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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대건 Dec 16. 2019

다만, 희망은 있다

천명관, 『 나의 삼촌 브루스 리 』

천명관의 『 나의 삼촌 브루스 리 』는 유체이탈로 성장하는 소설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답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역할을 바꾸면 조금이나마 쉬워진다. 나였으면 하는 사람을 떠올리면서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상상해 대답해본다면, 앞선 질문은 조금 쉬워진다. 그 사람처럼 말하고, 그 사람처럼 답하면 되니까. 유체이탈이지만 편하다. 나는 어릴 적 좋아하는 친구의 사진은 주머니에 담고 다닌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배우고 익혀 성장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쉽게 잠들고 포기하는 사람이었다. 요즘도 때때로 고민에 빠질 때면 그 친구라면 어떻게 말하고 답했을까 고민에 빠지곤 한다. 그 선택은 대부분 좋은 결과였다.


탄핵 시위에 나온 한 고등학생은 ‘우리 주체를 가지고 살아요’라고 외쳤다. ‘내’가 사라지는 시대에 살고 있음에 ‘내’가 누구인지 찾으려 한지 오래되었다. 나도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작가의 이름을 빌려 유체이탈했고, 책으로 대신 말해왔다. ‘나는 천명관입니다’, ‘나는 장강명입니다’, ‘나는 박완서가 되고 싶습니다’ 등등.


하지만 말하기는 편해졌을지 몰라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이 발생했다. 왜냐면 나는 천명관이 아니고, 장강명이 아니며, 박완서도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희망은 있다. 『 나의 삼촌 브루스 리 』속 나의 삼촌은 브루스 리가 되고 싶었지만 되지 못했다. 그러는 와중에 자신을 찾았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 사랑하는 것을 지키는 방법, 방법을 실천하는 용기, 용기를 내는 결심, 결심을 지속하는 인내. 이 모든 것이 자신도 이소룡이 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긴다. 믿는 자만이 의심할 수 있고, 의심은 호기심을 불러 삶을 생동하게 한다.(16.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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