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okdaegeon Jul 18. 2020

이 버려진 마음에 찾아온 당신께

여기 브런치에는 제 버려진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보냅니다. 이곳에 찾아온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는 한 때 읽고 보는 게 좋았습니다. 그래서 쓰고 느끼는 것도 좋았습니다. 좋았던 마음들이 남아 글로 적혔습니다. 그 글들은 싸이월드니, 페이스북이니,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곳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라졌습니다. 이곳 브런치도 그런 곳의 하나입니다. 언제 지워질지 모릅니다. 여태 남은 이유는 아끼기 때문이 아닙니다. 버려져서입니다.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하죠. 이 곳이 그런 곳입니다. 무관심으로 남아 있는 곳.


그런데 자꾸 누군가 찾아옵니다. 찾아와 보겠다고 구독이라는 버튼을 누르고 갑니다. 당신이 그랬습니다. 내 부끄러운 글이 더 부끄러워집니다. 오늘은 술을 마셨습니다. 술을 마셔서 마음은 후회로 가득 찼습니다. 후회는 살며 잊고 지내던 곳으로 흘러갑니다.


사실 부끄러운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저는 글을 쓰지 않습니다. 글을 쓰지 않는 이유는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느낄 수 없는 까닭은 보고 듣지 않아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지금 사랑하며 살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사랑이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 모든 글이 적힌 에버노트에 ‘사랑’ 두 글자를 검색해봅니다. 1329개의 노트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담고 있습니다. 제가 1329번이나 사랑을 적었다니. 그 사랑 안에는 잊힌 사랑도 있고, 절망했던 사랑도 있고 잊히지 않는 사랑도 있습니다. 이렇게도 사랑을 많이 적었는데, 사랑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지금의 내게, 사랑했던 기억 대신 도대체 무엇이 들어와 있을 것일까요?


요즘의 저는 음악을 하며 살면 어땠을까 떠올려봅니다. 글을 쓰며 행복했던 순간은 많지 않았던 탓에, 후회도 섞인 바람입니다. 어제는 의자에 앉아 갈색의 피아노를 물끄러미 봤습니다. 가볍게 먼지가 쌓여 있습니다. 순간 물티슈를 찾았지만, 이내 포기하고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겠지. 사랑도 이런 작은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겠지요.


사랑하는 당신에게 보냅니다. 제 글을 읽어줘서 감사합니다. 비록 당신은 말이 없지만 저는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느낌이 이렇게 글을 만들었으니까요. 언젠가는 제가 연주하는 슈만을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기다려주세요.


오늘도 행복한 날이었길 기도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산다는 게 참 끔찍하다. 그렇지 않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