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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Feb 25. 2020

마음으로 그리는 세상

구본준, 『 마음을 품은 집 』

구본준의 『 마음을 품은 집 』은 삶의 공간에 관한 책이다.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다시 그 건축이 우리는 만든다.” 나치 폭격에 폐허가 된 런던을 울린 윈스턴 처칠의 연설은 반세기를 지나 대양을 두 개나 건너, 서울 여의도에서 실현된다. 그리스 신전마냥 기둥을 두르고 기이한 돔을 엎어놓은 국회의 모습, 권위적으로 보이고 싶었을 게다.(승효상) 거짓권력자들의 건축이었다. 어쩌면 그들의 완벽한 자아실현이기도 했다.


하나 같이 지식인이요, 인격자라고 불리는 이들은 이 신전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어김없이 꼴불견으로 변해버린다. 지조는 아집으로, 부드러움은 유약함으로 둔갑하고 그것들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정치 풍경은 불편하다 못해 불쾌하다. 죽은 권력의 저주는 여전히 유효하고, 산 자는 그 앞에서 조아리기만 하니 그 상징인 국회의사당을 볼 때마다, ‘만들어진’ 건축이 ‘만들어질’ 삶을 바꾼다는 명제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구본준의 『 마음을 품은 집 』은 이 건축과 삶의 명제를 건축물을 통해 차근차근 우리에게 설명해준다. 건축물에 대한 글이라기보다는 우리네 삶의 희노애락의 사연으로 말하는 건축, 집을 만든 사람들을 그린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 중 특별히 내 마음에 남은 공간이라면, 낮은 위치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신이 아닌 세상 사람들의 집이 되고자 했던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 고통이 순간이 아니기에 사과도 순간이 될 수 없다, 잊고 묻으려고만 하는 사죄에 저항하는 공간인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파괴 없는 창조는 가능한 바람이 아님을 보여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아름다운 도서관, 더이상 이진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곳에서만 열리는, 오염되지 않는, 훼손될 수 없는 사랑의 애틋한 공간인 이진아도서관을 꼽고 싶다.


집을 품을 여유, 심지어 마음을 품을 공간마저 허락되지 않은 시대다. 지금 모든 공간은 욕심이다. 공간을 가진다는 것이 사치가 되는 사회, 공간을 통해서 우리를 그 어떤 무엇의 가능성으로 비워내는 것조차 힘든 세상이다. 그렇게 마음도 사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집을 꿈꾼다. 행복한 집을, 사랑스러운 집을 꿈꾼다. 마음을 품을 수 있는 집을 간절하게 꿈꾼다. 그리고 어느 건축가처럼 피아노 한 대 놓인 것 뿐, 아무것도 없는 빈 방을 소원한다. 그 피아노 의자에 앉아 조는 날이 오기를 빈다.(15.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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