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러 May 11. 2021

산다는 게 참 끔찍하다. 그렇지 않니?

권여선 작가가 쓴 '봄밤'이라는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이름도 친근한 '안녕 주정뱅이'라는 단편집에 담긴 소설입니다. 오늘 편지의 제목은 그 '봄밤'의 첫 문장을 가지고 왔어요. 혹시 놀랐다면, 미안해요.


지난주, 토요일 봄밤은 정말 소설 같은 날이었습니다. 공기는 미세먼지로 가득하고, 밤이 되자 그마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흐릿함만이 가로등과 나 사이에 무언가 있다는 것만 알려줬습니다.


그 밤, 저는 보이지 않는 무엇을 지나 예당으로 향했습니다. 히로타 슌지의 피아노 독주회가 있는 날입니다. 사실 8일은 데이비드 러셀이라는 기타리스트의 공연이 예정됐던 날. 코로나 탓인지 소리 소문 없이 예매 페이지는 사라져 상심했던 때에, 가족 생각에, 인생 걱정에, 나의 꿈에 대한 고민에 '뭐라도 필요해'라는 마음으로 히로타 순지 독주회를 예매했지요.


외국인 피아니스트가 리사이틀을 여는 경우는, 대개 유명 연주자 혹은 국내 대학 교수로 계신 분입니다. 찾아보니 히로타 슌지는 수원대학교 피아노과 교수님이시군요. 그런데 연주회 이력이 조금 특이했습니다.


2016년, 2018년, 2019년, 2021년까지 꾸준히 1년에 한 번씩 예당 리사이틀홀에서 연주회를 열고 계셨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내년 2022년 5월에도 연주회가 잡혀있구요.


꾸준함이 주는 신뢰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뭐라도 듣고 싶어'서 예매했던 연주회가, '들을 수 있어 다행'인 연주회로 바뀌었습니다. 러셀 연주회가 열리지 않아 어딜 가야 했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연주회 프로그램은 프란츠 리스트의 헝가리안 랩소디로 채워졌습니다. 흔히 리스트에게는 초절기교라는 수식어가 붙고 하는데, 이날 히로타 슌지가 들려준 리스트는 참 정갈했습니다. 그 유명한 2번도 넘치지 않을 만큼 에너지를 담아내 부담스럽지 않게, 오히려 더 즐겁게 리스트를 감상할 수 있어 흐뭇했습니다.


피아니스트는 관객을 자신의 집에 초대한 것처럼 편안함을 선사했고, 관객은 긴장 풀린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더 무대와 음악에 집중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저는 권여선의 '봄밤'을 읽고 나서, 제목을 '먼지가 빛과 섞인 밤'이라 쓰고서는, '사랑이란 단어 한 번 꺼내지 않고, 세상 모든 사랑을 담아냈다'라고 적었습니다. 히로타 슌지 독주회도 그랬습니다. 굳이 위로하려고 하지 않아도, 그저 들려주는 음악만으로도 전해지는 편안함은 얼마나 소중한지요.


먼지로 가득한 봄밤, 이런저런 사연으로 찾게 된 히로타 슌지 독주회는 새삼 일주일 중 두어 번 연주회의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느끼게 했습니다. 전 내년 5월 달력에도 미리 적어두었습니다. 22년의 첫 일정이네요. 어떤 편안함일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1년 뒤, 봄밤에 만나길 바라요.




[이번주 찾아갈 연주회]

5월 13일, 국립 오페라단, 브람스

5월 15일, 서울스프링실내악 축제, 황혼

5월 16일, 이자람, 이방인의 노래




온라인 스트리밍이 있어요~!

피아노의 조성진, 지휘의  발레리 게르기예프, 뮌헨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사 연주하는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입니다.

13일까지만 들을 수 있으니 시간 내어 좋은 음악의 관객이 되어주세요~^^

(링크) https://www.mphil.de/en/stream






매거진의 이전글 그날의 감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