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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Oct 12. 2020

저는 살아 있습니다

조해진, 산책자의 행복

사는 게 재미없어 고른 오디오 클립이었다. ‘일상의 즐거움은 어떻게 발견하는가?’ 같은 뻔하고도 쉬운 인생 실천법이라도 배워 따라 해보고 싶을 정도로 재미없는 요즘이니까. 매일 산책 시간을 정해두고 밖으로 나오라거나, 감정의 쓰레기통을 만들라거나, 떡볶이를 먹으라거나 같은 걸 기대했다. 단편소설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건 결제가 끝난 이후였다.


요조의 목소리는 좋았다. 소리가 나오며 입천장을 지날 때 공기가 섞여 흐려지는 말들은 내 마음을 맴돌았다. 이어폰이라 아니라서도 다행이었다. 밤 11시 20분 인천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은 조용하고 가득하다.


소설은 새벽, 그러니까 한참 어두울 때부터 조금씩 밝아질 때까지 미영의 시간을 적는다. 그리고 사이마다 메이린의 편지가 들어있다. 그래서 시간은 앞으로 흐르지 않고 뒤로만 가려한다. 한걸음 걸으면 세 걸음 밀려나고 다시 한걸음 걸으면 다섯 걸음 밀려난다. 그렇게 무력해진 미영의 시간을 따라 걷는다.


“살아 있는 동안엔 살아 있다는 감각에 집중하면 좋겠구나”


미영은 죽음을 상상한다. 죽음을 상상하자, 삶을 독려하던 예전의 자신이 했던 말응 떠올린다. 아니, 그 말을 부정했던 메이린을 찾는다.


살아 있음은 역설적으로 죽음을 증명한다지만, 부재로 인식될 수 있는 존재는 행복하다. 살아서 보이지 않는 자는 죽어서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죽지 않는다. 미친 듯이 살고 싶다는 감정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본능일까. 두려움일까. 시몬 베유는 말했다. ‘나와 다른 존재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면 갑작스러운 감동에 휩싸인다.’ 미영을 보면 발견의 순간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것이리라 짐작해본다.


1시간 동안 듣는 존재로서 느끼게 해 준 요조와 오디오 클립에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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