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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Dec 17. 2019

두통

단편소설

교통계에서 근무했던 희주아빠는 매일 밤 음주운전자와 전쟁을 겪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이 죽는다. 하지만 전쟁을 일으킨 자는 죽지 않는다. 그날은 희주 아빠가 죽었고, 운전자는 죽지 않았다. 희주 아빠는 검문을 피해 도망가는 차에 매달렸고, 운전자는 그를 떼기 위해 달렸다. 어쩌면 죽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죽었다. 그가 매달린 차는 거의 1km를 달리다가 길가의 금은방 유리에 박고서야 멈췄다.


목격자는 매달렸던 경찰관이 금은방 유리에 머리를 부딪쳤다고 말했다. 유리 벽은 뒤로 밀렸고 깨지지 않았다. 수십 군데 금이 갔을 뿐이다. 그가 남긴 피가 투명한 유리벽에 얼룩으로 남겨졌다. 증거라면 남겨둔 금은방 유리를 새 유리로 끼우던 날, 망치로 깨부숴져 바닥에 뿌려진 유리는 구슬 같았다. 아스팔트 위의 유리구슬에는 검은 피가 듬성듬성 붙어 있었다. 검은 구슬 같았다.


유리가 깨졌다면 희주 아빠는 살았을까. 그가 자동차를 잡은 손을 놓았다면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손을 놓지 않았고, 그는 죽었다. 투명한 유리 벽은 사람으로 깨지지 않을 만큼 단단했고, 유리는 금은방을 밖으로부터 보호했다. 희주 아빠는 왜 손을 놓지 않았을까. 희주는 아빠의 동료 경찰에게 물었다. 그 동료 경찰은 “희주 아버지는 책임감이 강한 경찰이었단다”라는 말을 했다. 희주는 짜증이 났다. 그때부터 희주의 두통은 시작되었다.


“이 새끼는 어디에 박혀 있는 거야?”


그냥 해본 말이었다. 희주는 다 알고 있었다. 정범은 아마 옥상에 누워 있을 것이다. 옥상으로 통하는 철문 앞에 선 희주는 새삼 차가운 철문이 무서웠다. 그래서 욕했다. 봉해버린 입처럼 열쇠 구멍 없는 쇠손잡이는 의미 없이 달려 있다. 정범은 저 너머에 있을 것이다.


“아, 쫌.”


멍하니 하늘 보던 정범은 번뜩 정신이 든다. 누군가 철문을 두드리고 있다. 희주다.


철문으로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는 정범을 꾸짖기라도 하듯 희주는 더 세게 문을 두드렸다. 보통의 문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기능을 가졌다면, 옥상 철문은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는 기능을 가졌다. 그러니까 밖에서 열어주지 않으면, 안에서 나올 수 없다. 기능은 존재 이유였고 철문은 이유에 충실했다. 금은방 유리도 그랬다. 정범은 희주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열었다.


정범의 부모님은 성안 시 멀티플렉스 푸드코트에서 우동전문점을 운영했다. 정범의 아빠도 다른 아빠들과 다를 바 없이 IMF와 함께 직장을 잃었다. 그때 받은 퇴직금으로 닭강정 판매점을 열었고, 몇 달 버티다가 망했다. 모두 예상대로 였다. 정범의 아빠는 그나마 일찍 접었기에 손해가 적었다고 정범의 엄마는 아빠를 위로했다. 그리고 중계동 아파트를 팔았다. 그래도 서울인 탓에 좋은 가격에 팔았다. 성안 시로 내려오기 위해서였다. 성안 시는 정범의 아빠의 일터였다.


정범의 아빠의 가계는 성안 시내 멀티플렉스 푸드코트에 입주했다. 정범은 아빠가 뒷돈을 주고 들어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엄마가 우는 소릴 들었다. 어쩔 수 없다는 한숨도 들었다. 계약은 무사히 성사되었다. 중계동 집값이 사라졌다. 우동가게만 남았다. 정범의 아버지는 정범에게 말했다.


“정범아, 이게 세상 사는 거란다. 그러니 너도 돕고 살아야 한다.”


철문이 열리자 희주는 정범에게 욕을 내뱉는다.


“미친 새끼, 또 담배냐” 정범은 웃고 만다. 정범은 희주가 좋았다.


희주는 반장이었다. 호감이 가는 얼굴은 아니었다. 책임감만은 강했다. 그것만으로도 친구들은 희주에게 의지했다. 정확하게는 걱정이 많았다. 희주의 아빠 때문인지도 모른다.


“일어나! 밥 먹으러 가게”


식당으로 가는 길은 겨우 두 명이 지나갈 만했다. 희주와 정범, 그리고 같은 반친구를 각자의 나침반을 앞세우고 어깨를 앞뒤로 겹치며 흙길을 걸었다. 길 바깥으로는 여기저기 공사판이었다. 노란 비닐끈이 안전과 불안전의 경계를 나누고 있었지만, 무의미했다. 경계는 자신의 의지 혹은 타인의 의지를 가지고도 넘어설 수 없어야 한다. 안전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면 더더욱 개인의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더욱 경계는 그 의미에 충실해야 한다.


그러나 바람에 흔들거리는 노란 경계는 너무나 약해 보였다. 자체로 이미 약했으나 경계 너머의 것들로 더 모호해졌다. 안에는 식당 건물을 짓기 위해 쌓아놓은 자재들이 있었다. 대개 시멘트 포대와 벽돌, 리어카, 강목들이었다. 구부러진 못이라든지, 작은 장비류들이 굴러다녔다. 자재가 쌓이고 남은 공간이 길이 되었다.


“너 대학 적었어?”


희주가 정범에게 물었다. 정범은 대학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아빠에게 물었지만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말만 들었다. 엄마는 공무원 준비를 하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정범은 그러겠다고 했다. 희주는 경찰대에 가겠다고 했다. 희주는 성실하고 활력이 있었다. 공부도 잘했다. 게다가 희주 아빠는 경찰이었다. 정범은 머뭇거렸다. 아빠가 경찰이라서 죽었는데, 넌 경찰이 또 하고 싶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밥이나 먹자.”


희주는 여학생 테이블로 향했다. 정범이 자리에 앉자, 어디선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뭔가 우그러지는 소리였다. 식당의 학생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어 천장의 좌우를 둘러보았다. 다시 ‘기이잉’ 하는 소리가 났다. 동굴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괴물이 입을 벌리는 소리였다.


예전에도 가끔 식당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화재경보기가 울린 적이 있었다. 수능 한 달 뒤로 다가왔던 날이었다. 한참이나 경보음이 울리고 있었는데 한 선생님이 나와 가스가 새서 경보가 울렸다고 알려줬다. 마저 밥을 먹고, 고3들은 영어듣기평가 준비하러 가라고 말했다. 물이 끓으니 불을 줄이라는 말처럼 쉬웠다. 다들 임시 건물이란 게 원래 이러려니 했고 영어 듣기평가 준비하러 갔다. 그래도 오늘 들린 소리는 처음 듣는 소리였다.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통솔하는 선생이 일어섰다. 잠시 잠깐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조용히 하고. 알아보고 올 테니까 밥 먹고 있어.”


선생은 소시지를 하나 집어 입에 넣은 뒤, 주방 안으로 들어가 영양사를 찾았다. 학생들은 다시 수저를 들었다. 오늘 급식 메뉴는 제육볶음에 된장국이었다. 거기에 오이무침과 김치가 같이 나왔다. 제육볶음은 매웠고, 된장국은 싱거웠다. 수저로 한번 휘저으니 흘려졌다.


“씨발.”


찢어지는 소리를 듣자 희주의 두통이 시작됐다. 하지만 참기엔 너무 아팠다. 약은 먹기 싫었다. 겨우 맞춰 놓은 생리가 또 틀어질 것이다. 희주는 중얼거리며 정범에게 카톡을 보냈다. 친구들이 괜찮냐면 물었지만 일일이 대꾸하기엔 머리가 아팠다. 희주는 식당 안쪽으로 들어가는 정범을 보았다.


두통약 줘

맡겨놨냐

ㅇㅇ


정범은 매점에 가고 싶었다. 그냥 자고도 싶었다. 감기기운이 일주일 내내 가시지 않았다. 그런 정범을 희주는 옥상에서 식당까지 끌고 왔다. 정범은 짜증이 났다. 괜히 맡아줬다. 정범은 고개를 들어 희주를 찾는다. 두리번거리다가 중앙기둥을 보았다. 조금씩 휘고 있었다. 정범은 선생님을 찾아 식당 안쪽으로 갔다. 희주는 자신에게로 오다 가버린 정범을 보며 생각했다.


‘나한테 오라니까 어디 가는 거야’


그 순간, ‘기이잉’ 소리가 아까보다 더 크게 났다. 식당 전체에 진동이 전해질 정도였다. 식당 가운데 철제 기둥이 자신을 접으면서 내는 소리였다. 기둥을 본 희주는 빨대가 떠올랐다. 희주네 가족은 일요일 아침마다 목욕탕에 갔다. 희주는 아빠와 같이 들어가고 싶었지만, 엄마와 함께 여탕으로 가야 했다. 엄마는 같이 놀아주지 않았다. 목욕 내내 밖에서 아빠와 마실 바나나우유만 생각했다. 희주가 목욕탕에 가는 큰 이유이기도 했다.


아빠는 빨대를 두 개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희주용이었고, 하나는 대비용이었다. 뚜껑에 구멍을 내기 위해 힘껏 찌르지만, 빨대는 우유의 비닐 뚜껑을 뚫지 못하고 접히기 일쑤였다. 그러면 아빠가 남은 빨대로 구멍을 내주었다. 구부러진 식당 기둥은 희주가 구멍을 내지 못하고 접혀버린 빨대 같았다.


기둥이 고꾸라지면서 기둥이 받치고 있던 철판이 식탁을 덮쳤다. ‘쿵’ 소리와 함께 식당은 동시에 비명으로 가득 찼다. 여덟 남짓의 아이들은 기둥과 식탁에 깔렸다. 서너 명이 달라붙어 그들을 꺼내기 위해 잡아당겼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몇 명은 정신을 잃었다. 비명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다른 기둥도 구부러지기 시작했다. 모서리쪽 기둥만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중앙기둥과 마찬가지로 접히고 말 것이다. 갑자기 화재경보기가 울렸고 스프링클러가 작동했다. 아이들의 옷은 젖었다. 2층에는 점심을 먹고 있던 2학년 학생들은 120명 남짓. 이제야 그들은 붕괴를 예감했다. 가까운 출입문으로 향했다. 살기 위한 직감이었다.


세영고가 식당을 가건물로 운영한 지 1년이 거의 다 되어 간다. 학교 증축이 결정되면서 식당도 새로 짓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결정된 식당 부지는 건물을 지을 수 없는 땅이었다. 게다가 산을 깎아내 만든 지대였다. 비라도 오면 진흙이 흘러내렸다. 바위가 떨어지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우선 임시 건물로 식당을 세워 놓고 지대보강공사를 동시에 진행했다. 밥은 먹어야 하니까. 지대보강공사가 완료되면 식당 건물을 지을 예정이었다.


“도망쳐”


누군가 소리 질렀다. 출입문은 출구와 입구뿐이었다. 동시에 비상구였다. 그러나 좁았다. 미닫이문으로 만들어져 겨우 두 명이 통과할 수 있는 너비였다. 그마저도 찌그러졌다. 학생들이 몰린 지금은 한 명도 통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밖으로 나온 이들도 계단에서 뒤틀려서 막혔다. 누군가 천천히 나가면 된다고 소리 질렀다. 2층에서 내려가는 계단이 끊어졌다. 그 위에 있던 학생들은 계단과 같이 땅으로 떨어졌다. 뒤쪽에서 따르던 학생들도 땅으로 떨어졌다. 문도 같이 떨어졌다. 출구가 커졌다. 멀리서 보면 절벽 같았다.


소리가 사그라졌다. 맹렬히 물을 뿌리던 스프링클러도 멈췄다. 시끄럽던 화재경보기도 멈추었다. 2층 식당은 오직 비명만 남았다. 부엌으로 들어간 선생님이 나왔다. 학생들을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선생님도 겁에 질려 있었다. 2~3분 정도 지나자 하나둘씩 비명이 울음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기절한 아이들도 있었다. 몇몇 정신을 차렸는지 식탁에 깔린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중앙 쪽으로 왔다. 선생님은 무조건 여기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출입구에 몰려있는 학생들을 겨우 뚫고 바깥을 내려다본다. 지면까지는 8미터 정도다. 땅에는 끊어진 계단구조물이 널브러져 있었고 몇몇은 거기에 깔려 있었다.


“괜찮다. 애들아. 나가자.”


판넬 벽은 안쪽으로 점점 기울여지는 중이다. 기둥이 받치고 있던 무게가 가운데로 몰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천장이 조금씩 갈라지고 있었다. 먹이를 집어삼키기 위해 아가리를 벌리는 괴물 같았다. 중앙기둥에 깔린 학생들은 자신들 위로 조금씩 흘러내려 오는 컨테이너를 본다. 정범은 한쪽에 쓰러져있는 희주를 발견했다.


“머리 아파. 두통약이나 내놔.”


정범이 약을 주자, 희주는 작은 알약을 삼키더니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 눈앞의 아수라장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정범은 희주를 부축했다. 걸음을 옮겼다.


“또 무너지지 않겠지?”


정범이 물었다. 희주는 접힌 중앙기둥과 그 위로 찌그러진 지붕을 보고 벽을 기대며 줄 선 친구들을 보았다.


“더 누르는 게 없잖아.”


희주는 대답했다.


“그럼 처음부터 왜 무너진 건데?”


정범이 다시 물었다.


“처음부터 무거웠겠지. 가건물이잖아.”


희주는 대답했다. 자신도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다친 아이들이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건물이 붕괴를 멈추자 어느 정도 가라앉는 것 같다. 아까 같은 우그러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학생들도 진정을 찾아갔다. 이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줄을 세웠고 인원파악을 하려고 했다. 잘 되지 않았다. 유리창을 깨고 뛰어내리려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높이를 보고는 이내 그만뒀다. 여기저기에 전화를 거는 학생들이 있었다. 선생님은 양쪽 출입문을 막았다. 더이상 떨어지는 아이들이 생겨서는 안 된다. 이제 곧 소방차가 오고 경찰차가 오고 앰뷸런스가 올 것이다. 헬기도 올 것이다. 빠르게 나가려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소방서에서 사고 연락을 받았을 때는 식당 기둥이 구부러지고 8분이 지나서였다. 소방서는 성안 시 외곽에 있었는데 세영고와 30분 거리였다. 땅에 있던 선생님들은 학생들과 함께 2층에서 떨어진 아이들을 돌봤다. 계단에 깔려 정신이 잃은 아이들도 있었다. 선생님들의 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했다. 구급차는 아직도 오지 않았다. 헬기가 먼저 왔다. 처음에는 굉음에 다시 기둥이 무너지는 줄 알고 모두 놀랐다. 헬기는 식당 위를 돌고 있었다. 성안 시 소방 소속 헬기는 아니었다. 있을 리 없었다. 방송사 헬기였다. 헬기가 내는 소리는 다른 소리를 모두 먹어버렸다. 경찰들이 왔다. 교장도 왔다. 확성기로 대고 2층에 소리쳤다.


“김 선생, 다들 괜찮아요? 구조팀이 올 테니까 조금만 참아요.”


상태로 보니 더이상의 붕괴는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위험하니까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요.”


체육관 뒤에 있던 짙은 녹색의 쓰레기 수거차량이 식당 앞에 멈췄다. 쓰레기봉투로 가득 차 있었다. 쓰레기더미 위로 떨어지면 적어도 다치지 않을 것이라는 쓰레기 담당 아저씨의 생각이었다. 한쪽 차를 대더니 교장과 경찰에게 이 구조방법을 이야기했다. 부정적이었다. 소방차가 왔을 때 제대로 구조작업을 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실상은 방송사 헬기 같았다.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구조장비 없이 쓰레기 위로 뛰어드는 모습을 방송에 나가게 할 수 없었다.


교장은 이사장에게 전화를 걸었고, 경찰은 서장에게 전화했다. 쓰레기차가 무거운 엔진 소리를 내면서 공회전을 이어갔다. 쓰레기차 아저씨는 옆에서 초조하게 양손을 비비고 있었다. 지붕이 들어간 건물을 쳐다보자 점점 더 초조해진다.


그렇게 10분이 흘러갔다. 경찰의 통화는 끝나고 교장은 두어 군데 전화를 더 걸고 있었다.


“왜 이리 전화를 안 받으시나”


교장이 중얼거린다.


“교장 선생님, 우선 차량을 대고 아이들을 내리겠습니다. 네?” 아저씨가 다급하게 교장의 팔을 잡는다.


교장은 그 팔을 뿌리치면서 다그친다.


“박 주사, 저도 지금 급히 연락하고 있잖아요. 가만 있어 봐요. 좀!”


경찰은 옆에서 헛기침하며 식당 건물을 바라본다. 건물은 아직까지 그대로 서 있었다.


“아니, 그럼 이대로 있습니까? 보고만 있을 수 없잖습니까!” 아저씨가 소리쳤다.


교장은 얼떨결에 허락하고 말았다. 쓰레기차는 한쪽 출입구 아래 주차되었다. 주위에 널린 공사자재를 치우느라 차를 식당 건물에 붙이는 것도 몇 분이나 걸렸다.


“애들아, 조심히.”


중앙 기둥이 일그러지고 27분이 지나서야 구조가 시작되었다. 쓰레기차 구조는 더디지만 분명 성과는 있었다. 1명당 20~30초씩 걸렸다. 40명이 땅으로 내려왔다. 누구는 살았다고 외치는 아이들이 있었고, 친구 이름을 부르는 아이도 있었다. 외친 친구는 내려오지 못하고 있었다. 2층에는 아직도 30명 정도 남았다. 45분이 흘렀다. 아직도 소방차는 오지 않았다. 지금은 이게 최선이었다. 기다릴 수 없었다. 소방차가 도착해도 그다지 방법은 없어 보였다. 정범과 희주의 순서는 아직 오지 않았다.


“너 엄마한테 연락해야 되는 거 아니냐? 할래?” 희주가 물었다.


“곧 나갈 텐데, 뭐.” 정범은 대답했다.


“그래라.” 언제 쓰러졌냐는 듯한 희주였다.


“넌?” 희주가 되물었다.


“전화해봐야 걱정만 하실 거야. 지금 점심이라 바빠서 해도 안 받아.” 구조작업은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괴물은 조용했다. 전원 구조되리라는 생각 때문인지, 울음을 그쳤다. 몇몇은 웃음을 보이기까지 했다.


이사짐 사다리차가 학교 안으로 들어왔다. 망설임 없이 쓰레기차 옆에다 주차했다. 기사가 내리더니 단번에 2층 컨테이너 출구까지 긴 사다리를 끌어 올렸다.


“그 개새끼들, 날림으로 할 때부터 알아봤어.”


“당신들은 어떻게 왔소?” 쓰레기 더미로 떨어진 아이들을 끌어내던 선생님이 물었다.


“우리 조카가 저 안에 있어.”


아직 소방차는 오지 않았다. 지금쯤 멀티플렉스 앞을 빠져나오고 있을 것이다. 그 부근의 도로는 상습적인 교통체증구간이다. 하지만 도심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혹은 도심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세영고에 닿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지나야 하는 구간이었다. 차량 분산계획을 세웠고 시의회에서도 통과되었다. 갑자기 어느 순간 상권 분산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았다. 계획은 어영부영 폐기되었다.


2층 식당 안에서 학생들은 창문에 매달려 있고, 또 서로를 잡아주고 있다. 아까처럼 떨어지는 학생도 없었다. 이제 소방차는 올 필요는 없어 보였다. 출입구 양쪽으로 아이들이 구해지고 있다. 조금만 시간이 주어진다면 모두 구할 수 있다. 2층에는 이제 37명이 남았다. 희주가 쓰레기더미로 뛰어내렸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쓰레기 더미 위에 떨어진 희주는 선생님에 부축을 받으며 땅으로 내려왔다.


“정범아.” 희주는 정범을 부르면서 손을 흔들었다. 정범이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하늘을 봤다. 너무 파랬다. 4월의 하늘은 바다를 닮았다. 바람은 하늘의 파도였다. 작게 떠도는 구름은 물보라와 비슷해 보였다. 긴소매 안에 숨긴 살갗을 밖에 내놓자 차가운 기운이 살을 찌른다. 머리가 아파서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괴물이 입을 벌리며 커다란 혀를 내밀었다. 구부러진 채 버티던 기둥이 완전히 접혔다. 천장과 바닥이 만났다. 2층 바닥은 괴물이 입을 모아 숨을 들이마시듯 올랐다가 가라앉았다. 괴물은 자신이 소화할 수 있을 정도만 남길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은 검은 먼지로 뒤덮였다. (18.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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