로 규정하면서 “모든 질문은 일종의 침입”이라고 했다.


모든 질문은 공격성을 가진다는 것. 그 의미는 질문에 따라 공격에 따른 피해가 결정된다는 뜻으로, 질문의 답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에 닿는다. 답이 무엇이든 던지는 사람의 질문이 강하면 받는 사람은 아프고, 약하면 질문을 받는 이는 아무렇지 않다.


어쩌면 메이프스 팀이 제기한 질문도 부시에 대한 공격의 의도에서 나온 것일 게다. 밝히고자 했던 진실과는 별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질문이 가진 진짜 힘을 인지하지 못했고, 질문의 답만 찾으려고만 했다.


그럼 질문이 중한가? 그렇지도 않다. 질문은 권력관계를 암시하는 도구일 뿐이다.


영화는 이 질문과 답의 엇갈림에 주목한다. 아무리 걸어도 받지 않는 전화들, 만나주지 않는 사람들, 부족한 증거들. 그저 애매모호한 사실들 속에서 확고한 의견만 남았고, 질문에 답하고자 했던 메이프스 팀의 노력은 실패로 수렴된다.


수렴의 과정은 폭발이 아니라 침몰이다. 나선을 따라 스며들며 침몰하는 메이프스의 모습은 전혀 극적이지 않다. 다분히 실제적이다. 의자에 앉아 뜨개질하던 메이프스를 바라보는 오프닝은 침몰의 반대 점에서 배에 난 구멍을 메우는 듯한, 아니 이제부터 땜질할 것이라고 알리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질문과 답의 엇갈림으로 인해 ’60분’ 팀은 침몰했고, 메이프스가 그토록 저항하고자 했던 아버지에 그만해달라고 애원할 때 배는 두 동강 났고, 해고라는 사망신고를 받았을 때 배의 마지막 꼬리는 물에 잠겨 자취를 감춘다.


질문은 권력이지만, 권력을 가지지 못한 자가 던지는 질문은 자살행위다.


ps. 영화가 함의하는 바를 떠나, 오로지 케이트 블란쳇의 눈빛에 찬사를 보낸다.(1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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