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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Feb 25. 2020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레이먼드 카버의 『 대성당 』

레이먼드 카버의 『 대성당 』 을 모두 읽고 책을 덮자, 버틸 수 없을 만큼 잠이 몰려왔다. 그는 잠들지 않기 위해 애써 고개를 흔들어 댔다. 버스에는 승객이 몇 명 없다. 왼쪽 혼자 앉는 줄의 아주머니 한 명, 하차를 기다리는 여중생 두 명, 게임하는 남자 한 명. 제일 뒷 자석, 가장 뒤의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버스 안의 광경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고, 그제야 자신이 어제와 다른 자리에 앉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래 자리로 가야겠다고 자기만 들리게 말했다. 그냥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해가 가운데 있어야 하는 시간인데도 햇빛은 버스의 창문을 뚫고 나와 경사로 비추면서 바닥에 깔려 있다. 어젯밤부터 몸이 으스스한 게 느껴지더니 감기에 걸린 것 같다. 아프지는 않았는데 짜증이 났다. 어제 만난 여자가 자기 감기 걸렸다고 말한 순간 내게 옮겨온 것 같다. 말만으로도 감기가 전염된다고 생각하니 키스라도 했다면 아예 몸살로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조금이라도 따뜻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엉덩이를 들썩이면서 열을 내본다. 해 비치는 자리로 옮겨야겠다. 가방에는 노트북과 책 한 권뿐이었지만 생각보다 무거웠다. 따로 드는 게 귀찮았다. 그래도 방금 읽어낸 책을 가방에 넣는 것은 더 싫은 일이었다. 버스가 좌우로 흔들려서 좌석 손잡이를 잡기 위해 가방을 좌석에 내던졌다. 빙글 돌아앉는다. 내던진 몸을 푹신한 의자가 받는다. 창문에 기대어 햇살을 맛보기 시작했다. 기대만큼 따뜻하진 않았다. 그래도 그늘보다 나았다.


가방을 무릎에 올리고 양팔로 쓱 끌어안았다. 조금이나마 따뜻해진다. 버스는 아파트의 그림자를 통과해간다. 잠시 후, 잠실 트리지움 아파트와 YMCA 수영장, 롯데마트와 롯데월드 사이의 8차선 끝에서 유턴한다. 햇빛은 다시 반대로 옮겨간다. 그는 이미 잠이 들어 있다.


집에까지 두 정거장 남겨두고 눈을 떴다. 꽤 괜찮은 잠이었다며 머리를 앞에 대고 바닥을 보며 하품한다. 떨어진 교통카드가 보인다. 건너편에 앉은 여자의 것인가.


“저기요. 이거요. 카드” 회백색 코트를 입은 여자는 절반보다 한참 못미치게 나를 보면서 말했다. 아니 보지 않았다.


“제꺼 아닌데요” 바로 말을 했다. 생각도 하지 않은 것 같다. “왜요?”라고 묻고 싶었다. 그는 일어나며 카드를 자신이 앉아 있었던 의자에 던졌다. 다시 바닥에 내려놓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사에게 줄 수도, 자신이 가져갈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 네. 그래요.” 그의 어색한 대답에 여자로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버스는 코너를 돌아 흔들렸다. 내려야 할 정거장에 다다랐다. 여자도 내리려는 것 같다. 그런데 카드를 찍지 않고 바로 내린다.


여자는 내리자마자 도망치듯 뛰기 시작했다. 횡단보도를 찾기는커녕 버스 뒤에 서서 도로의 양쪽으로 보더니 차가 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반대로 뛰어갔다. 그가 10m 정도 걸어서 횡단보도 앞에 서자 여자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순간 카드의 주인은 그녀였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16.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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